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핵 폐기물과 기후변화의 상징인 루닛돔이 위태롭다
[월드 프리즘] 핵 폐기물과 기후변화의 상징인 루닛돔이 위태롭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7.09 06:39
  • 수정 2023.07.10 0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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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1980년 냉전 시기 미국 핵실험 폐기물 저장소로 건설된 루닛돔(Runit Dome)의 균열
일부 전문가들은 핵 폐기물을 저장하고 있는 ‘루닛돔’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public domain]
일부 전문가들은 핵 폐기물을 저장하고 있는 ‘루닛돔’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public domain]

마셜제도는 하와이와 필리핀 사이 태평양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섬나라이다.

그러나 코코넛 나무와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을 자랑하는 섬들 사이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숨어있다. 이른바 ‘루닛돔(Runit Dome)’이라 불리는 이 구조물은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쓰인 역사와 관련이 있으며, 현재와 미래의 주민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은 1946년에서 1958년 사이 마셜제도의 ‘에네웨타크 환초’와 ‘비키니 환초’에서 67개의 핵폭탄을 터뜨렸다. 미국은 냉전 과정에서 소련에 뒤지지 않기 위해 이 섬나라를 실험 장소로 활용하면서 핵폭탄 뿐만 아니라 생물학 무기도 실험했다.

이후 1970년대에 미국은 ‘에네웨타크 환초’ 내 루닛섬(Runit Island)에 건설한 18인치 두께의 콘크리트 돔 시설에 핵실험의 부산물들을 묻었다. ‘루닛돔(Runit Dome)’이나 ‘선인장 돔(the Cactus Dome)’ 또는 그냥 ‘무덤(The Tomb)’으로도 불린 이 시설에 핵실험에서 나온 폐기물들을 묻음으로써 핵실험의 청소를 시도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이 구조물이 노후화되면서 생태계 재앙이 초래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의 핵실험장이었던 마셜제도

루닛돔의 이야기는 1940년대 미국이 마셜제도를 핵무기 실험에 적합한 장소로 선정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낮은 인구 밀도와 타 국가와의 거리 및 선박들의 항로와의 거리가 선발의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1946년 미국은 이 섬에 최초의 핵폭탄을 투하했다. 이후 5년 동안 ‘에네웨타크 환초’와 ‘비키니 환초’ 인근에서는 23~225킬로톤에 이르는 8개의 핵폭탄이 추가로 폭발했다.

그러다가 1952년에 미국 정부는 더 무서운 무기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보다 1,000배 더 강력한 ‘캐슬 브라보(Castle Bravo)라는 수소폭탄을 포함해 이후 4년 동안 25개의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이 폭탄들은 아직까지도 미국이 터뜨린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으로 남아있다.

핵실험의 속도는 미 당국이 지상 실험 금지 조약의 탄생을 우려하던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1958년 한 해에만 4월 28일에서 8월 18일 사이 33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그러나 1963년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Limited Test Ban Treaty)’이 체결된 뒤에도 미국은 마셜제도에서 계속해서 핵무기를 실험했다. 뿐만 아니라 1968년부터는 수십 개의 생물학 무기도 실험했다.

1970년대에 이르자 미국은 마셜제도에서 핵무기를 실험할 만큼 다 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핵폭발로 한때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웠던 마셜제도의 환초들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생기고, 섬 전체가 파괴되었으며, 무엇보다 최악은 엄청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마셜제도를 정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미국은 핵 폐기물 정화 작업에 합의하고 곧바로 루닛섬에 ‘루닛돔’이라 불리는 ‘무덤(tomb)’을 건설하게 되었다.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된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의 폭파 장면 [public domain]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된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의 폭파 장면 [public domain]

