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영국 고등법원 판사 조나단 스위프트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의 미국 송환 명령 반대 상소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제공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있다는 것이 스페인 주류 신문사 엘파이스를 통해 밝혀지고 며칠 뒤에 나온 것이다.
13일(현지시간) 카나리 등 매체에 따르면 스위프트 판사는 어산지의 변호팀에 재상소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재상소에 새로운 증거가 추가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어산지가 2019년 대사관 건물 밖으로 강제로 끌려나와 체포된 이후, 당시 대사관 건물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던 스페인의 민간 보안기업 UC 글로벌이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감시감청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UC 글로벌의 전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 대표 데이비드 모랄레스가 칭한 ‘미국인 친구들’이 감시를 요청했고, 이들이 설치한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감시하고 있는 상황들이 미국으로 스트리밍됐다.
불법 감시 혐의를 받고 있는 모랄레스의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나온 새로운 증거에는 ‘CIA’, ‘대사관’, ‘영상’이라고 표시된 외장하드에 들어있는 파일들이 포함됐다고 한다.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크리스틴 흐라픈손은 이 파일들에 대한 스크린샷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어산지의 변호사들은 누락된 UC 글로벌의 감시 파일들에 대해 폭로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엘파이스는 보도에서, 어산지의 CIA 감시에 대한 새 단서들의 발견은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클라우드에 업로드된 기록들을 다운로드할 때 어산지의 변호사들이 문제를 찾아낸 것이다.
이들은 UC 글로벌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스페인 판사 산티아고 페드라즈로부터 CIA가 소유한 파일의 복사본을 가져올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아냈다.
엘파이스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경찰은 새 증거를 마드리드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 증거 은폐는 어산지의 미국 송환 소송에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고 한다.
증거 미공개 관련해 영국 왕립검찰청의 수칙은, 검사 또는 경찰이 준수해야 될 책무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절차를 남용하고, 중대한 물적 증거 및 성공적인 상소가 배제되는 결과가 나오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증거 미공개로 유죄판결이 파기되고 피고가 풀려난 두 가지 유명한 사건이 있다고 카나리는 설명했다.
하나는, 환경운동가 랫클리프와 드랙스 사건이다. 두 사람의 재판에서 영국 검찰이 잠복 경찰 마크의 중요 행동이 담긴 증거를 은폐한 것이 드러났고, 이들의 유죄판결은 파기됐다.
또 다른 사건은, 술집 폭파 혐의로 기소된 소위 ‘길드포드 4인’으로 알려진 4명 역시 유죄판결이 파기된 것이다. 현 어산지의 변호사 퍼스는 당시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이들 4명의 무죄 증거를 경찰이 은폐하고 있는 것을 밝혀냈다.
CIA의 감시는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카나리는 시사했다. 에콰도르 대사관 건물의 감시를 통해 어산지와 변호사들의 대화까지 감청한 것이 2019년 어산지 체포 이후 매체들을 통해 폭로됐다.
마드리드 법정은 모랄레스가 미국으로부터 타겟 명단과 함께 정보에 대한 노골적인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증언을 들었다. 에콰도르 대사관 건물의 보안을 맡게 된 UC 글로벌은 어산지의 변호사들이 포함된 이 타겟들을 특별히 주시하도록 지시받았다.
최근 드러난 새 증거는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비밀유지 침해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사건을 무효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스위프트 판사는 재상소에 새로운 증거를 추가하지 않을 것을 명시했지만, 어산지의 아내 스텔라 어산지는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어산지의 변호팀에게는 최소 두 개의 석방 옵션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으로 유럽인권재판소는 사건을 추가적으로 검토할 때까지 송환을 지연시키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해법으로, 미국과 어산지의 국가인 호주가 어산지의 영국 교도소에서 복역해 온 4년의 기간을 참작하는 데 합의하는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정미 기자]
prtjami@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