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홍콩 TV 드라마 인종차별 논란... 동남아인 가정부를 비하한 드라마에 필리핀 '발끈'
[월드 투데이] 홍콩 TV 드라마 인종차별 논란... 동남아인 가정부를 비하한 드라마에 필리핀 '발끈'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4.16 06:17
  • 수정 2022.04.1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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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Barrack O'Karma 1968’의 홍보 화면 [TVB 제공]
드라마 ‘Barrack O'Karma 1968’의 홍보 화면 [TVB 제공]

홍콩의 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가 필리핀 출신 가정부 역할을 하기 위해 동남아인처럼 얼굴에 갈색 분장을 한 것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15일(현지 시각) CNN 방송이 보도했다.

현재 온라인에서 폭넓게 확산하고 있는 한 동영상에서, 이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 프란체스카 왕은 브러시로 화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 얼굴을 갈색으로 바꾸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홍콩 최대 공중파 방송인 TVB가 송출하고 있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드라마 ‘Barrack O'Karma 1968’에 출연 중이다.

지난 12일 방영된 이 시리즈 드라마의 7회에서 프란체스카 왕은 한 부부 집의 가정부로 나오는데, 이 부부는 그녀가 부두(voodoo) 의식을 행한다고 의심한다. 일부 시청자들은 가정부 역의 배우가 갈색 얼굴(brownface)일 뿐만 아니라 필리핀 사람의 억양을 흉내낸다고 비난하는 것을 뛰어넘어 필리핀 여성 역할을 어째서 홍콩 여배우가 맡아서 부정적 고정관념을 조장하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콩 주재 필리핀 총영사 랄리 테자다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이 드라마를 가리켜 “노골적으로 무지를 드러내고, 무감각하며, 완전히 구역질난다”고 묘사했다.

“필리핀 가정부의 묘사와 동남아인 피부색을 강조한 것은 ‘반 무이(Ban Mui)’를 특히 돋보이게 하려는 부정적 고정관념의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

필리핀 총영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반 무이’는 필리핀 출신의 젊은 여성이 사용하는, 광둥 지역의 저속한 속어를 가리킨다.

홍콩 인구 중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지만, 이 도시에는 약 20만 명의 필리핀 가정부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 가정부들 상당수는 인종차별, 저임금 노동, 그리고 주거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홍콩에서 가정부 일을 하는 5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이 채 안 되는 숫자만이 개인 침실을 제공받고, 44%는 하루 노동시간이 16시간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홍콩의 몇몇 언론사들은 프란체스카 왕의 연기를 칭찬하고 나섰다. 지역 뉴스 방송사인 ‘HK01’은 그녀를 “진짜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칭찬하며, 그녀가 “위대한 연기를 펼쳤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와 홍콩에서 성장한 배우 프란체스카 왕은 지난 13일 이 드라마의 홍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포스팅에는 현재 1700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이 그녀의 연기를 비판하고, ‘갈색 얼굴’이야말로 문화적 무지를 드러낸 결과라는 비난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인정차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한 댓글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정말 실망이다.”

“외국에서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댓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당신이 가볍게 그린 가정부의 모습은 정말 힘든 일자리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CNN의 질의에 프란체스카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프란체스카 왕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되어 있는, 시리지물인 ‘Barrack O'Karma 1968’의 홍보 포스터 [TVB 제공]
프란체스카 왕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되어 있는, 시리지물인 ‘Barrack O'Karma 1968’의 홍보 포스터 [TVB 제공]

하지만 TVB 방송국은 CNN 보도에 대한 성명을 내고 극의 내용은 “완전히 허구(purely fictitious)”이며 “극적 전개를 위해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배우의 전문적 연기력과 역할에 대한 섬세한 연구를 통해 ‘루이자’라는 캐릭터가 성공적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 성명은 이렇게 이어졌다.

“TVB는 시청자들의 최상의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우리는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어떤 국가를 차별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사과를 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TVB 측은 가정부 배역에 필리핀 출신 배우를 캐스팅할 의도는 없는지 묻는 CNN의 질의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방영분은 TVB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내려진 상태이다. 하지만 방송국 측은, 특별한 설명 없이, 콘텐츠를 좀 더 수정한 후 다시 올리겠다고 말했다.

홍콩의 자선단체 ‘가사도우미 지원(Help for Domestic Workers)’의 전무이사 마내사 웨제싱흐는, 이 드라마에서 필리핀 가정부 역에 필리핀인이 아닌 배우를 캐스팅한 결정은 홍콩의 소수민족이 직면한 ‘증발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emblematic of the erasure)’이라고 말했다. 즉, 소수민족이 당면한 홍콩 내 인종차별 문제가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과 고단한 삶에 대해 보다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화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겁니다. 홍콩에 이러한 목소리들이 없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 출신과 같은 소수민족들은 가정부라는 편견과 믿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피해를 입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 토론조차 열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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