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트렌드] “보수적 국가 한국에 ‘보이즈 러브(BL)’ 코드가 뜨고 있다” 외신들, 한국 MZ세대 트렌드 주목
[WIKI 트렌드] “보수적 국가 한국에 ‘보이즈 러브(BL)’ 코드가 뜨고 있다” 외신들, 한국 MZ세대 트렌드 주목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7.31 05:38
  • 수정 2023.07.31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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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을 주제로 한 영화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의 한 장면 [사진 = 왓챠 캡처]
BL을 주제로 한 영화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의 한 장면 [사진 = 왓챠 캡처]

"196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보이즈 러브(Boys Love)’ 장르가 한국에서도 새로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CNN)

한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박재찬은 아이돌 산업에 어울리는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K-팝 그룹 DKZ로 활동하던 그는 별로 이름을 알리지 못하면서 앨범은 발매 첫 주에 겨우 1,000장 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만난 영화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의 오디션 기회는 그가 운을 걸어볼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그 기회는 잘못하면 독배가 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소년의 사랑(Boys’ Love/BL)이라는 장르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스크린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동성 로맨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됐습니다.”

재찬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박재찬은 은 CN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소속된 기획사도 걱정했지만 결국 그의 뜻을 지지해주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야오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던 BL 장르는 일반적으로 두 젊은 남성의 동성애 관계가 주된 테마이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맨틱 에러’는 두 남자 대학생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른 LGBTQ 작품들과는 다르게 BL 스토리는 주로 이성애 성향의 여성들이 작가이고 여성들이 주된 팬층이다.

‘시맨틱 에러’ 오디션을 본 재찬은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추상우 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도박은 보상을 받았다. ‘시맨틱 에러’는 2022년에 출시되어 히트를 쳤다. 이 영화는 두 달 동안 한국 스트리밍 플랫폼 왓챠(Watcha)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였다. 성과에 고무된 왓챠 측은 서울 전역의 극장에서 영화 버전을 출시해 약 60,000장의 티켓을 팔았다.

재찬은 이 영화로 상도 여럿 수상했다. 그리고 한국판 Elle, Cosmopolitan, Dazed 등 12개 이상의 잡지에도 모델로 등장했다. 여기에다 영화 데뷔 후 그의 새 앨범은 첫 주에만 1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새롭게 얻은 인기에 대해 이렇게 기쁨을 털어놓았다.

늘어나는 팬들

영화의 성공은 스타를 놀라게 했지만, 팬과 제작자는 인기를 감지했음 직하다.

BL 장르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제작사들의 투자는 일본을 넘어 아시아에서 꾸준히 세를 넓혀갔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대만과 태국에서 인기를 끌며 성공을 거두었다.  

LGBTQ에 대한 한국의 보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이 문제에 있어 일반적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보수적인 국가에 속함) 온라인에서 BL 팬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BL을 포함한 일본 문화를 연구하는 김효진 교수에 따르면 일본 BL 망가의 해적판이 수십 년 전부터 일본에서 조금씩 유입되면서 한국에서 소수의 매니아 층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국내 작가들이 익명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화하던 시기에 때맞춰 휴대폰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하면서 국내에서도 독자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당시 K-팝 산업 초창기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좋아하는 보이밴드 멤버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한국 문화 연구가이자 강사인 정아름 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소속사와 팬들에게 (로맨스를) 숨겨야 하는” 팝스타들의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불타올랐던 로맨틱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그러던 중 2013년 한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온라인 소설 플랫폼을 출시하자 BL 콘텐츠 작가들이 포함된 아마추어 작가들은 마침내 웹소설 판매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고 김효진 교수는 말했다.

한국 콘텐츠를 찾는 미국 고객들에게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툰 플랫폼 ‘태피툰(Tappytoon)’은 BL 독자가 2016년 이후 매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난해 기준 80만 명이 넘는 열성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에서는 300개 이상의 작품이나 전체 서비스 목록의 1/3이 영어, 독일어 및 프랑스어로 제공된다. (소셜 미디어와 TikTok과 같은 앱들에서도 캐릭터의 러브스토리, 최고의 키스 장면, 갈등 장면 등의 클립이 포스팅되면서 BL의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독자들은) 항상 더 많은 BL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특정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태피툰’의 운영팀 책임자인 제니퍼 코니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BL 독자도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최대 30대까지”의 여성들이다.

