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하된 인도 영화 ‘아디푸루쉬’가 흥행에 참패한 이유
[월드 프리즘]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하된 인도 영화 ‘아디푸루쉬’가 흥행에 참패한 이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7.03 05:19
  • 수정 2023.07.03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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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디푸루쉬’의 주연 배우 프라바스 [사진 = BBC 캡처]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디푸루쉬’의 주연 배우 프라바스 [사진 = BBC 캡처]

"힌두교 신화를 근거로 한 인도 영화가 사상 최고액을 들이고도 흥행에 참패했다."

2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인도 영화 사상 최고액의 제작비가 들어가면서 떠들썩하게 입소문을 탄 영화 ‘아디푸루쉬(Adipurush)’가 관객과 비평가 들의 외면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아디푸루쉬’는 블록버스터의 모든 요소를 갖춘 영화였다. 엄청난 팬을 보유한 주연 배우와 널리 숭배를 받는 힌두교 서사시를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 막대한 예산에다 집권 ‘인도인민당(  BJP)’의 일부 지도자들의 찬사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아디푸루쉬’는 힌두교 신앙이나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최근 일련의 인도 영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서는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데 효과를 발휘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힌두교와 인도 민족주의, 또는 이 둘을 합친 공식이 사람들에게 역풍을 일으킨 것이다.

‘아디푸루쉬(Adipurush)’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서사시 ‘라마야나’는 마왕 라바나(Ravana)가 힌두교의 신 ‘람(Ram)’의 아내 시타(Sita)를 납치한 뒤 벌어진 싸움에서 ‘람’이 승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힌두어(Hindi)와 텔루구어(Telugu)로 제작된 이 영화는 최근 흥행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발리우드(Bollywood)의 분위기를 뒤집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참패는 빠르게 찾아왔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거의 만장일치로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야당 지도자들이 이 영화를 비판했고, 이웃 국가 네팔의 두 도시는 “불쾌한” 내용이 삭제될 때까지 모든 인도 영화를 상영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반발과 관객들의 외면으로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자 영화 제작진은 멘붕에 빠졌다. 일부 힌두교 단체가 영화 상영 금지를 요구했고, 여러 지역에서 시위가 열렸다. 이 뿐만 아니라 ‘아디푸루쉬’를 만든 감독 옴 라우트와 시나리오 작가 마노즈 문타시르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현재는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비평가들은 ‘아디푸루쉬’가 힌두교 관객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최근 흐름을 반영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영화들 중 일부는 종교적 극단주의를 부채질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 왜곡과 이슬람 공포증 조장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카슈미르 파일(The Kashmir Files)’과 ‘케랄라 스토리(The Kerala Story)’ 같은 영화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사람들이 ‘아디푸루쉬’에 반발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바(Shiva) 신의 열렬한 신봉자 라바나(Ravana)의 모습에 모아지고 있다. 힌두교의 신 시바는 음악적 재능을 보유한 강력한 왕이다.

눈 주변을 기괴하게 색칠하고 어두운 옷차림을 한 “영화 속 ‘라바나’는 현재 발리우드 영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무굴제국의 악당 이미지를 모델로하고 있습니다”라고, 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소움야 라젠드란은 말했다.

애초에 ‘아디푸루쉬’는 SS 라자몰리 감독의 ‘RRR’이나 ‘바후발리(Baahubali)’, 그리고 마니 라트남 감독의 ‘폰니인 셀반(Ponniyin Selvan)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아디푸루쉬’는 아마추어적인 연기와 밈(meme) 친화적인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된 학교 연극 같다고 혹평한다. 그들은 “비디오 게임” 느낌이라거나 “투박한 그래픽”이 동원되었다거나, 상상력 부족을 지적하면서,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 같은 서양 판타지 영화를 흉내낸 2차원적 스토리텔링을 조롱하고 있다.

영화 ‘아디푸루쉬’에서 라바나 역을 맡은 인도 배우 사이프 알리칸 [사진 = BBC 캡처]
영화 ‘아디푸루쉬’에서 라바나 역을 맡은 인도 배우 사이프 알리칸 [사진 = BBC 캡처]

관객들은 또 영화 속 대사에 화를 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힌두교 신들에게 쏟아지는 무례한 구어체 언어들에 반발한 것이다. 그들은 나아가 영화 속 ‘람(Ram)’ 신의 모습에도 분개했다. 영화에서는 힌두교에서 ‘Maryada Purushottam(완전한 인간)’으로 추앙하는 ‘람’ 신이 몹시 분노하는 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아디푸루쉬’의 흥행은 개봉한 주의 주말 이후 무너져 내리면서 영화 업계 관계자들조차 할말을 잃게 했다.

약 50억 루피(미화 6,100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이 영화는 힌디어 버전만으로 개봉 첫 주에 적어도 20억 루피는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현재 약 13억 루피로 흥행을 마감할 것이라고, 애널리스트 코말 나흐타는 말한다.

“이 영화는 힌디어 버전에서만 관객수가 75-80% 감소했습니다.”

나흐타 애널리스트는 BBC에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이 수치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텔루구어(Telugu) 버전도 비슷한 흥행 실적 감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화 상영 금지를 요구한 힌두교 단체와 사제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대한 불만은 더욱 깊어져만 가는 것 같다.

‘람’ 신의 탄생지로 알려진 아요디아(Ayodhya)의 람 사원 대제사장은 영화 속 대사가 “피를 끓게” 만든다고 분개했다. 그리고 우익 단체인 ‘힌두 마하사바(Hindu Mahasabha)’는 영화 속의 “왜곡된” 의상, 삽화, 대사에 대해 경찰에 고발했다. 여기에 영화 노동자 단체인 ‘전국 인도 영화 노동자 연맹(AICWA)’까지 이 영화가 힌두교도의 정서를 훼손한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영화평론가 라훌 데사이는 ‘아디푸루쉬’라는 영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을 벗어나 영화를 반대하는 배경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BBC에 “현대 힌두 민족주의의 공격적인 서사를 퍼뜨리려는 영화를 옹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디푸루쉬’에 반발하는 솔직한 정서는 신앙의 전통을 흔드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편견입니다.”

그는 이렇게 분석했다.

“인도에서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같은) 힌두 신화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정서 때문에 인도 영화에서 변화를 꿈꾸는 것조차 조롱당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오늘날 정치적 의도에 맞춰 증오를 퍼뜨리기 위해 무시로 변개(變改)되는 다른 역사물들과는 다르게 이 영화가 자신들의 신념을 건드렸다고 화를 내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분석했다.

“오늘날 인도 관객의 상당수가 힌두교 서사에 매료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오락을 즐기고 영화비만큼의 위로를 받기 위해 극장에 갑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게으르고 불성실한 영화에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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