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창업한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때
[기고] 창업한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때
  • 백세현
  • 승인 2018.12.15 09:45
  • 수정 2018.12.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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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현 해외컨설팅 ‘피그말리온’ 대표이사
백세현 해외컨설팅 ‘피그말리온’ 대표이사

이 차장은 한국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재직했고 기업 내에서도 잘 나가던 엘리트였다. 대인관계도 워낙 잘하고 실력도 뛰어나서 윗분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고 몇 년 내 임원까지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런 이 차장이 퇴사하고 창업을 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이 차장을 아끼는 이들이 만류했다. 몇 년만 있으면 임원도 가능한데 왜 지금 나가느냐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리고 창업 창업하지만 실제로 창업의 성공률도 낮고 고생들만 하다가 결국 다른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하지만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는 지금 너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고 또한 실력도 인맥도 있는 이 차장은 자신감에 가득 찼다.

이 차장은"어떤 기업이든 다 처음이 있듯이 나도 내 기업을 시작하는 거야!" 하고 힘차게 뛰쳐나갔다.

그렇게 창업을 한 지 2년.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즐겁다고는 할 수 없다. 첫 1년은 그래도 지금까지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해 모아둔 돈으로 잘 버티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그래도 잘 버텼는데 2년째가 되자 이제 일감도 잘 안 들어오고 들어온다 해도 계속 그런 일만 했다가는 용역만 하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2년 차부터는 정말 하고 싶던 사업에 올인 중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판매가 생각보다 부진하고 무엇보다도 고정비용인 직원들 월급 주기가 벅찼다.

인건비를 제대로 못 챙기면 안되다 보니 고민이다. 혼자 다 할 수 있는 업무량은 아니고 그렇다고 직원을 고용해놓고 대충 할 수도 없고 약속한 걸 지키면서 직원들 챙기다 보면 돈 벌어서 직원들 월급 주기 바빴다. 그렇다고 집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괜히 얘기했다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모처럼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해외 프로그램을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MWC에 왔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왔던 MWC와 스타트업 대표로서 온 MWC는 정말 너무 기분이 다르다. 갑자기 향수가 몰려온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유럽 마케팅/세일즈 총괄로 왔을 때 받았던 온갖 환대들이 그립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 느꼈던 안정감과 친숙함 그리고 자신감이 너무 그립다. 그리고 매일 자금 부족 및 사업의 불투명성에서 오는 불안감에 잠 못 이루고 흰 머리도 더 나는 것 같고 머리도 많이 빠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존감이 너무 낮아지는 것 같다. 비참하다고 할까. 초라하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더 이상 모 대기업 이 차장이 아닌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스타트업 대표입니다 라고 얘기해도 별 반응도 없고 용역 대우하듯 한 무례한 태도에 상처도 나름 받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과연 내가 창업을 잘한 것일까 라는 후회도 들고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을 걱정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혹시 이번에 새로 출시하는 제품이 또 잘 안되면 어쩌지 하면서 말이다.

최근 투자도 받기는 했지만 10퍼센트 지분 가진 투자사가 갑질하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다. 아, 정말 나는 괜히 창업을 한 걸까. 너무 후회스럽고 불안해 죽겠다.

창업을 몇 번 해서 실패하고 혹은 성공시켜본 이로서는 이런 것이 두렵지 않지만 사실 창업을 처음 해본 사람은 아무래도 소위 말하는 ‘내가 왕년에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일했지’라는 향수 속에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을 잠시 더 바꿔보면 창업을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에너지 넘치고 건강한 시절을 멋져 보이는 곳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것이 자신에게 맞다면 상관없다. 모두가 창업을 해야 하고 모두가 다 자신의 사업을 가져야 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사업이나 구현하고 싶은 가치를 마다하고 굳이 직원으로 일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런 삶이 의미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자문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만약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정작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기간에는 누군가의 직원으로 일하고 나중에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든 상태에서 나오게 된다면 그때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시작하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더욱 거듭나는 게 좋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신이 정부를 위해 일하거나 대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절대 무의미하다고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안에서 편안히 복지부동하는 게 자신의 발전에 꼭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기에 창업한 것을 후회할 필요는 없고 도리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도전해봐야 한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일수도 있다. 그런데 위기가 곧 기회라는 구태의연한 진부한 말 속에 사실 진리가 있는 것 아닐까 한다. 자신이 창업하면서 겪는 모든 것이 결국 자신에게 큰 피와 살이 될 요소라고 보면 맞다.

멋지게 시작한 창업과 여러 미디어 보도 속에서 자신이 사업을 잘 하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 사실 내부적으로 문제점이 많고 혹여 실패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울까를 걱정하면 안 된다.

어차피 도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실패도 없기 때문에 실패해보지 않은 이들은 실패한 이를 폄하하거나 비웃을 수도 있지만 도전해보고 실패해본 이는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도전조차도 안 해본 이들은 실패란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의 가치관이 조용히 편히 살아가는 거라면 그렇게 살아도 좋다. 그런 가치관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정말 구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고 그것이 자신의 창업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면 도전해보는 게 맞다.

이때의 도전이라는 무모한 것을 말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계산된 합리적 도전을 말한다고 보면 맞다. 결국, 우리는 55세에 죽는 게 아니라 퇴직 후에도 최소 80세까지 산다고 본다면 25년이라는 기간을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자신의 사업을 하려고 했을 때가 더 막막하지 않을까. 차라리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잘 준비하여 창업에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업가로서 거듭나는 것도 즐거운 여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차장은 지금 자신의 사업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창업의 즐거움을 알아간다고 말한다. 전에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는데 이제 스스로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행해보면서 실수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이 너무 새롭고 정말 자신의 것을 다져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2년간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이 도리어 이제는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가치를 가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우리가 우버나 고젝, 에어비앤비를 보면 돈 엄청나게 벌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우리 삶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생각해보면 어떤 가치를 구현하면서 돈을 벌 것인가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창업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쫓는 것보다는 내가 어떤 가치를 구현하여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러한 변화를 통해 나는 돈을 벌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오늘 이 시간 창업가로서 갖는 어려움은 도리어 즐거운 여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조차 없다면 돈에 얽매여 노예가 돼버리고 삶은 오히려 황폐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초라하다고 느끼지 말고 내가 내 힘으로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초라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비참하게 느끼지 말고 내가 내 힘으로 만들어나가는 창조의 과정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창업을 통해 사회에 가져올 긍정적 변화와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자신의 초심을 잊지 않게 될 것이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onelifeoneworld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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