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프리즘] BBC 특파원이 둘러본 하나원과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기...트라우마를 이겨낸 적응 훈련
[남북 프리즘] BBC 특파원이 둘러본 하나원과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기...트라우마를 이겨낸 적응 훈련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7.15 06:11
  • 수정 2023.07.1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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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전경 [사진 = 연합뉴스]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전경 [사진 = 연합뉴스]

한국 통일부가 10일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개소 24주년을 맞아 하나원 본원 시설 일부를 내외신 언론에 공개했다. BBC는 이날 하나원을 둘러본 서울 특파원의 소감을 11일(현지 시각) 지면에 소개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는 숲이 울창한 야산과 논으로 이루어진 시골 지역에 현대식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변의 시골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은 이 다층 건축물은 높은 담장과 경비가 지키는 정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복합 공간은 비밀을 보장하듯 안전하게 격리되어 있다.

이 시설에는 적응 훈련 본부, 의료 시설, 재교육 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은 남한에 도착하면 이곳에서 3개월 동안 적응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 시설의 이름은 하나원 또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이다.

가난과 억압의 삶을 피해 체포나 때로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탈출하는 탈북민들의 숫자가 최근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줄었다.

약 10년 전에는 매년 거의 3,000명이 도착했었다. 이 수치는 그 후 몇 년 동안 약 1,000명으로 떨어졌다가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100명 아래로까지 추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하나원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코로나19 통제가 완화되면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탈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원은 탈북민들로 다시 북적거릴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한국이 이 새로운 탈북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북자들을 이방인이 아니라 고향이 북한인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기자들에게 시설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 월요일, 울타리와 꽃, 잘 손질된 정원수 등 조경이 빼어난 하나원은 여름 햇살 아래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탈북자들에게 미용, 제빵, 봉제 기술 등 22개 과정을 가르치는 훈련 센터를 안내받았다.

그 중 한 방은 탈북자들이 섬세한 네일아트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네일샵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 곳에서 피교육생들은 모델의 손을 대상으로 손톱을 깎고, 색을 칠하고 광택을 내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때 옆 요리 교실에서 풍기는 맛있는 빵 굽는 냄새가 공기를 진동했다.

그 밖의 다른 과정들은 북한보다 수십 년이나 앞서 있는 최신 기술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중 한 교실은 하이테크 제품을 파는 가게처럼 꾸미고, 태블릿, 스마트폰, 컴퓨터를 전시해놓고 있었다.

하나원에서 네일아트 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 [사진 = 연합뉴스]
하나원에서 네일아트 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 [사진 = 연합뉴스]

다른 건물에 들어서자 바닥이 현대식 병원처럼 보인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병동과 진료실이 있고,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탈북민들의 육체적인 병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 치료까지 담당했다.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도착하는 탈북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진용 박사는 하나원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다. 그는 하나원을 거쳐 간 북한 주민들이 겪은 끔찍한 트라우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탈북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남한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혀 송환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가 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친척을 북한에 남겨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탈북민 중 일부는 남한의 편견 때문에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내 환자 중 한 명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전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편해서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자신이 북에서 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현재 하나원 생활 중인 탈북 여성 3명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의 일부를 끄집어냈다. 그들은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 A, B, C로 소개되었다. 이 중 한 여성은 장막 뒤에서 말하기까지 했다.

세 사람 모두 남한으로 오기 전 먼저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의 삶은 북한보다는 형편이 좋았지만, 불안과 위험은 여전했다.

B씨는 중국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없어 병원에 갈 수도, 은행 카드를 발급받을 수도, 기차를 탈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C씨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중국인 노동자 임금의 절반 밖에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한국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한 중국 감시망의 강화된 눈초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처음 탈북을 결심했을 때는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아이를 낳고 보니 나의 신분을 보장할 법적 지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여성 모두 남한에서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의당 내야 하는 세금에 대해서조차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불과 10여 년 전에 하나원을 수료하고 현재 남한에서 북한산 막걸리를 만드는 사업을 운영하는 김성희 씨(49)는 탈북 여성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 가면 처음에는 환영할 테지만, 얼마 있지 않아 고문당하고 살해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하나원을 졸업하고 나서야 마침내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하나원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은 시설을 나오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들려주었다.

“하나원을 나온 첫날 밤은 모든 탈북자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됩니다. 내 경우에는 드디어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딸을 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슬프거나 외로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김성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원을 나왔을 때 처음 몇 주 동안 적응을 도와준 남한 자원봉사자들의 친절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그녀가 새집에 입주할 때 그곳에서 그녀를 환영해주었고, 집 주변을 안내해주었고, 그녀의 첫 택시비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직도 그들 자원봉사자 중 일부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하나원에 있는 사람들도 김성희 씨와 비슷한 성공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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