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깊어지는 러시아인들 사이의 세대 갈등
[우크라 줌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깊어지는 러시아인들 사이의 세대 갈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2.27 05:47
  • 수정 2023.02.27 0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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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죽음을 놓고 토론 중인 누나 율리아나와 아버지 보리스 [BBC 캡처]
반야의 죽음을 놓고 토론 중인 누나 율리아나와 아버지 보리스 [BBC 캡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러시아 신구 세대 간의 갈등 또한 깊어지고 있다. BBC는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내 갈등 상황을 현지 보도했다.

남동생의 하관(下棺) 모습을 지켜보는 율리아나(37)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배우 일을 하고 있는 율리아나는 러시아군에 입대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사한 남동생 반야(23)의 장례식에 서 있었다. 

“그들은 동생이 영웅으로 죽었다고 칭송했습니다.” 

그녀는 동생 반야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웅으로 죽었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내 동생이 영웅인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보리스는 생각이 다르다. 그 또한 슬픔을 억누르기 힘들지만 조국 러시아를 위해 전사한 아들 반야가 극히 자랑스럽다.

보리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파시즘을 퍼뜨리는 정권”과의 싸움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신나치의 책동에서 구출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우크라 정권이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근거 없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반야가 전사하기 전에는 아버지와 이런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

율리아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동생이 죽은 후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엄청나게 다퉜습니다.”

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toryville’의 최신 방영분에서 부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뜨겁게 토론을 벌인다. 이는 오늘날 러시아 가정에서 흔히 벌어지는 모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국민이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한 답변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군의 신용을 훼손하는 발언이나 러시아군의 침공을 ‘군 특수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 부르지 않고 전쟁(war)이라고 지칭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1월에 러시아 내 한 독립 조사기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국민 사이에 세대 갈등이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40세 이상 응답자의 75%가 전쟁을 지지한다고 답한 반면, 18-24세 응답자의 경우에는 62%가 전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영화감독 아나스타샤 포포바는 ‘Storyville’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하면서 이 여론조사의 결과가 자신이 인지한 바와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 불거지고 있는 갈등의 여러 모습들을 목격했습니다. 자녀들은 대부분 전쟁에 반대했고, 구소련 치하에서 성장했으며 밤낯 국영 TV만 시청하는 기성세대는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내 가족 내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는 러시아군을 지지한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주장했다.

뉴스를 주로 국영 TV에 의존한다는 것은 매일매일 러시아 정부의 공식 수사(修辭)만을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율리아나와 같은 세대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높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는 나의 슬픔을 반도 표현 못합니다.”

율리아나는 이렇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녀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그들은 뉴스를 읽고서는 시선을 허공으로 돌립니다. 이제는 사람들끼리 눈길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포포바 감독은 인구 분포에 관계없이 대도시를 벗어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97km 떨어진 반야의 고향 아르한겔스코예에서 그의 장례식을 촬영하면서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율리아나도 포포바 감독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반야는 조국을 수호한 진정한 애국자이자 영웅처럼 죽었다는 겁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도대체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지요? 우리의 젊은 피들이 무엇을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까? 나는 내 동생이 금속관에 담겨 주검으로 돌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반야는 네 형제 중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다.

“동생은 집안의 보석이었습니다.”

율리아나는 이렇게 표현했다.

반야는 군에 입대해 전사하기 전에는 모스크바 예술계에 깊이 몸담고 있었다. [BBC 캡처]
반야는 군에 입대해 전사하기 전에는 모스크바 예술계에 깊이 몸담고 있었다. [BBC 캡처]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 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 학교, 음악 학교, 스포츠 …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반야에게 투영했습니다.”

반야는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후에는 모스크바의 문학 연구소에 들어가 창작을 공부했으며 볼쇼이 극장을 포함한 실험적인 작품에도 출연했다.

보리스는 반야가 이런 활동 때문에 사랑했던 여성과 결혼에 골인할 수 없었고, 반야는 이를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다고 들려주었다.

“극 예술의 세계는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윤리적 기준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가치 대신에 젊은 남녀 간에도 열린 관계가 있습니다.”

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율리아나는 동생 반야가 연극을 하면서 매우 행복해 보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연극 때문에 그의 아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해 항상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연극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러시아의 역사나 선조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반야는 그런 생각에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야와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보리스와 반야는 군대 입대를 선택했다.

“창의적인 예술을 위해서는 실제 삶에서 부딪히며 처절히 사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보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 처절한 경험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군대와 전장입니다. 위대한 작가들도 그랬지요.”

결국 반야는 징집에 응해 군에 입대했으며, 더 흥미로운 도전을 위해 군과 추가 계약을 맺었다. 그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을 때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시에 해병대원으로 배치되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마리우폴로 배치되기 전에 가족에게 화상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율리아나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내가 ‘반야, 뭐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줘 봐.’라고 요청하자 동생이 들고 있던 기관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그걸 마치 어린 시절 장난감처럼 들어 보였습니다.”

보리스는 반야가 보내온 동영상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싸움은 정당합니다.”

반야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도착하면 편지를 쓰겠습니다. 포옹과 키스를 보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반야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반야는 지난해 3월 15일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제철소 인근에서 전사했다. 그가 죽은 뒤 율리아나와 보리스 부녀간에는 심각한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보리스는 율리아나가 소비에트의 ‘동포애’를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비에트의 몰락으로 “러시아인들의 영혼이 파괴되었다.”고 믿는다.

보리스의 사상은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을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지칭한 푸틴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에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대통령은 나아가 나토와 서방이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파괴하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의 책임을 나토와 서방에 돌린다. 보리스도 그 주장에 동조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 반대’는 단 한 가지 의미밖에 없다.”

보리는 율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바로 ‘러시아인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사상, 러시아의 영혼, 러시아의 문화를 위한 투쟁이다.”

율리아나는 신념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아버지나 푸틴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분명 그녀의 견해와 큰 차이가 난다.

포포바 감독은 율리아나가 그루지야에서 휴가를 보내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루지야는 대 러시아 제재로 인해 러시아인이 방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그녀와 친구들은 식사를 하면서 전쟁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나는 내 동생이 헛되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 국가는 동생의 죽음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율리아나의 집에는 반야를 기리기 위해 작은 사당이 세워졌다. 그곳에 동생이 전사한 마리우폴에서 채취한 흙도 옮겨다 놓았다. 반야의 아버지와 누나는 함께 그의 영정 앞에 서는 경우가 있다.

율리아나는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와 전쟁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뜻이 맞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미워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나는 ‘아빠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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