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프리즘] 미중 싸움에 등 터진 한국 반도체... "일본 사례 교훈삼아야"
[반도체 프리즘] 미중 싸움에 등 터진 한국 반도체... "일본 사례 교훈삼아야"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1.11.12 17:41
  • 수정 2021.11.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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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요청한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요청한 시한 마감일이 3일 지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한에 바짝 맞춰 자료를 제출했다.

막판까지 자료 공개 범위를 고심했던 이들 국내 기업은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제외하고 자료를 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말 3차 화상회의를 열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반도체 재고와 주문·판매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26개 항목의 설문을 제시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고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고객정보는 물론 재고량 등 기업 내부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뺐으며, 제출 자료 모두 기밀로 표시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고객정보 등 민감한 자료를 제외했고, 일부는 기밀로 표시해 제출했으며 재고량도 제품별이 아닌 컴퓨터용 등 산업별로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는 고객사 회사의 구체적인 정보 등 반도체 기업들이 노출을 꺼리는 민감 정보 대신 자동차, 휴대전화, 컴퓨터 등 산업별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한국 기업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들 기업들의 주력 품목이 무엇인지, 산업별 공급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의 수치도 자료에 담길 전망이다.

대만 현지 언론인 타이베이타임스에 따르면 파운드리(위탁 생산) 1위 TSMC는 당초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어느 정도 선을 긋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방침을 바꿔 미국 상무부에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제공했다. 파운드리 4위 UMC도 정보 제공에 동참했다. 

앞서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에 대한) 정보 제공 요청은 반도체 공급과 관련한 업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반도체 공급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미국 자동차 생산을 지연하고, 가전제품 부족을 초래하고 있어 더 공격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협조를 요구했다.

반도체 생산. [출처=연합뉴스]
반도체 생산. [출처=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동맹국 기업에게까지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는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라인이 멈춘 영향이 크다. 대규모 기간 산업인 자동차 산업에 반도체가 제 때 공급되지 못하자 정부가 직접 수급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표면화했듯 반도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반도체 칩 없인 시민의 일상생활이나 공공인프라, 서비스나 첨단 제품 생산, 무기시스템의 운용은 불가능하다. 국가의 생존 필수품이자 포기할 수 없는 안보 자산이다. 삼성전자와 TSMC를 연일 백악관 회의에 부른 것도 이와 관련돼 있다.

백악관은 반도체를 단순한 상품이나 산업을 넘어 전략 자산임을 인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인프라"라고 규정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반도체가 상하수도나 도로처럼 국민 생활과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국가의 핵심 인프라인 동시에 안보 자산이기 때문에 중국의 굴기를 막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당초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기업들을 독려했다. 외국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고 반도체 공급망을 완전 구축하기 위해 보조금까지 지원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SMIC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견제를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기업이 SMIC에 반도체 생산 기술과 장비, 부품을 수출하려면 정부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게 했다. 국가 안보에 위험이라는 이유로 미국인이 SMIC 주식을 거래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같은 제재 조치로 차량용 반도체와 같이 대량생산이 필요한 부품의 생산량이 크게 낮아졌고, 타 반도체 기업들이 대신 생산하느라 타 분야의 반도체 공급량도 채우지 못하는 '반도체 대란'이 심화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말 취임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정치를 강화하는 대신 중국 규제는 전임때와 같이 강경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들어 반도체 기업 상징이었던 칭화유니그룹이 파산하고,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도 폐업하면서 흔들렸다.
 

미중갈등 [사진제공=연합뉴스]
미중갈등 [사진제공=연합뉴스]

이같은 미중 관계에 끼인 우리나라도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1980년대~1990년대까지만 해도 히타치·도시바·NEC로 대표되는 일본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공동산맥을 이뤘다. 한때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한 데다 반도체 톱 기업 10개 중 일본 기업이 6개였을 정도로 시장을 휩쓸었다. 

약 30년이 지난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의 위상은 몰락했다. NEC, 히타치, 미쓰비시가 합작 설립한 엘피다는 2012년 파산했다. 2017년 도시바는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했고 파나소닉은 2019년 반도체 산업에서 완전 철수했다. 반도체 완제품을 생산하는 유일한 곳은 낸드플래시 2위인 키오시아에 불과하다. 이 회사도 업계 3위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인수를 추진하며 사실상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일본 기업의 약진으로 미국 기업의 생태계가 위협받자 반도체협정을 통한 무역보복을 감행했다. '아메리칸 퍼스트'를 내세운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주도하며 일본 기업의 사기를 크게 꺾여 놓은 것이다. 여기에 미 달러 저평가를 가져온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거품경제 사태까지 불거져 생명력을 잃어 갔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D램 등 메모리반도체를 필두로 시장을 휩쓸었다. 우리나라의 주력 반도체도 메모리다. 삼성전자는 1993년 D램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이후 항상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다. 올해 1분기에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3.5%의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 1위를 지켰다. 삼성전자의 D램 영업이익률은 40%, 낸드플래시는 20%대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경영진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부회장 등 경영진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 입장에서도 패권주의에 구애받지 않는 독자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메모리 1등에 안주하지 않고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에 열을 올리는 배경도 이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당초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를 통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혀왔다. 올해 들어 38조원을 추가한 총 171조 원을 투자해 세계 1위 추격에 나선다는 비전을 지난 5월 발표했다.

미국에 지을 파운드리 제2공장 부지도 조만간 확정짓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미국을 방문해 약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는 해당 공장을 확정할 예정이다. 부지는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가장 유력하다. 

메모리 2위 SK하이닉스 또한 비메모리 반도체 적극 투자를 시사했다. SK하이닉스에서 비메모리 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의 2% 대에 불과하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현재 대비 2배로 확대하는 한편, 국내 설비 증설,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들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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