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프리고진의 수상한 죽음...푸틴의 '손익계산서'는
[월드 프리즘] 프리고진의 수상한 죽음...푸틴의 '손익계산서'는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8.26 06:17
  • 수정 2023.08.26 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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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의 사병 조직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사망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CNN방송은 25일(현지 시각) 경과야 어떻든 프리고진의 죽음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는 손해가 아니라는 분석 보도를 내보냈다. 다음은 이 보도의 전문이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인생 종반부가 소설로 씌어졌다면 그는 분명히 죽은 사람처럼 살았던 것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그는 화려했지만, 음모의 중심에서 폭력적인 삶을 살았다.

현재 프리고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고는 단초만 겨우 드러나 있다. 수요일 오후, 바그너 용병의 보스 프리고진 소유로 등록된 엠브라에르 레거시(Embraer Legacy) 상용 제트기가 러시아 트베리 지역의 쿠젠킨스코에 마을 남쪽에 추락해서 10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그리고 러시아 국영 항공청은 이 비행기 안에 프리고진이 타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고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들이 온라인을 달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혹시 격추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폭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프리고진은 정말로 죽은 걸까? 

러시아에서는 텔레비전 진행자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도 텔레그램 포스팅을 통해 이 올리가르히의 사망이 쌩뚱맞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음모론을 부채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솔로비요프는, 러시아 국영 TV 채널인 로시야24(Rossiya-24)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우크라이나와 그 동맹국들이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죽음에 대한 가짜 메시지를 퍼뜨렸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후 말과 행동이 신중하지 못하기로 유명한 솔로비요프는 이 포스팅을 재빨리 거둬들였지만, 비행기의 추락 상황은 프리고진이 지난 6월에 크렘린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사실과 겹쳐지면서 2류 스릴러물의 한 페이지에서 튀어나온 장면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프리고진의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격하다가 좌절을 맛본 지 며칠 후 러시아 국영 TV는 조폭 두목의 집처럼 현란하게 꾸며진 그의 주거지에서 가발, 변장 용품, 다수의 여권 등이 발견되었다고 폭로한 바가 있다.

그리고 2016년 러시아 대선 과정에서 악명 높은 ‘댓글 부대’ 부대를 운영했던 프리고진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 세상을 댓글로 도배하게 만드는 것도 어찌 보면 그의 캐릭터와 일치한다 할 수 있다. 끝내는, 러시아의 한 탐사보도 전문 매체가 바그너 그룹 수장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대역을 고용하기도 했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사고는 끔찍하게 발생했지만, 프리고진 자신의 생전 활동보다 끔찍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난도질 된 바그너 용병들의 소름끼치는 사진을 게시해서라도 용병들의 전의를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러시아의 고위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살찐 자본가들”이라고 장황하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런 추측들은 핵심을 피해가는 것이다. 이제 프리고진은 사실상 러시아 정치에서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를 따르던 부하들 중 일부가 그를 부르던 호칭인 ‘Batya(아버지)’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프리고진이 사라짐으로써 누가 이익을 챙기는가?

러시아 최고 법집행 기관인 ‘조사위원회’는 이번 추락 사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러시아 연방 형법 263조’(항공 운송의 이동·운영 안전 규칙 위반)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국가의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전담한다는 것은 적어도 국제 항공의 투명성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신뢰할만한 사태는 아니다. 러시아의 이 법집행 기관은 야당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들을 기소하는 총대를 메왔다. 러시아 ‘조사위원회’의 공정한 보고를 기다리는 것은 러시아 국영 TV 진행자가 크렘린궁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추락의 진짜 원인을 알아내든 못 알아내든, 현재 진행 중인 조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 의혹이 있다. 즉, 만일 있다면, 비행기에 타고 있던 프리고진과 부하들을 제거할 동기와 수단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궁금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유일한 해답은 아니지만, 푸틴이라고 답할 것이다.

프리고진의 비행기 추락 사고는 그와 바그너 전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지 약 두 달 만에 발생했는데, 이는 지난 20년 동안 푸틴의 통치에 가장 큰 도전이었다.

반란이 일어난 지 불과 며칠 만에 분노한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의 행동을 반역죄로 간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프리고진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반란 주동자들”이 러시아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군사 반란 직후 크렘린의 첫 반응은 분명 분노였지만, 그 이후 몇 주 동안 세계는 그 분노가 보복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바그너 전사들은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더 루카셴코와의 합의에 따라 이웃 국가인 벨라루스로 이동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프리고진은, 몸을 낮추면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의 한편에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아프리카 관리에게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니제르 쿠데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등 공개활동을 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아무리 큰 소리를 치더라도, 복수는 기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서 하는 것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 돼야 했다.

생전의 프리고진 [사진 = 연합뉴스]
생전의 프리고진 [사진 = 연합뉴스]

‘격동의 시기(Смутное время)’

분명히 아직까지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만약 프리고진의 비행기 추락에 국가가 관여했다면 이는 러시아가 ‘Смутное время(격동의 시기)’에 다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고조시킬 수 있다. 러시아 역사에서 이 시기는 루스 차르국 시대에 류리크 왕조의 대가 끊긴 1598년에서 로마노프 왕조가 세워진 1613년 사이의 공위시대를 말한다. 1601년에서 1603년 사이에 러시아는 인구의 약 1/3인 2백만 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을 겪었다. 17세기 초 러시아는 권력 교체의 혼란 속에 폭동과 무법이 끊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격동의 시기’는 아니라도 최소한 이번 추락 사고는 러시아인들이 서투르게 시장 경제로 전환하던 1990년대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자고 일어나면 언론 헤드라인에서 폭력과 정치적 암살 소식을 대해야 했다.

그러다가 푸틴 시대가 찾아왔고, 정적 제거는 반대자들을 창문에서 밀어 떨어뜨려 살해하는 행위를 풍자하는 유행을 낳기도 했다. 혹시 비행기 추락은 창문에서 미는 대신 선택한 방법은 아닐까?

그런데 미스터리한 비행기 추락 사고는 러시아 정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부 사건의 패턴이기도 했다.

러시아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아르템 보로빅은 2000년 키이우행 비행기가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 사망했다. 그리고 한때 대통령 후보이자 주지사였던 알렉산더 레베드 장군은 2002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푸틴의 유력한 경쟁자 한 명이 또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바그너 보스의 죽음으로 ‘Cui Bono(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저질렀느냐는 뜻의 라틴어)’에 대한 의혹이 러시아 정치 관측통들에 어른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실패한 바그너 쿠데타를 예리하게 분석한 부르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반다 펠밥 부라운 연구원은 크렘린이 프리고진의 유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거나 자신들의 새로운 관리하에 두는 것이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보국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바그너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기보다는 프리고진과의 친밀감을 약화시키고 대신 크렘린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바그너를 청소하기로 결정했을 겁니다.”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러한 구조 조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바그너 조직을 프리고진 방식보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취향에 맞춰 관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러시아군의 관리 하에 일부 세포 조직을 침투시키고 다른 간부들은 무장 해제하면서, 반독립적으로 유지되는 이 조직을 프리고진의 흔적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관리하는 겁니다.”

크렘린의 시각으로 바꿔 말하면, “프리고진이 없어졌다면 새로운 프리고진의 시대를 만들자!”가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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