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줌인] 해외 도피 15년 만에 돌아온 탁신 前 태국 총리...귀국 직후 체포 '막후 협상설'
[월드 줌인] 해외 도피 15년 만에 돌아온 탁신 前 태국 총리...귀국 직후 체포 '막후 협상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8.24 05:51
  • 수정 2023.08.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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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망명생활을 해온 태국 정계의 실력자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22일 오전 귀국했다. [사진  = 연합뉴스]
오랜기간 망명생활을 해온 태국 정계의 실력자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22일 오전 귀국했다. [사진 = 연합뉴스]

쿠데타 정권 하에서 부패, 권력 남용 등 혐의로 기소돼 15년간 해외에서 도피(자칭 망명) 생활을 하던 탁신 친나왓(74) 前 태국 총리는 22일 다시 태국 땅을 밟자마자 체포, 구금됐다.

그러나 그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끄는 프아타이당(The Pheu Thai party, ‘태국을 위하여’라는 의미)이 집권을 위해 군부 진영 정당들과 손잡은 만큼 막후에서 그의 사면을 놓고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해서 23일(현지 시각) BBC는 태국 정치계의 거물 탁신 친나왓은 어떤 인물인지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면서도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 중 한 명인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이 15년 간의 도피 생활(자칭 망명)을 마치고 마침내 귀국했다.

올해 74세가 된 이 노회한 정치인은 화요일 아침 태국 의회가 새 총리를 선출하기 몇 시간 전에 돈 무엥 공항에 도착해서 그를 기다리던 수백 명 지지자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도착 직후 대법원으로 이송돼, 형사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돼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정치 탄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는 선고 직후 감옥으로 이송됐다.

그동안 태국을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탁신은 여전히 ​​태국 정치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현재 그의 막내딸 패통탄(37)이 이끄는 푸아타이당은 새로 출범하는 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 사업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탁신은 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에서 자기 임기를 마친 총리에 꼽힌다.

그는 특히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반대로 방콕의 부유층 엘리트 대부분으로부터는 혐오의 대상에 오르면서 국론 분열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집권 5년여 만인 2006년 9월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부패와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권좌에서 축출됐다.

그 이후 탁신 총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이나 두바이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정치적 망명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의 대지주였다가, 태국 당국이 부패 혐의와 이해충돌 혐의로 그의 자산을 동결하자 2008년 지분 모두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군사쿠데타로 탁신이 실각한 이후 17년 동안 태국에는 10명의 총리가 탄생했다. 그러나 탁신은 여전히 ​​태국 정치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전직 경찰관

1949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태어난 탁신은 경찰관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에 그는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형사 사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그는 귀국해서 사업에 손을 대, 1980년대 후반에 이동통신 제국을 건설하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는 1998년 ‘타이락타이(‘태국 민중은 태국을 사랑한다’는 뜻) 당’을 전격적으로 창당하면서 태국의 정치에 큰 변화를 몰고왔다.

탁신은 2001년에 민주당의 구세력을 완전히 물리치고 집권에 성공했다.

가난한 유권자들이 그의 저렴한 의료 서비스와 부채 탕감 정책, 민족주의 기치에 열광하고, “방콕 엘리트들”을 경멸하는 그의 슬로건에 표를 몰아준 결과였다.

그리고 대기업 등의 산업계도 CEO 스타일의 정부와 1990년대 후반 아시아에 몰아친 금융위기를 돌파한 ‘탁시노믹스(Thaksinomics)’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탁신 총리는 나아가 2004년 태국 남서부 지역을 황폐화시킨 인도양의 대규모 쓰나미 피해 구호 활동을 통해서도 지지세를 확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탁신은 그 외의 것들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2003년 마약 단속 과정에서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폭력에 희생된 일로 큰 비판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조류독감 발생 소식을 숨킨 사실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또, 태국 부패위원회는 그가 재산 모두를 정직히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으며, 또한 주로 무슬림이 거주하는 남부에서 급증한 폭력 사태의 대처 방안을 놓고도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나 탁신은 위기의 폭풍우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잘 타고넘는 재주를 보였는데, 이는 그의 주요 지지자들인 태국 농촌 유권자들의 지지가 끄덕 없었기 때문이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15년의 해외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22일 방콕 돈 므앙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입국장을 빠져 나와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과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15년의 해외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22일 방콕 돈 므앙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입국장을 빠져 나와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과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치적 혼란

탁신의 몰락은 그의 가족이 태국 최대 통신그룹 중 하나인 ‘신그룹(Shin Corp)’의 주식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찾아왔다.

2006년 초 그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19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준 이 매각은 탁신의 가족이 세금 납부를 회피하고 중요한 국가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싱가포르 투자자들에게 넘겼다는 비판에 휩싸이면서 많은 태국 도시인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그 결과 대규모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탁신은 2006년 4월 예정에 없던 중간선거를 내세우며 “자신 없으면 닥치라(put up or shut up)”고 반대자들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야당들은 선거를 보이콧했고, 많은 유권자들은 ‘투표 거부’를 선택했다.

그 뒤 야권의 추가 시위 위협에 직면한 탁신은 사임을 선언했다가, 몇 주 뒤 5월에 다시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해 9월, 몇 달 간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다가 총리가 해외에 있는 동안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탁신은 영국에 정착했다가, 그의 동맹 세력이 2007년 말 쿠데타 이후 치러진 첫 번째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한 탁신과 그의 가족은 수많은 부패 혐의에 직면했다. 당시 그는 이런 혐의들이 자신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군부가 마련한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 태국 법원은 전직 총리와 그의 가족에 대한 소송을 끌고 나갔다.

먼저 그의 아내 포자만과 탁신 자신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그에게 부패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탁신은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이후 태국 법원에 출석하기보다는 태국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탁신은 이후 아내와 이혼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두바이에서 보냈고, 그의 전 아내는 현재 형 집행유예 상태로 방콕에 살고 있다.

한편, 탁신이 지지하고 그의 대리인이 이끌던 정당들은 지속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권력 쟁취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타이락타이(Thai Rak Thai)’의 명맥을 잇는 정당이 2008년 법원에 의해 해산되었고, 같은 해 총리 2명도 자격을 박탈당하는 불운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 탁신의 여동생 잉락도 2011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법원에서 자격을 박탈당했고 그녀의 정부는 두 번째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결국 그녀도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선거에서 프아타이당은 다른 어떤 정당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정부 구성에는 실패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 올해 5월에는 진보 정당인 전진당(Move Forward)이 푸아타이당(Pheu Thai)보다 훨씬 앞서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해 관측통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진당 대표인 피타 림짜른랏의 총리 출마는 헌법재판소가 자격 상실을 선언하면서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탁신이 지지하는 프아타이당이 군부와 연계된 두 정당과 연정 협상을 체결하면서 탁신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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