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프리즘] '미국의 아이콘' 제임스 딘의 죽음...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 WIKI 프리즘] '미국의 아이콘' 제임스 딘의 죽음...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8.11.27 08:50
  • 수정 2018.11.29 0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아이콘이었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 [연합뉴스]
미국의 아이콘이었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 [연합뉴스]

제임스 딘의 스타로서 화려한 날들은 1955년 찾아온 끔찍하고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로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의 죽음에 얽힌 자세한 내용과,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제임스 딘은 출연했던 작품보다는 페르소나(persona)로 더욱 유명해진 몇 안 되는 스타들 중 하나이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 중 단 한 편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는 스타로서 한참 주가를 올리려는 바로 그 순간에 화려한 불꽃이 소멸해버린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사망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4살이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의 죽음은 아이콘으로서의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의 삶과 배우로서의 경력

제임스 바이런 딘은 1931년 2월 8일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고장에서 몇 년을 살다가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9살 때 죽었다.

제임스 딘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은 항상 넘쳐흘렀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고, 탭댄스를 추고, 조각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과의 대화해서 그는 나중에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될 소망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었다.

오토바이 : “여가시간의 제 취미는 오토바이 타기입니다. 저는 오토바이의 기계적 요소를 잘 알고 라이딩을 즐깁니다. 경주 시합에도 몇 번 출전해서 좋은 성적도 거두었습니다.”

제임스 딘은 이후 1949년에 캘리포니아 대학의 주니어 칼리지에 등록했지만, 뉴욕에서 경력을 쌓으라는 드라마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제임스 딘은 2년 정도의 단역 출연 및 광고 모델 생활을 거친 후, 1951년 유명한 연기 감독이었던 리 스트라스버그 휘하에서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몇 년 뒤 그는 명성을 닦고, 연기 기술을 발전시켜 몇몇 텔레비전 쇼와 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정적인 기회는 1955년 ‘에덴의 동쪽’에 캐스팅되면서 찾아왔다.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백이 1952년 출간한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그의 즉흥 연기와 잠들지 못하는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을 본질적으로 잘 나타낸 그의 모습에 대중들은 찬사를 보냈고, 이제 그의 스타로서의 입지는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 딘의 가파른 인기 상승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것도 그렇게 갑작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포르쉐를 타고 포즈를 취하는 제임스 딘. [ATI]

▷제임스 딘의 죽음

제임스 딘은 20대를 거치면서 연기자로서 일을 꾸준히 하면서도 평생의 열정을 숨기지 못했다. 바로 자동차경주였다.

‘에덴의 동쪽’이 최초로 상영되던 같은 해 그는 ‘팜 스프링 로드 경주대회’와 ‘산타 바바라 로드 경주대회’에 참가하였다. 또한 그는 새로 나온 ‘포르쉐 스파이더’ 자동차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자동차에 ‘작은 녀석(little bastard)’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는 ‘살리나스 로드 경주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제임스 딘은 애초에는 이 포르쉐를 트레일러에 실어 살리나스로 옮길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직접 운전해서 몰고 가기로 한다.

1955년 9월 30일, 젊은 할리우드 스타는 그의 차를 전문적으로 수리해주는 정비사 롤프 위더릭과 함께 ‘작은 녀석’에 몸을 싣고 살리나스로 출발했다. 그는 오후 3시 30분경 속도위반 딱지를 떼느라 차를 한 번 멈추고, 4시 45분쯤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5시 45분경 제임스 딘은 자신의 자동차 방향으로 다가오는 포드 한 대를 보았다.

그 포드는 앞에 보이는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려하고 있었다. 추정컨대 제임스 딘이 롤프 위더릭에게 ‘저 운전자는 우리를 발견하고 멈출 거야.’라는 안심의 말을 건넨 직후 두 대의 차는 정면충돌을 하게 된다.

위더릭은 차에서 튕겨나가 뼈가 몇 군데 부러졌다.

충돌 후 포드 자동차는 하이웨이를 몇 번 미끄러져 돌다가 멈췄고, 23살 먹은 운전자 도널드 터넙시드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빠져나왔다.

그런데 포르쉐는 충돌 후 공중에서 회전을 하고 땅에 떨어지면서 부서졌는데, 참혹한 모습으로 형체가 일그러진 채 길가로 굴렀다. 이 모든 과정 동안 제임스 딘은 차 안에 그대로 있었다.

목격자들이 엉망이 된 차체에서 제임스 딘을 꺼내기 위해 달려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처참하게 부서진 차 때문에 망가진 그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일 뿐이었다.

이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포드의 운전자 터넙시드는 기소되지도 않았고, 목격자들은 제임스 딘이 직전에 속도위반으로 딱지를 끊기는 했어도 충돌 당시에는 결코 과속 중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상황이 어떠했든지 간에 ‘이유 없는 반항아’는 파소 로블스 전쟁기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때 시간은 오후 6시 직후였다.

▷‘작은 녀석(little bastard)’의 저주

제임스 딘의 죽음은 오히려 그의 전설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했고,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을 지닌 반항아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제임스 딘이 사망하자마자 또 다른 전설이 빠르게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그가 사랑하던 포르쉐와 관련된 전설이었다. 그의 팬들은 그가 이전에 안전운전과 관련하여 공익광고를 찍은 사실을 재빨리 상기했다.

그는 공익광고에서 ‘안전운전하세요. 당신이 살린 생명은 나의 목숨일 수도 있습니다’며 사람들에게 안전운전을 강조했었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는 사람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기 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동차 ‘작은 녀석’과 관련된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자동차 ‘작은 녀석’은 완전히 부서졌지만 일부 부품들은 되살려서 개별적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 부품들을 산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엔진은 어떤 의사에게 팔려나갔는데, 그 의사는 그 엔진을 처음 사용한 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또, 사고 난 ‘작은 녀석’의 타이어 두 개를 구매한 다른 운전자는 그 타이어들이 동시에 터져서 상해를 입었다. 그리고 ‘작은 녀석’의 차체를 운송하던 트럭 운전자는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사고가 난 포르쉐의 모든 부품들의 행방을 추적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임스 딘의 사고를 뒤따르는 여러 사고들을 진짜 ‘저주’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볍게 털어버릴 수 만은 없는 이상한 유연의 일치가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예는 영국의 배우 알렉 귀네스 경 본인으로부터 직접 나왔다. 1977년 인터뷰에서 귀네스는 제임스 딘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영국 배우는 바로 제임스 딘이 사망한 해 어느 날 밤 할리우드에서 그 젊은 반항아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 때 제임스 딘은 새로 산 포르쉐 자동차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차 안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그 차가 시속 150마일까지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귀네스 경은 “그때 참 이상한 일이 나에게 생겼어요. 어떤 다른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나는, 제발 저 차에 타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저 차에 올라타면, 오늘이 목요일 저녁 10시인데, 다음 주 목요일 저녁 10시에는 죽어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한 느낌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렸고, 제임스 딘은 귀네스 경의 경고에 그냥 어깨를 으쓱해보였을 뿐이라고 한다.

귀네는 경은 "두 사람이 훌륭한 저녁을 함께 했고, 제임스 딘은 다음 주 목요일 오후에 사망했다"고 말을 이었다. *

 

6677sky@naver.com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