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미국에도 금서(禁書)가 있다?... '불온 교과서' 논란 가열
[월드 인사이드] 미국에도 금서(禁書)가 있다?... '불온 교과서' 논란 가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20 08:14
  • 수정 2022.02.20 0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017년 美 LA에서 열린 교사·학생·학부모들의 '反트럼프 시위' 장면 [NBC 화면 캡처]
지난 2017년 美 LA에서 열린 교사·학생·학부모들의 '反트럼프 시위' 장면 [NBC 화면 캡처]

미국의 학교 수업에 채택되는 교재가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거나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는 내용들이 들어있다고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점차로 늘어나는 추세이며, 이런 현상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문제로 비화하고 있다고, 19일 BBC가 보도했다.

버지니아 주 리치모드에 사는 두 아이의 어머니 야엘 레빈-셀던은 최근 지역 내 한 학교의 교사가 수업에 들고 온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그 책의 제목을 별도로 메모해 둘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그 책은 제목은 『흑인 친구 : 좋은 백인이 되는 법(The Black Friend: On Being a Better White Person)』이었다.

레빈은 제목만 봐도 인종주의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녀는 이런 책은 공립학교에서는 교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좋은 흑인이 되는 법’이란 책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용납될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레빈-셸던은 보수 학부모단체인 ‘교육에서 좌익 반대(No Left Turn in Education)’의 버지니아 지부장이다. ‘교육에서 좌익 반대’는 학생들에게 “급진적이고 인종주의를 자극하는 내용을 퍼뜨리는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런 책들이 아이들에게 불온한 이념을 주입시킬 목적으로 사용돼, 분열을 조장한다고 말하다.

‘교육에서 좌익 반대’의 불온서적 목록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소설 『하녀 이야기(Handmaid's Tale)』와 로빈 디안젤로의 『흰색의 약점(White Fragility)』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힌 프레데릭 조셉의 『흑인 친구 : 좋은 백인이 되는 법』은 적어도 아직은 불온서적 목록에 오르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의 회고록 부분 도서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한 이 책은 백인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에서 흑인 학생으로 도전을 이겨낸 저자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미국 역사나 인종 문제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는 조셉의 회고록 같은 책들은, 2020년 일어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사태에 대한 대응과 끊이지 않는 미국의 인종차별을 타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학교 커리큘럼과 도서관 도서 구입 목록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교육에서 좌익 반대’는 이런 교재들은 미국 역사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교재들과 함께 가르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레빈-셸던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책들을 거부할 권리가 학부모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이 단체는 다른 책들, 특히 성(性)을 노골적으로 다른 책들은 분명하게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포르노나 소아성애를 다룬 책들은 전면적으로 교재 목록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레빈-셸던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단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다, 라고 덧붙였다. 이는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과 교육자들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교 도서관 담당자 들 사이의 대화와 교육적 이해의 균형을 유지한 채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재 현장에서는 항상 이런식으로 바람직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불만의 목소리

텍사스 주의 한 주의원은 학생들이 인종이나 성문제로 인해 ‘불편함, 죄의식, 갈등 또는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는’ 850권 이상의 도서 목록을 작성했다. 이와 관련해 <댈러스 모닝뉴스>는 이 목록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100권 중 97권이 소수 인종이나 여성, 또는 성적 소수자(LGBTQ)에 속하는 저자들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교육 자치구는 이 목록 중 400권을 공식적인 검토 조치나 학부모들의 특별한 불만 없이 관내 도서관들에서 끌어내렸다.

테네시 주의 한 교육위원회도 욕설과 쥐를 의인화해 홀로코스트에 관한 내용을 누드로 그린,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래픽 소설 『마우스(Maus)』를 9학년의 커리큘럼에서 빼버렸다.

또 플로리다 주 포크 카운티에서는 한 학교가 외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와 토니 모리슨의 『비러비드(Beloved)』 등 16권의 책들을 교재 목록에서 빼냈다.

좌파 진영도 가만있지는 않고 있다. 워싱턴 주 시에틀의 한 교육자치구는 인종 관계 묘사와 인종차별적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하퍼 리의 1960년 고전소설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를 교재 목록에서 삭제했다.

주인공이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구사하는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도 작년에 메네소타 주 멘도타 하이츠와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 교육자치구의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다.

-홀로코스트 기간 유태인의 고난을 묘사한 그래픽 소설 『마우스(Maus)』
-홀로코스트 기간 유태인의 고난을 묘사한 그래픽 소설 『마우스(Maus)』

분노의 정치

일부 교재로 사용되는 책들에 대한 심판과 삭제 압박은 보수와 진보 미디어들의 선동을 타고 전국적인 열풍으로 번지고 있다.

『모든 소년이 다 파랗지는 않다(All Boys Aren't Blue)』라는 책을 교재에서 뺄지 말지를 두고 열린 플로리다 주 플래글러 카운티 한 학교의 교육위원회 토론회장은 추잡한 욕설이 난무하는 시위와 이에 대항하는 시위로 변질되었다.

미국 다른 지역에서의 비슷한 모임들도 공무원들에 대한 협박 때문에 취소되거나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6월 인디애나 주 카멜에서는 한 학교의 교육위원회 회의 중 학부모들이 서가에서 제거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들의 노골적인 표현을 돌아가면서 낭독하던 중 한 남성의 호주머니에서 권총이 발견되어 그가 체포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레빈은 자신의 단체는 학부모들의 그런 과격한 행동까지 찬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자신의 단체는 회원들에게 학교 교육위원회에서 ‘정중하고 전문가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정치에 있어서 분노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고, 보수 정치인들과 공화당이 점유하는 의회는 이러한 열정에 힘을 실어준다.

지난해 공화당 소속의 글렌 영킨은 교유 문제와 학부모 권리를 앞세워 버지니아 주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선거운동 당시 그는 한 학생의 어머니를 내세워 모리슨의 『비러비드(Beloved)』가 자기 아들의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교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텔레비전 광고를 선거에 활용했었다.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의회 장악과 주정부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가운데 많은 우파 후보들이 영킨 주지사의 전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텍사스 주 주의원인 맷 크라우스는 850권의 금서 목록을 앞세워 주법무부장관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주 인디애나 주 상원은 ‘미성년자에게 해로운 내용’을 퍼뜨리는 학교 사서들을 형사소추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오클라호마 주 의회도 학교 사서들이 성(性)과 젠더 문제를 다룬 어떤 책도 비치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