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의 핵무기 정책으로 '선제 불사용'(no first use)을 채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영국·프랑스·독일 및 일본·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기존 핵 정책이 바뀌지 않도록 미 정부를 상대로 잇따른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핵선제 불사용 원칙은 미 본토가 직접적인 핵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새로운 핵전략 지침으로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작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 FT는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올해 초 동맹국들에 핵무기 정책 변화와 관련 질문지를 보냈고, 동맹국들은 어떤 정책 변화도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며 압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전했다.
또 핵 선제 불사용 정책에 대한 동맹국 내 반대 의견을 미 당국자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현재 동맹국들은 미국의 핵 정책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하는 '선제 불사용'이나 적국이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단념시키거나 미국을 공격한 상대에 보복할 때만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명 '단일 목적'(sole purpose) 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냉전 이후 핵무기 정책을 전략적으로 다소 모호하게 유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적국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가 '선제 불사용'이나 '단일 목적' 정책을 통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상황을 명확하게 설정하면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을 담대하게 만들 수 있다며 우려한다고 FT는 전했다.
익명의 한 유럽 관계자는 FT에 "이 정책은 러시아와 중국에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나 일본 등의 자체 핵무기 개발을 촉발해 그 지역의 군비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연내 NPR 보고서를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동맹국들의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FT는 10여명의 의회 내 유럽 및 아시아 관료들, 비평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로 이달 초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하자 그를 상대로 한 동맹국들의 로비가 매우 치열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이 핵 사용 정책에 변화를 고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도통신은 '핵 없는 세계'를 내세운 버락 오바마 정권이 2016년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검토했을 때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도 추진파로 알려져 있다며 당시 일본 등 일부 동맹국의 반대로 미국 정부가 포기한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맹국들의 반대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핵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도 '단일 목적'으로의 전환을 지지한 바 있으며 취임 전에는 외교전문지에 핵 보유 목적을 핵 공격 억지와 반격에 국한해야 한다며 동맹국과 협의해 새로운 핵전략을 짜겠다는 의향을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최근 안보 정책에서 동맹국이나 군사 고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FT는 전했다.
이에 대해 미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제임스 리시는 FT에 "'단일 목적' 정책은 '선재 불사용' 정책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둘 중 어느 하나를 채택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우리 동맹국에 대한 완전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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