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구소련 시절의 재래식 폭탄에 활공 기능과 유도 기능을 장착시킨 개량 폭탄이 우크라이나군에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있다고, 11일(현지 시각) CNN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방위력을 무력화하고 전선의 균형추를 기울게 하는 강력한 공중 투하 폭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구소련 시대의 재래식 폭탄을 개조해 폭 15미터의 분화구를 생성할 수 있는 활공 폭탄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결과이다.

FAB-1500이라 불리는 이 폭탄은 1.5톤 무게의 거의 절반이 고폭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FAB-1500은, 수많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의 범위가 미치지 않는, 약 60-70km 떨어진 거리에서 전투기에 의해 공중에서 발사된다. 이 폭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지상전을 벌이기 전 어떤 식으로 전쟁을 계획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도네츠크 지역 전선에서 촬영된 최근 영상은, FAB-1500이 우크라이나군이 이 지역에서 방어 시설로 활용하는 화력 발전소, 공장 및 타워 블록을 강타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다.

FAB-1500은 목표물을 향해 활공할 수 있는 유도 시스템과 팝업 날개를 이용해 목표물로 날아간다. 군사 전문 웹사이트 ‘TheWarZone’에 FAB-1500 폭탄 개발에 관해 글을 기고한 조셉 트레비식은 이 폭탄이 “러시아의 전술 제트기들에 새롭고 훨씬 더 파괴적인 원거리 공격 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조종사가 적의 방어 시스템을 회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한다.

우크라이나 제46항공 기동여단 소속 병사 한 명은 지난주 도네츠크 최전선 도시 크라스노호리브카에서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는 우리는 포 공격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크들(괴물이라는 뜻의 러시아군을 비하하는 표현)은 더욱 강력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으며, 공군 자산, 특히 FAB-1500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FAB-1500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살아남더라도 부상을 면키 어렵습니다.”

“이것은 우리 군인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참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FAB-500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가 했더니, FAB-1500은 완전 생지옥입니다.”

FAB 폭탄은 도네츠크 지역에서 펼친 러시아 공세, 특히 지난 2월에 함락된 아우디이우카 주변의 우크라이나 방어 시설을 파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유리 이나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우디이우카 전투 직전과 전투 과정에서 며칠 만에 수백 개의 공중 폭탄이 발사됐다”고 말했다. 

“단 이틀 만에 아우디이우카 방향으로 250발이 날아왔습니다.”

FAB-1500은 현재 모스크바 인근 공장에서 값싸면서도 강력한 미사일 버전으로 전환되고 있는 구소련 시대의 ‘재래식 폭탄’ 중 가장 강력한 폭탄이다.

‘런던 왕립연합군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저스틴 브롱크는 러시아가 “현대식 활공 키트를 새로 제조하는 데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지만, 재래식의 기본 폭발물 패키지는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전선의 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우크라이나의 고정식 방어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에 사상자가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의 이나트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매우 저렴하거나 빠른 변화는 아니지만, 미사일 제작에 소요되는 수백만 달러에 비해 훨씬 돈이 적게 듭니다. 미사일에 비하면 껌값 수준이라는 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러시아군 블로거들은 FAB-1500의 정확도가 테스트되던 지난해 9월부터 이 무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Fighterbomber’의 텔레그램 채널은 “수개월 간의 시행착오 끝에” FAB-1500이 처음으로 “전투 목표”를 “정확하게” 명중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에 정통하고 거의 5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Fighterbomber’는 새로 개발된 활공 키트가 폭탄이 사거리를 늘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함께 FAB-1500의 정확도는 5미터 이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소식통 모두 남쪽의 헤르손과 북쪽의 하르키우에서 대규모 폭탄이 사용되었다고 밝혔었다.

그 후 금년 1월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모스크바에 있는 주요 무기 제조업체인 ‘JSC 전술미사일공사(JSC Tactical Missiles Corporation)’를 시찰하고 활공 폭탄에 장착하도록 개발된 ‘랩어라운드 날개(wrap-around wings)’를 시연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러시아 국방부 영상에 따르면, 이 업체는 재래식 자유 낙하 폭탄을 목표물을 향해 활공할 수 있는 ‘고정밀’ 폭탄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업체의 공장장은 연중무휴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생산성이 40% 증가했다고, 쇼이구 장관에서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브롱크 연구원은 개조된 FAB 폭탄은 고정된 표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결함도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위치는 동부에서 치열한 소모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러시아군에 대부분 알려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AB-1500 폭탄을 발사하는 러시아 전투기는 천하무적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최근 몇 주 동안 러시아 공군의 수호이 Su-34 전투기 여러 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방공망은 약 70km 떨어진 항공기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이나트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공 방어 능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우리의 최전선 위치를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도 활공 폭탄을 날려 보내 더 멀리 날아가 후방 지휘소를 포함해 후방의 보급품이나 탄약 등에도 타격을 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수호이 Su-35와 Su-34 폭격기는 우리의 사정거리만큼 접근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더 멀리 날아가는 장거리 대공 방어 능력을 갖춘다면 우리는 최전선에서 이 러시아 제트기들을 더 멀리까지 격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브롱크 연구원은 러시아가 활공 폭탄을 개발함으로써 전쟁 초기 제한된 역할에 국한되었던 공군의 전술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의 패트리어트 방어 시스템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제한적으로 제공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 패키지가 잠을 자면서 패트리어트에 사용되는 미사일의 공급도 부족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러시아의 공중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장거리 대공 방어 무기를 거의 매일 간청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F-16 전투기는 올해 하반기까지도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만일 도입된다면 러시아 전투기의 접근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는 사이 특히 도네츠크를 중심으로 최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공습에 노출되어 있으며, 우크라이나군 참모부에 따르면 하루에 100번이 넘는 공습이 있을 때도 있다.

러시아군이 이전에 포 공격을 집중해서 우크라이나 진지를 파괴한 것처럼, 이제 그들은 수량이 무한해 보이는, 가공할 FAB-1500을 사용해 우크라이나군이 방어할 수단도 도망갈 곳도 없게 만들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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