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메시아 처형의 주역...베일에 싸인 본디오 빌라도의 역사성
[WIKI 히스토리] 메시아 처형의 주역...베일에 싸인 본디오 빌라도의 역사성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8.13 06:49
  • 수정 2023.08.13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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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키세리가 그린 ‘에케 호모(Ecce Homo : 이 사람을 보라!)’ 1860-1880 [public domain]
안토니오 키세리가 그린 ‘에케 호모(Ecce Homo : 이 사람을 보라!)’ 1860-1880 [public domain]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린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성서와 역사적 문헌 모두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로 남아 있다.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소재를 발굴해서 소개하는 웹사이트 ‘올댓츠인터레스팅닷컴(allthatsinteresting)’은 12일(현지 시각) 많은 부분이 신비에 가려져 있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 소개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현재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망라하는 유대 지역을 약 10년 동안 통치한 식민 종주국 로마제국의 총독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과정에서 그의 역할로만 기억되는 빌라도는 그 외의 부분은 대부분이 수수께끼에 싸인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

빌라도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 성경과 역사 문헌 사이에 상충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는 대체로 당시 유대 민중이 믿던 율법과 희망에 무관심했던, 무자비한 폭군이나 줏대 없고 실패한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이상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악명을 떨친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이다.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

유대의 다섯 번째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통치 시기이던, 공통년(서기)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를 다스렸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가 총독이 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빈약하다.

‘히스토리닷컴’에 따르면, 일부 학자들은 빌라도가 이탈리아 본토의 로마 귀족 계층에 속하는 기사 가문(equestrian family) 출신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조각조각 흩어진 정보들을 취합한 추측에 입각한 주장일 뿐이다.

이러한 추측 과정에서 일부 학자들은 ‘빌라도(Pilate)’라는 이름을 근거로 그가 군 출신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필라투스(Pilatus)’라는 단어는 ‘투창으로 무장한(armed with a javeli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빌라도가 숙련된 창기병(槍騎兵) 출신임을 암시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로마 총독들에 대한 정보와 로마가 거대한 제국을 통치한 방식에 근거해 우리는 빌라도가 어떤 식으로든 군대에서 장교로 출세한 인물일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신약 학자 워렌 카터(Warren Carter)는 그의 저서 『본 디오 빌라도 : 로마 총독의 초상( Pontius Pilate : Portraits of a Roman Governor)』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로마 사회의 부유한 상류층에 속했다고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역사가 다니엘 슈워츠(Daniel R. Schwartz)는 그의 저서 『앵커 바이블 사전(Anchor Bible Dictionary)』에서 빌라도는 유대의 행정장관(Prefect)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직책은 지역의 재정과 군사를 감독하고, 사법 및 행정의 최고 권한을 가진 고위직이었다. 빌라도는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로마를 대표하는 관리였기 때문에 산헤드린(Sanhedrin)이라는 유대 지배층의 의회와 통치 업무를 논의했다.

어쨌든 로마의 유대 통치 책임을 맡고 있던 10년 동안 빌라도는 세금을 징수하고 건축 공사를 관할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법과 질서를 유린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본디오 빌라도 앞의 예수 [public domain]
본디오 빌라도 앞의 예수 [public domain]

빌라도의 유대 통치가 남긴 역사적 오명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의회인 산헤드린과 권력을 공유했지만, 역사가들은 그가 당시 유대 민중들과 격렬한 갈등을 빚었다는 데 의견을 일치한다.

로마가 유대 땅을 지배하던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저서 『유대 전쟁사(The Wars of the Jews)』에서 빌라도는 한때 로마 황제의 형상을 예루살렘에 세우고 황제 숭배 사상을 강요함으로써 그 지역의 유대인들을 화나게 했다.

