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지배구조 구축은 기업이 책임 경영을 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업의 지배구조 방식과 절차는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강제하는 정부의 행태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무조건 이런 식으로 해결하라”고 압박하는 형태로 비춰지는 까닭이다.
정부 인사 가운데 삼성에 먼저 총대를 겨눈 건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험업법 개정 전이라도 삼성생명이 자발적으로 삼성전자 지분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곧바로 ‘저승사자’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 “삼성 지배구조 개편이 없다면 이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과거 수차례에 걸쳐 삼성의 미래전략실을 “막강한 권력 뒤에 숨겨진 조직”이라고 비판하던 김 위원장다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이후 발언을 짚어 보면 그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존 미전실(미래전략실)과 다른 새로운 그룹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컨트롤타워에서 잠정 의사결정 후 계열사에서 독립적인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리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이 그토록 비난하던 과거 미전실과 그가 제시한 새 컨트롤타워가 뭐가 다른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의중과 별개로 외관상 미전실은 그가 제시한 새 조직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에서 김 위원장이 또 다른 미전실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라고 꼬집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을 꺾는 데 열중한 나머지 향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을 생각해 놓지 못한 새로운 집권세력이 결국 구태를 되풀이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체제 개편 과정에서 정부가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간섭으로 일관한다는 건 분명 문제다. 하지만 더 큰 혼란은 정부가 기업의 퇴로를 차단한 채 제대로 된 방향마저 제시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 경우 설령 기업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들 정부 역시 비난의 화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모양새다.
[위키리크스한국=양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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