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시진핑의 '무력 통일' 위협 속 본토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대만의 정체성
[월드 프리즘] 시진핑의 '무력 통일' 위협 속 본토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대만의 정체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18 04:46
  • 수정 2022.10.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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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사진=연합뉴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3기를 여는 공산당 대회를 마치 자신의 대관식처럼 치르면서 "무력을 통해서라도 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본토에서 강경 발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BBC는 17일(현지 시각) 대만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보도를 내보냈다.

지난 10월 10일은 자치령 대만의 국경절인 쌍십절이었다. 대만 사람들은 이번 쌍십절을 특별히 의미 있게 치렀다. 대만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베이징 당국과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집권 3기를 여는 중국 본토의 시진핑 주석은 대만과의 통일을 더욱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쌍십절은 대만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기념일이다. 10월 10일, 10자가 중복되어 쌍십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날은 청나라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은 한족(漢族)이 300년간 시달림을 받다가 쑨원을 주축으로 한 신해혁명 혁명군이 1911년 10월 10일 우창에서 청나라 타도를 목표로 행동을 개시한 날이다. 청나라가 무너지면서 2000년간 계속된 전제정치가 종말을 고하고 민주공화정 체제의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만은 왜 쌍십절을 국경일로 기념하는가? 그것은 이 섬의 공식 명칭이 아직도 ‘대만 중화민국(The Republic of China on Taiwan)’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Taipei)에는 지금도 청색과 붉은색 배경에 흰 태양이 그려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대만은 중국 내전의 산물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퇴한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은 대만해협을 건너 타이베이에 정착했다. 이후 수십 년간 장제스 총통은 대만을 철권통치하면서 자신들이 “자유 중국의 진정한 민주 정부”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상당수 대만 사람들은 이런 역사를 먼 이야기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미국인 남편과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여객기 승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하니 흐시안(38)은 이런 정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제 조부모님은 중국인이고 여전히 중국을 사랑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저는 틀림없는 대만인일 뿐입니다. 중국은 우리의 조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국은 대만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탈출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이 중국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대만 사람들은 하니 흐시안 혼자가 아니다. 올해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만 사람들의 70~80%가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10년 전 대만 인구의 약 절반이 아직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증가한 수치이다.

베이징 당국은 이러한 경향에 주목하며 보복을 노리고 있다.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었다. 당시 이미 진행 중인 대만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해서는 오히려 많은 이야기들이 거론되지 않았다.

중국은 대만 상품의 거대한 시장이며 식품 산업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대만 타이난(Tainan)의 남서 해안을 따라 운전하다 보면 어디가 육지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광대한 농경지가 거대한 염해(鹽海)로 탈바꿈한 이곳은 경치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진흙 투성이 웅덩이 아래에는 보물이 자라고 있다.

수궈젠은 먹이로 사용하는 정어리 양동이를 이 웅덩이들 중 하나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자 수십 마리의 거대한 물고기가 먹이를 먹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광란의 물거품이 일었다. 농어(Grouper)에 속하는 거대한 물고기 양식장이었다. 그의 양식장에는 이런 농어가 수백 마리 자라고 있다.

“물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저놈들은 텃세가 엄청 심하고 매우 공격적입니다.”

이 농어들은 매우 비싸게 팔리는 귀한 물고기이다. 상하이와 베이징의 식탁에 오르는 다 자란 농어는 2,000달러까지 나간다. 올여름까지 대만에서 양식한 농어의 약 80%가 중국으로 팔려나갔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마리도 중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이러한 물고기들의 최대 소비 시장입니다.”

수궈젠은 이렇게 말했다.

“연회나 잔치에 사용되면서 인기가 많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6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6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중국이 수입을 금지하자 중국 본토 바이어들이 대만에서 주문을 중단했다. 그 결과 양식 농가들은 가격 폭락을 염려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반면, 양식업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수궈젠은 들려주었다. 

“나 같은 나이든 양식업자들은 긴장하고 있지만 젊은 농부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중국이 사지 않으면 전 세계의 다른 시장에 팔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은 세계 어디에든지 있으니까요.”

수궈젠의 딸과 사위는 곧바로 싱가포르, 샌프란시스코, 밴쿠버에 농어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대만의 파인애플 농부들은 올해의 수확물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판로 전환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러시아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유럽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만은 중국의 광대한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효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는 역효과를 낼것으로 보인다.

2020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만 인구의 약 절반이 중국의 공공연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지지율이 3분의 1 정도로 나오는 조사 결과도 있기는 하다. 그런가 하면 작년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는 대만인의 75%가 중국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는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와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된 사회 중 하나로 무섭게 성장한 대만 고유의 스토리에 대한 자긍심을 반영한다.

대만 사람들에게 중국의 위협은 대만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위협만이 아니다. 그것은 대만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인 것이다.

대만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아시아의 유일한 영토이다.

“대만에서 게이가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감춰진 비밀이었습니다.”

모타 린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숨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우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파트너인 시티 첸과 사랑스러운 두 살배기 딸 린 첸과 함께 타이베이 남부에 살고 있다. 그들의 아파트 벽은 가족사진으로 덮여 있었고, 거실 바닥에는 장난감이 어질러져 있었다. 동성 부모가 된 이 두 젊은 여성의 순수한 기쁨은 전염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티는 현재 두 번째 아기를 임신 중이다.

파트너보다 나이가 어린 그녀는 자신의 대만 정체성에 대해 더 열정적이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묻자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대만은 독립적이고 주권을 가진 국가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려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한 것처럼 전쟁을 일으켜야 할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가족의 안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대만을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다. 그러나 모타 린, 시티 첸, 수궈젠, 하니 흐시안을 비롯한 2,300만 대만인에게는 이보다 더 높은 위협은 없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그들은 대만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것은 그들이 오늘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축하받을 일이다. 그리고 베이징의 위협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든 그들은 이 자부심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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