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투표를 위해 미국에서 날아간 대만 사람들 스토리
[월드 프리즘] 투표를 위해 미국에서 날아간 대만 사람들 스토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1.20 06:54
  • 수정 2024.01.20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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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12년 연속 집권의 쾌거를 이룩해낸, 친미·독립 노선의 라이칭더 대만 민진당 후보 [사진 = 연합뉴스]
첫 12년 연속 집권의 쾌거를 이룩해낸, 친미·독립 노선의 라이칭더 대만 민진당 후보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3일 치러진 제16대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한 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대만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축배를 드는 한편 야당인 국민당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중국과의 양안 관계 긴장이 더 깊어질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BBC는 19일(현지 시각) 이번 총통 선거에 한 표를 직접 행사하기 위해 멀리 미국에서 날아간 미국계 대만 사람들을 통해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돌아보는 기사를 내보냈다.

“선거 날 밤에 라이칭더의 이름을 너무 많이 외쳐서 다음 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총통 선거가 치러지는 4년마다 빼놓지 않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만으로 날아가는 낸시 양은 이렇게 기쁨을 토로했다.

앞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 DPP)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하면서 민진당이 3번 연이어 집권하는 기록을 이뤄냈다. 그리고 낸시 양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이라는 중국의 겁박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를 위해 외국에서 직접 날아온 해외 거주 대만인들 중 한 명이었다.

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선거를 위해 고국을 찾은 대만인의 숫자가 몇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해야 하는 대만에서는 이번 총통 선거를 위해 해외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찾았다. 심지어 라이칭더 자신도 투표를 위해 대만 남부의 타이난으로 이동해야 했다. 투표를 위해 전 세계를 날아 고국 대만을 찾은 유권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지 함성으로 시끄러운 집회장에 있으면 흥분을 느낍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변화의 주역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중 대만계 미국인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대만인 중 약 4000명이 유권자 등록을 했다.

이번 선거의 이슈 중 중국과의 관계는 해외 거주 대만인들 대부분에 최대 관심사였지만, 특히 오랫동안 대만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에 거주하는 대만인들에겐 더욱 그러했다.

“중국은 대만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낸시 양은 선거 전날 밤 민진당 집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BBC 특파원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당의 상징인 녹색과 분홍색 깃발의 물결 속에서 녹색 재킷을 입은 그녀는 유권자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직 IT 관리자였던 그녀는 미국 서부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서 40년 동안 살고 있다. 그녀는 이번 선거가 2020년의 지난 선거와 비교했을 때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세 개의 정당이 후보를 내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민진당은 저임금과 고물가를 해결하겠다고 내세우는 한편으로 중국의 위협도 강조했다. 반면에 제1야당인 국민당(KMT)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웠고, 제3당인 대만민중당(TPP)은 특히 민생 문제 해결을 앞세우며 두 정당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었다.

선거 결과 대만민중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미래의 경쟁자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는 아마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과 달리 경제가 이곳 유권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국민당의 고문이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제인슨 수 연구원은 “우리가 만족하는 결과는 아닙니다.”라고 선거 결과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타이페이의 ‘단(Da'an) 삼림 공원’에서 특파원과 만났다. 삼림 공원에 울리는 부드러운 기타 연주와 차분히 태극권을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전날 밤의 선거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제이슨 수 연구원 옆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투표를 위해 날아온 젠 차오와 오클랜드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챠오닝 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젠 차오는 전통적으로 친중국 노선을 견지하는 국민당을 지지하고, 챠오닝 수는 민진당에 투표했다.

대만 총통 선거 유세장의 지지자 [사진 = 연합뉴스]
대만 총통 선거 유세장의 지지자 [사진 = 연합뉴스]

그들은 모두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가 대만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오늘의 대만을 위해 싸워 왔습니다. 이러한 성취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아차하면 잃을 수도 있습니다. 힘들게 얻은 것입니다.”

챠오닝 수는 민진당에 투표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이번 선거를 통해 고국에서 선거 분위기와 흥분을 만끽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 중에도 투표를 위해 미국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깁니다. 이것이 대만과 중국의 주요 차이점입니다.”

대만은 신생 민주주의 사회이다. 이번 선거는 1996년 이래로 8번째 총통 선거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의 선거 분위기는 흥겹다.

수백만 명이 투표에 참여한 지난 토요일에 아직 투표권이 없는 자녀를 동반하고 투표장을 찾은 부모들도 목격되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민주주의를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화창한 날씨 덕으로 애완동물을 데리고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도 있었다.

선거 유세장은 축제와 같았다. 각 정당의 깃발이 홍수를 이루는 속에서 연설과 음악, 구호 소리가 뒤섞여 들리기도 했다. 일부 열성 지지자들은 당의 색깔에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손길을 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행복감 외에도 불안과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낸시 양은 투표를 앞두고 중국의 경고를 떠올리면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안보를 위해서라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매우 강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그녀는 대만의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앞날이 가시밭길이라고 덧붙였다. 대만이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20년 전만 해도 세계 사람들은 대만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대만(Taiwan)이라는 말을 하면 미국 사람들은 제가 태국(Thailand)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해외가 대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미국이 대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만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는 말입니다.”

챠오닝 수도 이제 대만이 국제 뉴스의 “핵”으로 떠올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녀는 대만의 지난번 선거 이후부터 더욱 강고해진 중국의 홍콩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보고 더욱 투표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정당한 메시지를 국제 사회에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싸울 겁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그러나 야당인 국민당에 투표한 젠 차오는 라이칭더가 그렇지 않아도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과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대만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여놓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현 정부는 우리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우려를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제인슨 수 연구원도 그녀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라이칭더에게 축하를 보내지만, 앞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4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쨌든 승리는 대만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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