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인종차별 없는 나라’ 원칙 흔들리는 프랑스
[월드 프리즘] ‘인종차별 없는 나라’ 원칙 흔들리는 프랑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7.04 05:54
  • 수정 2023.07.0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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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프랑스 낭테르에서 일어난 10대 총격 사망 항의 시위 도중 차량이 불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프랑스 낭테르에서 일어난 10대 총격 사망 항의 시위 도중 차량이 불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프랑스 경찰관이 교통 검문에 걸린 알제리계 10대 소년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총으로 쏴 즉사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한 지 3일(현지시간)로 일주일이 됐다.

피해자 나엘(17)군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할머니 등 많은 사람이 자제를 호소하면서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번 사태가 인종 갈등과 불평등, 빈곤, 불공정한 법집행 등 오랫동안 누적돼온 사회적 병폐가 한꺼번에 곪아 터진 결과라는 자성이 일고 있다.

나엘 군이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숨진 지난달 27일 밤부터 엿새 연속으로 전국 곳곳의 주요 도시 경찰서와 시청 등 공공기관을 겨냥한 공격이 잇달았고, 상점들을 노린 약탈과 길거리에서 이유 없는 방화도 비일비재했다.

나엘 군의 사망에 분노한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자동차, 쓰레기통 등에 불을 지르거나, 창문을 깨뜨리면서 분풀이하는 식이었고, 시위를 조직해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유족이 참여한 추모 행진 외에는 없었다.

지난달 27일 아침 파리 서쪽 교외에서 17세의 알제리계 프랑스인 운전자가 정차 검문(경찰이 마약 조사나 기타 범죄 수사를 위해 차량을 세우고 검문하는 일) 중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조준사격에 맞아 숨진 뒤 프랑스 전역에서 사흘 동안 격렬한 시위가 지속됐다.

이번 시위 사태로 약 4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지금까지 수백 명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총격을 가한 경찰관은 고의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CNN방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키스 매기(Keith Magee)의 칼럼을 내보냈다. 칼럼의 필자 키스 매기는 신학자이자 사회정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정치 자문역도 맡고 있다.

그는 또 뉴캐슬대학 사회정의학과 교수 겸 학과장이며,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대학의 ‘혁신 및 공공복리 연구소’에서 문화 정의를 연구하는 객원교수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소셜 플랫폼이자 싱크 탱크인 ‘검은 브리튼과 그 너머(Black Britain and Beyond)’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칼럼의 전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건 다음 날인 지난주 청년 나헬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사건 당시 동영상의 섬뜩한 장면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도 총격에 대한 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나헬의 죽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인지는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사건으로부터 적어도 두 가지 명확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즉, 프랑스라는 국가가 제도적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정차 검문 중 경찰의 총기 사용을 규제하는 프랑스 법률의 모호성이다.

만일 이 비극적 사건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언론들은 피해자의 출신 성분을 집중 조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헬이 사망한 곳이 프랑스이기 때문에 이 사건 촉발의 한 요인일 수도 있는 피부색 문제는 프랑스 국내 뉴스와 논평의 초기 흐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몇 가지 주목할만한 예외가 있다. ‘유럽 생태녹색당(Écologie-Les Verts)’의 마린 톤델리에 대표는 이번주 서드 라디오(Sud Radio)와 인터뷰를 갖고 “프랑스 경찰의 미국화”를 비판했다. 

“나는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살해된 백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저명한 반인종차별 운동가인 로카야 디알로는는 BFMTV에 나와 프랑스 경찰은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종 문제를 입에 담은 사실만 가지고도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의 영향을 받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종 문제 언급이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는 프랑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공식 담화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국가(color blind)라고 주장해왔다. 프랑스 헌법 제1조는 “출신, 인종, 종교의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있다. 즉, 원칙적으로는 출신, 인종, 종교의 차이는 순전히 개인차일 뿐이라는 말이다.

국가는, 국민 모두가 프랑스라는 공화국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으로만 여긴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1978년 제정된 법률은 “인종 또는 출신,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입장”을 드러내는 개인 데이터의 수집 또는 활용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제도로만 보면 프랑스는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가 맞다.

