정·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법한 이슈가 터질 즈음이면 대중의 시선을 끌어당길 만한 연예계 이슈가 먼저 튀어 나와 정·재계 이슈를 덮어버린다는 속설이 있다. 이 같은 속설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 있다고 해석하는 ‘음모론’과 밀접히 연결된다.
특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조작 혹은 설계에 가까운 배후 세력의 가능성을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다는 건 우리 사회가 여전히 투명성을 의심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건 이 같은 씁쓸한 현실로 인해 전혀 생뚱맞은 피해자가 생긴다는 점이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갑질 의혹으로 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난처한 입장에 내몰린 모습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19일 노 관장이 운전기사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차가 막히면 폭언을 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노 관장의 운전기사들은 스스로 ‘파리 목숨’에 비유했다. 매연에 민감한 노 관장을 지상이 아닌 지하에 내려줬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실직 상태가 됐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나왔다.
이 같은 내용은 큰 틀에서 보자면 한진그룹 총수일가 갑질 행태와 별반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갑질이 드러났을 때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대중은 노 관장의 개인적인 논란을 남편인 최 회장과 현재 이혼 소송 중인 사실과 연결 짓고 있다.
1988년 결혼한 최 회장과 노 관장은 2009년부터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최 회장은 혼외자의 존재를 고백하면서 노 관장과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할 것임을 전했다.
남편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노 관장은 최 회장의 혼외 자식을 직접 키울 생각을 하며 남편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안고 가정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해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고,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정식 소송으로 가리게 됐다.
이혼 소송을 앞둔 가운데 노 관장이 기여한 최 회장의 자산 약 4700억원을 어떻게 분할할지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노소영 씨에 대한 비판 여론 한편으로는 시기가 좀 공교롭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이혼소송을 앞두고 이런 보도가 나오는 것이 의심스럽다거나 마녀사냥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정확한 주어가 없더라도 누구를 향하는 지는 분명하다.
우려스러운 건 맹목적인 음모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삐뚤어진 여론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용기를 낸 작은 목소리가 묻힐 가능성은 물론이고 애꿎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제아무리 돈과 권력을 지닌 인물이라도 약자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매달 생활비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직장인 필자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비춰지는 기업 총수를 안쓰럽게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위키리크스한국=양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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