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시진핑을 반대한 고가 위의 남성과 천안문 탱크 앞의 남성
[월드 프리즘] 시진핑을 반대한 고가 위의 남성과 천안문 탱크 앞의 남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25 05:51
  • 수정 2022.10.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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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베이징 고가도로 위에서 시위하는 남성. [사진 = 연합뉴스]

BBC는 24일(현지 시각) 중국 공산당 대회 전날 베이징 고가도로 위에 올라가 시진핑 주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던 남성과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탱크 앞을 가로막았던 남성을 비교하며 이번 시위의 의미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주 날씨가 흐린 어느 날 오후, 한 남성이 종이 상자와 자동차 타이어를 들고 인파로 분주한 베이징 하이뎬 대학가의 한 고가도로에 올랐다.

주황색 작업복과 노란색 안전모를 쓴 그는 틀림없는 노동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빨간색 페인트로 슬로건을 쓴 두 개의 거대한 흰색 배너를 펼친 다음 타이어에 불을 붙였다. 그는 타이어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자 확성기를 들고 반복해서 외쳤다.

“학교와 직장에서 파업을 벌이고, 독재자이자 반역자인 시진핑을 제거하자! 우리는 먹고 싶다, 자유를 원하고, 투표를 하고 싶다!”

순간 그는 시진핑 주석 집권 3기의 성공적인 시작을 방해하는 시위 중 하나를 극적으로 전개한 역사적 주인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위는, 당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을 배경으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널리 퍼진 소셜 미디어 열풍에 불을 당기고, 이에 대항한 검열과 탄압을 촉발하며, 중국 반체제 운동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유산을 남기게 되었다.

시위 직후,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 등에서는 시위 사진과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는데, 이는 이 사건이 일반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느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국에서도 공개적인 시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공산당 대회 전날 그것도 수도에서 시진핑 주석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정치적 시위는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위는 민감한 정치 행사에 대한 엄격한 통제의 허점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 남자는 사전 수색 과정을 용케 잘 피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차에 신속하게 끌려가지 전까지 행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또한 사진과 영상을 가차 없이 삭제하는 중국 검열관들을 더욱 긴장하게 하면서 온라인에서 ‘베이징(Beijing)’ 및 ‘다리(bridge)’와 같은 평범한 용어들을 검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사태를 낳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에어드롭(AirDrop) 및 파일 전송 서비스로 눈을 돌리거나 “나는 목격했다.(I saw it.)”와 같은 은밀한 문장을 찾아내면서 당국과 쫓고 쫓는 고양이와 쥐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내가 몇 년 동안 본 것 중 가장 엄혹한 단속입니다. 단속의 규모 ​​면에서 볼 때 이는 분명 과잉입니다.”

미국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China Digital Times)>의 검열 분석가인 에릭 리우는 이렇게 분석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현재의 숨막히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떠들썩한 사건과 함께 이 시위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끓어오르게 하면서 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주에 격리 중이던 14세 소녀가 사망한 사건은 대중의 화를 돋우는 또 하나의 소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일반인들이 겪는 좌절과 피로감은 거의 모든 계층으로 퍼졌나가고 있다고, 관측통들은 말한다.

최근 몇 달 동안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펼쳐지고 있는 규제와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 대량 검사로 인해 “중산층과 상류층 사람들이 실제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제로코로나 정책은 특권층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들은 정권이 자기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고 여긴다.”고 노틀담 대학의 정치학자 빅토리아 후이는 분석했다.

이번 고가 위의 시위는 또한 중국이 지향하는 권위주의 노선에 대해서도 깊은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시위자가 펼친 한 배너에는 ‘지도자는 없다. 우리는 투표를 원한다.’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시민이다.’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국립대만대학의 사회학자인 밍쇼 호 교수는 개혁주의자였던 덩샤오핑 이후로 중국 지도자들은 규제의 강화와 완화를 오가는 냉온탕 정책으로 통치하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그런 주기가 없고 통제력만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로코로나 정책은 사람들의 자유를 많이 제한하면서 더욱 독재적으로 변해가는 통치 방식에 따른 증상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시진핑의 집권에 대한 모든 토론과 비판은 사전 검열에 의해 지속적으로 차단되고 있으며, 검열 당국은 3연임을 암시하는 인터넷 은어인 ‘하나의 열쇠로 3연속(three-in-a-row with one key)’을 금지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은 고가 시위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으며, 이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시진핑의 재신임 전날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호 교수는 “시의 적절하게도 이번 시위는 시진핑 3연임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이에 호응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천안문 사태 때 탱크 앞을 가로막았던 남성 [사진 = 연합뉴스]
천안문 사태 때 탱크 앞을 가로막았던 남성 [사진 = 연합뉴스]

탱크 앞의 남성에서 고가 위의 남성으로

일부 사람들은 이번 시위의 주인공을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등장한 익명의 탱크 맨과 비교하며 이 시위자를 ‘고가 위의 남성(Bridge Man)’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자가 천안문 탱크맨과 같은 수준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여받을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고가 위의 남성’을 특정할만한 뚜렷한 이미지가 없으며 그의 시위 또한 대중으로부터 많이 고립된 나홀로 시위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안문 광장의 무명의 남성은 보도 사진 등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중국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당국에 의해 금기시 되고 있는 잔혹한 진압이라는 유산을 물려준 대중 운동에 등장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가 위의 남성’의 행동이 대규모 봉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대회 기간 동안 대중이 파업을 하고 다양한 시민 불복종 행위를 하라는 그의 요구가 묵살되었음이 이를 입증한다는 말이다.

“이런 개별적 시위는 공산당이 두려워하는 집단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당국은 ‘고가 위의 남성’보다 더 큰 위협도 잘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 전문가 훙호풍은 최근 몇 년 동안 활동가 및 변호사 등 지식인을 상대로 한 탄압을 지적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당국에게 이러한 ‘불만의 씨앗’이 있음을 경고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을 핑계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 ‘고가 위 남성’의 극적인 항의 표시와 메시지는 그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이제 ‘고가 위 남성’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결기로 검열에 맞서고 있다.

인권단체들 온라인에서 그의 정치적 슬로건을 포스터와 밈(meme)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시위 배너와 슬로건이 중국과 전 세계의 대학, 공공 벽, 다리, 심지어 화장실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을 암시하는 빵 부스러기의 디지털 흔적을 남긴 물리학자 등에 초점을 맞춰 미스터리한 시위자 찾기를 시작했다. 이 운동에는 일부가 사본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유포한 온라인 선언문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그를 기억하고 싶다는 존경과 서약을 담은 메시지가 넘쳐나고 있다.

현재 온라인에서 특정되고 있는 인물이 진짜 ‘고가 위 남성’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신비한 시위자가 희망의 상징으로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특히 천안문 사태 이후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밍쇼 호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당국에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는 가혹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위키리키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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