원래 J. 수리(J. Soori)라는 익명의 작가가 웹소설로 쓴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는 온라인 소설에서 텔레비전과 영화로 각색되면서 BL 장르의 전환점을 맞았다.

‘눈이 머무는 곳(Where Your Eyes Linger)’이 2020년 한국 BL 장르 최초로 히트를 기록하고 나서 2년 뒤 출시된 ‘시맨틱 에러’ 스트리밍 시리즈의 성공은 의미 있는 구독자층을 확보하면서 왓챠에 이 장르의 수익 창출 가능성을 밝게 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20개 이상의 BL 작품이 제작되고 있다.

왓챠의 김혜정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충성스럽고 끈끈하며 열성적인 BL 팬 커뮤니티를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장점을 지닌 BL 장르는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K-팝 아이돌 팬덤과 매우 유사합니다.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재생함으로써 (스트리밍 플랫폼의) 순위를 올려놓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녀는 ‘시맨틱 오류’가 극장을 강타했을 때 단순히 이 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보러가지 못하면서 티켓만 구입하는 팬들도 보았다고 들려주었다.

BL을 주제로 한 영화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의 한 장면 [사진 = 왓챠 캡처]
BL을 주제로 한 영화 ‘시맨틱 에러(의미 오류)’의 한 장면 [사진 = 왓챠 캡처]

비판적 시각

BL 장르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역학 중 하나는 수동적인 상대방을 유혹하는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캐릭터에 집중된다. 소극적 상대는 집요한 시도(일부는 괴롭힘이나 폭행과 유사함) 후에 마침내 연애 감정을 허락한다.

호주 시드니 맥쿼리대학에서 퀴어 미디어를 가르치고 BL 장르를 연구하는 토마스 보디넷 교수는 “BL은 여성의 몸에만 탐닉하는 이성애자 남성 지배 문화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LGBTQ 활동가들은 BL 이야기가 게이 문화를 도용해 페티쉬화한다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BL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은 환상은 단지 환상일 뿐이며 BL 장르는 LGBTQ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열렬한 BL 팬이기도 한, 한국 문화 연구가 정아름 씨는 “우리는 가끔 환상을 추구할 때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인권운동가들이 계속해서 차별 금지법 추진을 시도하는 한국에서 BL 장르의 인기 상승은 이해를 넓히는 데 한몫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공개 게이 K-판 아티스트로 널리 알려진 가수이자 배우인 고태섭(예명 홀랜드)은 작년에 BL 드라마에 출연하고, BL 장르의 도서나 TV 시리즈 및 영화에 대한 노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금까지 한국 스크린에 비친 BL 묘사는, 만화, 소설, 팬픽션(fan fiction)에서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과는 다르게, 로맨스나 친밀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 LGBTQ 커뮤니티는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묘사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약간의 환상일지라도 긍정적인 관점에서 (동성) 관계를 보여주고 (이성애자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홀랜드는 이렇게 주장했다.

홀랜드는 현재 늦여름에 촬영에 들어갈 또 다른 BL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보다 현실적인 대화들이 삽입될 수 있도록 작가들을 돕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홀랜드와 마찬가지로 김효진 교수도 더 많은 LGBTQ 목소리들이 BL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BL과 퀴어 미디어의 경계가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신도 게이라고 밝히고 오랫동안 BL 팬인 보디넷 교수는 이 장르가 한국의 젠더와 성문화에 대한 보수적 시각을 뒤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남성들이 팬층의 일부가 되면서 BL의 관객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이성애 여성에게나 남성-남성 로맨스의 긍정적인 표상을 보고 싶어하는 게이 남성에게 BL 장르는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것이 내가 혁명적인 변화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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