하지만 주로 아프리카, 카리브해, 아시아에서 온 프랑스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의 상당수는 수십 년 동안 삶의 전 분야에서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얼마나 많은 유색인종들이 교육 시스템에서 소외되고 있는지, 그들 중 실업자는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택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종 프로파일링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을 때 경찰이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매우 쉽다.

그 결과, 프랑스 ‘국가인권자문위원회’의 2022년 보고서가 밝히고 있듯이 연간 120만 명이 “최소 한 번의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또는 외국인 혐오 공격의 피해”를 경험하면서 6,800만 명이라는 인구가 사는 나라에서 인종차별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반면, 어떤 문제가 벌어지면 가해자만을 연못을 흐리는 미꾸라지로 희생양 삼아 빠져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조직적 인종차별의 문제 제기는 '쇠귀에 경 읽기'로 그치고 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인종차별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에게는 저주와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살아본 흑인 남성으로서 나는 경찰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내 경험과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체험 때문이 아니라 데이터가 그렇게 말해주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만일 부당한 일을 당한다면 최소한 그 피해의 정도를 계량하고 조사하고 근절을 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울 것을 약속한 후보의 공약 이행 여부를 보고 그 책임을 지는 대표들에게 투표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에서는 이 중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종차별 없는 프랑스라는 공화국의 신화는 소수 민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가스 라이팅에 불과하며, 국가에 의한 조직적 인종차별을 경험한 피해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흑인이나 북아프리카 출신의 많은 이민자들은 주요 도시를 벗어난 ‘시테(cités)라 불리는 곳이나 교외에 내몰려 살고 있다. 그곳은 고도의 사회·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가려진 인종 불평등을 향한 절망과 분노가 만연한 지역들이다.

특히 유색인종 청년들에 대한 경찰의 인종차별적 대우가 이러한 분노를 더욱 악화시키던 중 이번 정차 검문 사건이 발생해 기름에 불씨가 튀어버린 것이다.

2017년 테러 공격 이후 도입된 새로운 법은 정차 검문 중에 운전자가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피검문자가 다른 차량들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에게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더 큰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낭테르(Nanterre)시 의회 의원인 사브리나 세바이히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은 이 법이 도입된 이후 정차 검문으로 인한 치명적 사고가 극적으로 증가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법의 모호성을 비판했다. 로이터통신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3명이 경찰의 손에 사망했으며, 나헬은 올해 세 번째 희생자로 “2017년 이후 피해자의 대다수는 흑인이나 아랍계”였다.

나헬의 사망 이후 벌어진 지난 며칠 동안의 격렬한 반응은 아마도 어떤 그래프나 차트보다 더 분명히 교외 지역의 인종 갈등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보여줄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시위 사태는 폭력과 약탈을 동반하는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시위대는 고의적으로 공화국의 상징물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찰과 소방관이 공격을 받고, 시청과 학교가 불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목요일 나헬 어머니의 주창(主唱) 아래 낭테르를 관통하며 6,000명이 참여한 격렬한 시위는 나헬을 추모하는 의식으로 시작되었지만, 법 집행 기관과의 충돌을 수없이 빚었다.

프랑스 정부는 운전자가 정차 중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경찰이 합법적으로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하고 법 집행 요원에 대한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사브리나 세바이히 의원 등의 요청에 긴급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랑스 경찰과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인종차별이 조사되고 숫자화되고 해결될 때까지 가장 가난하고 황량한 교외 지역의 이름들은 인종차별적 불의와 갈등이 가려져 있지만 상존한다는 증거로 계속 사용될 것이며, 이런 지역들은 프랑스 사회의 화약고로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처럼 프랑스의 교외 지역에서 갈등이 폭발할 때마다 유일한 승자는 극우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선거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이런 기회를 더 많은 인종 갈등과 반이민 증오를 뿌릴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프랑스 공화국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정신은 나의 조국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제도적 인종차별을 조사하고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그러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보고 많은 시민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애석하면서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

젊은 나헬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적어도 프랑스의 제도적 인종차별을 포함한 여러 차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이 촉발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나헬이 피부색이나 출신 성분 때문에 사망하게 되었다는 확실한 물증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면 뭔가 매우 잘못된 사회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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