폴 메이어(Paul L. Maier)가 『로마 총독(The Roman Governors)』에서 소개한 것처럼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우리 율법이 우상 숭배를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로마 군대의 규범에 따라 로마 황제의 흉상을 예루살렘에 도입해 유대의 관습을 짓밟았다”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유대 민중이 닷새 동안 폭동을 일으키자 빌라도는 병사들에게 그들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율법의 훼손을 묵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격렬히 저항하자 그는 태도를 바꿔 황제의 형상을 철거했다.

또한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수로 건설에 성전 자금을 전용함으로써 다시 한 번 유대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기록을 남겼다. 유대인들이 빌라도에 맞서기 위해 들고 일어나자 그는 군대를 동원해 군중을 잔인하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누가복음은 빌라도 통치의 잔혹사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가복음 13장 1-2절)

분명히 역사적 기록은 빌라도가 유대를 통치하면서 가혹하고 때로는 잔인한 무력을 거리낌 없이 휘두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복음서에는 그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꽤 인간적인 요소가 많았던 인물로 등장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부 기독교 교파는 빌라도를 성인으로 섬기기까지 한다.

손 씻는 본디오 빌라도 [public domain]
손 씻는 본디오 빌라도 [public domain]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

복음서에 따르면, 산헤드린은 스스로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에 위협을 느껴 그를 체포한다. 유대의 지배 계층은 예수를 신성모독이자 반역죄를 저지른 일종의 정치범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이후 군인들이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데려가 재판을 받게 했지만,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선뜻 내리지 못한다. 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의 운명을 놓고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한다.

“당신들은 이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는 유대 엘리트들의 집단인 산헤드린 의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러자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그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어째서 우리가 그를 여기 데리고 왔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결국 예수를 처형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빌라도는 유대 장로들에게 “당신들이 그를 데려다가 당신들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하며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절한다. 빌라도는 사형을 판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유대의 지배층은 예수를 꼭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대 장로들의 주장에 지친 빌라도는 결국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한다. 그 상황에서 빌라도는 유대 공의회 의원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대신 유대인들에 그 책임을 떠넘겼다고 한다. 이 부분을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마태복음 27장 24절)

나중에 빌라도는 예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 새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히스토리투데이닷컴(History Today)’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빌라도가 정말로 예수를 ‘유대의 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자결하는 본디오 빌라도 [public domain]
자결하는 본디오 빌라도 [public domain]

베일에 가린 빌라도의 말년

일부 사람들이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 왕 사이에 실제로 왕래했던 편지 모음이라고 믿는 문서인 ‘헤롯과 빌라도의 편지(Letters of Herod and Pilate)’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 편지의 한 부분에는 빌라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보자 모두 그의 발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습니다. 내가 큰 소리로 이르되 여호와여, 진실 안에서 모든 이를 정죄하시는 이를 제가 심판했나이다. 그리고 보소서, 저는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압니다. 저는 당신의 신성이 아니라 인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당신에게 악을 행하도록 저를 부추겼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학자들이 이 편지의 진위를 의심하지만, 이 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빌라도 총독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추론을 제공한다. 즉,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예수의 독실한 추종자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한편,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빌라도는 모세가 산에 묻었다고 알려진 신성한 유물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려던 일단의 사마리아인들을 학살함으로써 실각했다고 한다.

‘예루살렘포스트(Jerusalem Post)’에 따르면 이 사건이 벌어지자 사마리아인들이 빌라도의 상관인 시리아 주재 로마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에게 빌라도의 잔인한 처사를 고발했다. 사마리아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비텔리우스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를 로마로 돌려보내 그의 처분에 대해 로마 황제와 논의했다.

빌라도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끝나며 역사가들은 그가 로마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만일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로마 황제가 빌라도를 해임시켰거나 그 스스로 은퇴했을 것이다.

일부 소식통은 본디오 빌라도가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소식통은 그의 결말이 더 어두웠다고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빌라도를 처형했거나 그가 추방되어 자살했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애매한 역사적, 종교적 인물과 관련된 대부분의 진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묻힐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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