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함께 평화롭게 사는 날은 언제쯤...”
[이-팔 전쟁]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함께 평화롭게 사는 날은 언제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2.30 06:45
  • 수정 2023.12.30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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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텔아비브와 야파의 유대-아랍 공생 단체 ‘동행(Standing Together)’ 취재기
이스라엘 남부 텔아비브와 야파 지역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생을 모색하는 NGO 단체 ‘동행(Standing Together)’이 마련한 어린이 강습 프로그램에서 한 어린이가 공작 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가디언]
이스라엘 남부 텔아비브와 야파 지역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생을 모색하는 NGO 단체 ‘동행(Standing Together)’이 마련한 어린이 강습 프로그램에서 한 어린이가 공작 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가디언]

이스라엘이 이집트가 제시한 가자지구 종전안을 검토하면서도 지상전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 이스라엘이 전쟁을 저강도 장기전으로 전환하는 것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남부 텔아비브와 야파 지역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생을 모색하는 NGO 단체 ‘동행(Standing Together)’에 대해 소개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이들이 아랍-유대인 커뮤니티 센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센터에서는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황급히 서두르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 전 텔아비브와 야파 전역에 공습 사이렌이 울려 또 한 번의 로켓 공격을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중 일부는 커뮤니티 센터 중앙의 철제 덧문이 덜컹거리자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10분 뒤,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공중에서 파괴되었음을 알리는 큰 굉음이 두 번 울리자 아이들은 악취가 나는 센터의 지하실에서 줄지어 나와 ‘동행(Standing Together)’이 주최하는 체육 수업, 음악 수업, 공예 수업을 들으러 갔다. ‘동행’은 유대계 이스라엘인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간의 공생을 위해 노력하는 NGO 단체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11주나 이어지자 ‘동행’을 위해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와 지도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의도가 어긋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극단적인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마스 공격과 가자지구 보복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면서 흑백논리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텔아비브와 야파에서 결성된 ‘동행’의 지도자인 나다브 쇼펫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 중 하나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동행’을 찾는 자원봉사자가 급격히 증가한 점이라고, 이 단체 회원들은 말한다. 지난 10월 이스라엘 남부에서 하마스 공격으로 주로 민간인 1,200명이 사망한 이후 수천 명이 ‘동행’에 가입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로 구성된 약 18,000명이 사망한 뒤 더 많은 사람들이 ‘동행’을 위해 뛰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 지금은 모두 미친 것처럼 보지만 유일한 탈출구는 평화뿐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쇼펫은 이렇게 말했다.

시 당국은 넓은 해변과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동행’ 커뮤니티 센터 바깥쪽에 “함께합시다. 야파 주민 모두는 이 상황을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동행’ 센터 내부에는 유대인 하누카 축제를 위한 메노라(촛대)가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세워져 있었다. 비도 내리고 로켓 공격의 위협 때문에 이날 ‘동행’의 공예 수업에는 6명의 어린이만이 참석했다.

유대인인 전직 무용수 오리트 타무즈(65)는 그녀의 손녀 아마니를 ‘동행’ 센터에 데려왔다.

“저는 아랍인,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모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인종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면 승자는 없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계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하며, 이들은 주로 집단으로 모여 산다. 아랍인과 이스라엘인들이 함께 사는 야파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유대인 가족들이 늘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최근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거세지는 우경화에 신물이 난 진보적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는 해당 지역에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가난한 아랍 주민들이 쫓겨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오리트 타무즈는 야파의 공생 분위기나 ‘동행’의 공예 수업 모두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의 정서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찻잔 속의 태풍 같지만 언젠가는 큰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동행’의 다른 사업으로는 저소득층에 식량을 배포하고, 공습 대피소를 개조하고, 집회를 여는 활동이 있다. 2016년에 설립된 ‘동행’은 또한 지역 사회를 보호하고 폭력 발생 시 경찰에 알리기 위해 아랍-유대인이 비무장 상태로 순찰을 도는 “시민 경비대”를 신설했다.

‘야파 지역 동행’의 활동가이면서 지역 정치인이자 변호사인 아미르 바드란은 여러 활동의 목표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2개월을 주기로 매주 열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어린이 공예 수업이 포함되어 있다.

야파의 ‘동행’ 커뮤니티 센터 바깥쪽에 “함께합시다. 야파 주민 모두는 이 상황을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사진 = 가디언]
야파의 ‘동행’ 커뮤니티 센터 바깥쪽에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적힌 “함께합시다. 야파 주민 모두는 이 상황을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사진 = 가디언]

“사람들은 환난 속에도 함께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고 서로 미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부모들도 교류를 합니다.”

바드란은 이렇게 설명했다.

‘동행’이 추구하는 아랍-이스라엘 공생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선동적인 수사’를 남발하는 정치인들이 포진한 현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에 사는 다수의 유대계 이스라엘인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대규모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더욱 흥분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우파는 이번 전쟁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혐오를 선동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동행’의 공동 책임자인 룰라 다우드는 이렇게 주장했다.

“당신이 일반 시민이든, 공인이든, 정치인이든 보복에 반대하거나 가자지구를 쓸어버리자는 데에 반대하면 당신은 곧바로 적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저명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여럿 체포되었다. 지난 10월 가수 달랄 아부 암네는 페이스북에 팔레스타인 국기와 함께 “알라 외에 승자는 없다”라는 글을 올린 뒤 일시적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또한 지역 사회의 가장 저명한 정치지도자들 중 일부도 반전 시위를 계획했다가 체포되었다.

‘동행’은 팔레스타인인이든 유대인이든 가리지 않고 학대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핫라인을 개설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거의 60%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10%는 실제로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 특히 유대인들에 있어 퇴행에 해당합니다. 유대인들이 10월 7일 이후 겪는 공포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우드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끔찍한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들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파에서 아이들이 손가락 인형과 포스터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는 아랍 기독교도인 베라 딕도 있었다. 그녀는 전직 교사였다.

“우리는 공존 가능성을 믿습니다. 제가 딸을 여기로 데려온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거나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듭니다.”

많은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친구와 친척을 잃었다. 또, 그들은 10월 7일의 공격에서도 친지들을 잃었다. 아랍계의 대표적 피해 사례로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로켓을 발사했을 때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족 마을을 강타해 4명이 사망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구급대원을 포함해 하마스의 지상 공격에 대응해 구호에 나선 아랍계 이스라엘인들도 하마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 부족은 공격 초기 실종된 이스라엘인을 찾기 위해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던 부족들 중 일부였다.

베라 딕은 인터뷰를 나누는 도중 건설 현장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펄쩍 놀랐다. 그 소리가 불과 몇 분 전 하늘을 날던 로켓포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러더니 그녀는 인근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랍인과 유대인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일으키는 게 아닙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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