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줌인] 10년 전 영화 ‘더 콩그레스’ 오늘날 할리우드의 AI 위기를 예측하다
[인공지능 줌인] 10년 전 영화 ‘더 콩그레스’ 오늘날 할리우드의 AI 위기를 예측하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7.22 07:04
  • 수정 2023.07.2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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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도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로빈 라이트는 영화계의 성차별에 직면한 44세 한물간 배우로 AI에 배우의 권리를 넘기라는 유혹을 받는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도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로빈 라이트는 영화계의 성차별에 직면한 44세 한물간 배우로 AI에 배우의 권리를 넘기라는 유혹을 받는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한 장면]

할리우드의 배우와 작가들이 AI에 위기의식을 느껴 벌이는 파업이 몇 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늘의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한, 2013년에 제작된 영화 ‘더 콩그레스(The Congress)’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BBC에 따르면 10년 전 미국 배우 로빈 라이트(Robin Wright)가 주연을 맡은 영화 ‘더 콩그레스’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에 속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할리우드 종사자들이 AI 문제로 파업을 벌이는 상황에서 섬뜩할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는 영화라고, 영화 평론가 카린 제임스(Caryn James)는 말한다.

설립된 지 90년에 16만여 명이 소속된 미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과 미국 작가 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의 파업으로 할리우드가 거의 무기한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일부 유명인사들까지 거들고 나섰다.

조지 클루니는 지난주 CNN에 “이번 파업은 우리 업계의 변곡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작가들이 파업에 들어간 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잡지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 당장 삐걱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작자인 제프 그린(Jeff Green)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곧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조지 클루니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실존 인물이고, 실제로 그런 말을 한 것이 분명하지만, 제프 그린은 누구란 말인가? 

사실 제프 그린은 유명무실했던 영화 ‘더 콩그레스(The Congress)’에서 배우 대니 휴스턴(Danny Huston)이 연출한 허구의 캐릭터이다. 2013년 발표된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양대 파업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영화산업의 AI(인공지능) 위기를 놀랍도록 사실적이고 상세하게 예측했다. 

63년 만에 초유의 파업에 나선 할리우드 [사진 = 연합뉴스]
63년 만에 초유의 파업에 나선 할리우드. [사진 = 연합뉴스]

오늘 할리우드의 위기를 빼다박듯 그리고 있는 영화 속 장면에서 제작사 대표는 실제 자기 이름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스타 로빈 라이트에게 접근해 그녀의 이미지에 대한 AI 판권을 넘기라고 설득한다. 바로 이 장면이 오늘날 할리우드 종사자들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배우가 AI 판권을 매각하면 그 배우는 더 이상 실제 배우로는 활동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는다.

2008년 오스카상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작인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로 잘 알려진 아리 폴만(Ari Folman)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은 ‘더 콩그레스’는 AI 활용과 관련한 배우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권리 포기, AI 권리 양도에 따른 계약의 난맥상 등을 정확히 예측했다. 

사실 AI의 미래를 날카롭게 예견한 작품은 ‘더 콩그레스’ 하나만은 아니다. 2015년 발표된 넷플릭스(Netflix)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BoJack Horseman)’ 시리즈에서 제작자인 레니 터틀타웁은 보잭이 영화 세크러태리엇(Secretariat)에 주연을 맡는 동안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AI 복제본 제작을 위해 그를 스캔하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터틀타웁은 보잭의 가상 이미지를 더 좋아하게 되고, 보잭 몰래 이를 사용한다. 또, 지난달 넷플릭스에서 첫선을 보인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리즈의 에피소드인 ‘조은은 끔찍해(Joan is Awful)’ 에서 살마 하이에크는 자신의 AI 권리를 판매한 뒤 더 이상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오싹한 순간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더 콩그레스’이다. 영화 속의 로빈 라이트에게는 다시는 배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제작사의 거래를 받아들여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녀는 영화계에서 신뢰할 수 없고, 까다롭다는 낙인이 찍혔고, 44세에 이르자 팬들로부터 잊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로빈의 실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게 만들고, 40대가 된 여배우들의 두려움을 파고든 제작자 그린은 그녀에게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버터컵이나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를 원해요.”라고 말한다. 로빈이 실제로 20대 인기 절정일 때 주연했던 그 유명한 역할을 거론한 것이다. AI가 젊고 생동감 있던 20대 때의 로빈 라이트를 되살려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로빈은 자신의 AI 역할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저항한다. 배우의 디지털 이미지 통제권에 대한 논쟁은 이번 할리우드 파업에서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이며, 양측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 미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측의 협상 책임자인 더글라스 크랩트리-아이얼랜드는 제작사는 배우의 이미지를 디지털로 입력해 무단으로 영구히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작자를 대표하는 그룹인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듀서 연합(AMPTP)’ 측 대변인은 AI 디지털 이미지는 배우의 동의 하에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콩그레스’에서는 로빈 라이트의 AI 복제 배우가 저급한 장면에 출연하면서 실제 로빈 라이트를 두고두고 후회하도록 만든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한 장면]
‘더 콩그레스’에서는 로빈 라이트의 AI 복제 배우가 저급한 장면에 출연하면서 실제 로빈 라이트를 두고두고 후회하도록 만든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한 장면]

‘더 콩그레스’의 선견지명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요소는 AI가 배우에게 미치는 복잡성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다룬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빈의 변호사는 AI 사용 계약서에 그녀의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통보한다. 그는 포르노물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금지 조항은 따냈지만, 공상과학물(sci-fi)은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AI 이미지는 영화 ‘반란 로봇 로빈(Rebel Robot Robin)’ 등의 조잡한 액션물 시리즈에 등장하고, 그녀의 이미지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처럼 폭탄애 올라타고 떨어지면서 기쁨에 넘치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귀결된다. 이 때문에 로빈은 자신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더 콩그레스’는 부분적으로 공상과학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의 1971년 작품 『미래학회(The Futurological Congress)』를 기반으로 했지만, 영화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할리우드와 AI 배우 사이의 갈등이라는 플롯은 전적으로 아리 폴만 감독의 소산이다. 

로빈이 AI로 변신 후 영화는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완전히 애니메이션 영화로 바뀌면서 그녀는 온통 삼원색으로 대담하게 그려진 세계로 뛰어든다. 

영화는 종반부로 가면서는 판타지 대 현실이라는 보다 넓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만, 폴만 감독은 할리우드의 미래를 예견하는 데에도 충실하다. 이제 만화로 등장하는 제작자 그린은 영화 자체가 제거되고, 관객이 화학물질을 흡입한 뒤 로빈과 같은 인기 배우가 되어 삶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로빈과 그린이 존재하는 바로 그 세계를 창조하는 시나리오 작가와 애니메이터는 AI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년 뒤 실제로 벌어질 공포를 예견이라도 한듯이.

‘더 콩그레스’는 AI 위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양측이 10년 전 이 아리송하면서 이름 없던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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