위험을 안고 있는 ‘루닛돔’ 건설

1972년 ‘에네웨타크 환초’ 주민들이 법정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자 미국은 이 환초를 주민들에게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미국도 환초 정화에 기꺼이 동의했지만, 곧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선 ‘에네웨타크 환초’에는 310만 입방피트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있었다. 환초 내의 루닛섬은 높은 농도의 지하 오염을 남긴 11개의 핵 실험 장소였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났다. 그곳의 방사성 동위원소는 반감기가 24,000년이었기 때문에 영원히 유독한 장소로 남게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오늘날의 에너지부)’와 국방부는 ‘에네웨타크 환초’ 전역에서 방사성 잔해를 수집하여 루닛 분화구에 버린 다음 전체를 콘크리트 돔으로 덮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의회가 민간 업자에게 지불할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군을 동원해 그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7년과 1980년 사이에 약 4,000명의 미군이 올림픽 수영장 35개에 해당하는 오염된 토양과 잔해들을 분화구에 삽으로 퍼넣었다. 그들은 핵 폐기물들을 콘크리트와 혼합한 다음 377피트 너비와 18인치 두께의 콘크리트 층으로 건설된, 이른바 루닛돔(Runit Dome)에 봉인했다.

일부 안전 조치가 시행되었지만, 폐기물 대부분은 신속하게 버려졌다. 환초의 기후는 노란색 피폭 방지복을 입기에는 너무 더웠고, 플루토늄 흡입을 모니터링하는 공기 샘플러는 빠르게 고장났다.

“플루토늄을 함유한 그 먼지는 베이비 파우더 같았어요. 우리는 그 안에 갇혀서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루닛돔 건설에 불도저 운전사로 참여했던 폴 레어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종이 방진 마스크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한 개라도 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중대장은 마스크 재고가 부족하니 티셔츠라도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일을 다 마치고 그들은 불도저가 너무 뜨거워 바다에 던져 넣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었는데 나라고 무사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레어드를 비롯해 루닛돔 건설에 참였던 수백 명의 군인들은 나중에 암, 뼈 질환, 심지어 장애를 가진 자녀 출산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비 지급을 거부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암과 뼈 질환으로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짊어진, 퇴연 군인 제프 딘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닛돔은 건설에 참여했던 인력뿐만 아니라 ‘에네웨타크 환초’ 남쪽 지역에 재정착한 마셜제도 주민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돔이 무너지면서 그 안의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2년 루닛섬 북부에서 실시된 핵폭탄 ‘아이비 킹(Ivy King)’이 폭발한 뒤 버섯구름이 퍼지고 있는 장면 [사진 = ATI]
1952년 루닛섬 북부에서 실시된 핵폭탄 ‘아이비 킹(Ivy King)’이 폭발한 뒤 버섯구름이 퍼지고 있는 장면 [사진 = ATI]

여전한 ‘무덤(tomb)’의 위험

마셜제도 주민들에게 루닛돔은 여러 면에서 재앙이다. 우선 이 시설물은 미국 핵실험의 아픈 역사를 대변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콘크리트 돔이 노후화되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네르제 조셉은 1954년 3월 1일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Castle Bravo)’가 폭발했을 때 롱겔라프 환초(Rongelap Atoll)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개의 태양”이 떴던 날과 핵 낙진이 그녀의 집에 어떻게 쏟아졌는지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틀 후에 조셉과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켰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건강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롱겔라프 환초에 살 때 우리는 모두 하나였습니다.”

수십 년간 갑상선 질환을 앓아온 조셉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놀았는데 그 터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셜제도에서의 핵실험은 조셉의 과거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미래도 앗아갈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루닛돔에는 111,000입방야드의 방사성 폐기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폭풍, 해일 등이 돔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그 내용물이 태평양으로 쏟아질 수 있다.

“루닛돔은 핵실험과 기후변화가 결합된 비극적 상징물과 같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사빈 기후변화법 센터’ 소장인 마이클 제라드는 <가디언>지에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핵 실험과 대량의 플루토늄이 남겨진 결과입니다.”

2019년 미국은 마샬제도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협정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루닛돔은 계속해서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에네웨타크 환초’ 출신의 마셜제도 상원의원 잭 아딩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것은 우리의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한 소스에만 전적으로 맡길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중립적인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핵 쓰레기들을 품고 있는 루닛돔이 갈라지고 누출될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핵 과학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섬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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