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번번이 휘둘리기만 하는가?
[월드 프리즘] 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번번이 휘둘리기만 하는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16 06:01
  • 수정 2022.02.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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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지도자들, 정치력과 상상력 결핍 심각"
“러 침공시 끝까지 항전”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은 저항할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횃불을 치켜든 채 러시아 침공 시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러 침공시 끝까지 항전”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은 저항할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횃불을 치켜든 채 러시아 침공 시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국제관계, 정치·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인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15일 서방의 대 러시아 외교가 항상 실패를 거듭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저널리스트 앤 아플바움의 칼럼을 실었다.

앤 아플바움은 존스홉킨스대 SNF아고라연구소 연구원이자 '민주주의의 황혼: 권위주의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내가 리즈 트러스 장관에게 주어진 기회를 한없이 부러워하면서도, 그녀가 이를 활용할 기회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있는 상황을 얼마나 애석하게 여기는지 아는가?

작달막한 체구의 그녀는 지난 주 모스크바로 날아가 카운터파트인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와 회담을 갖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영국의 외무장관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 

트러스의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라브로프는 기자회견장에서 냉담한 태도로 두 사람의 대화를 “‘귀머거리’를 상대로 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였다고 묘사했다. 이후 그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라도 하듯이 트러스가 러시아의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 영토로 헷갈리기까지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라브로프의 이러한 반응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유럽연합(EU)의 외교 책임자 주제프 보렐을 향해서도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는 국제회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언론인들에게는 무례하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우연이 아니다.

라브로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를 무력화할 목적과 공포를 조장하고, 현안에 관심 없음을 시전하기 위해 대화 상대방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는 도구로 공격적 자세와 냉소적 태도를 활용한다.

그의 목적은 상대 외교관을 수세(守勢)에 빠뜨리거나 상대방이 기가 차서 대화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라브로프가 무례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사실이 아니다. 나아가 푸틴이 외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자신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불만에 대해 여러 시간 강의를 늘어놓는 것도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푸틴은 10년도 더 전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이런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정확히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트러스 외무장관은 이런 상황을 분명히 인식했어야 했다. 그녀는 규정과 가치라는 공염불을 늘어놓는 대신 다음과 같은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기자 여러분들? 저는 저의 러시아 카운터파트인 세르게이 라브로프와의 대화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번에 그가 존중하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을 협약을 놓고 시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어느 때보다 가공할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을 완전히 끊어버릴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유럽은 에너지 공급을 위해 다른 대체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필요하다면 10년 동안 우크라이나 저항군을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반체제 운동을 지원하고, 러시아 언론을 지원하기 위해 서너 배 더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러시아가 이번 침공과 관련된 진실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가능한 소리 높여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네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우리 또한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꾀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습니다.”

트러스 장관이나 그녀 전의 주제프 보렐도 마찬가지로 라브로프 스타일처럼 일종의 개인적 모욕을 가미해서 라브로프 가족이 런던에 거주 중인 화려한 부동산에 소요되는 공금에 대해 큰 소리로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있었다.

그녀는 또 자녀들을 파리나 루가노(Lugano)의 학교에 보내고 있는 많은 러시아 관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서방국들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인접국인 폴란드 남동부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 도착한 미군 제82 공수사단 부대원들이 군장을 메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서방국들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인접국인 폴란드 남동부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 도착한 미군 제82 공수사단 부대원들이 군장을 메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연히, 보렐이나 마크롱이나 지난주 모스크바로 날아갔던 독일 총리처럼 트러스도 이런 말을 사적으로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려고 노력 중인 서방 지도자들이나 외교관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규칙이 중요하고, 외교 협정이 유용하며, 정중한 언사가 존중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 모두는 러시아로 날아갈 때 자신들이 논쟁과 토론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엘리트들도 ‘평판’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그렇지 않다.

사실, 새로 등장한 독재자 종족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러시아든 중국이든 베네수엘라든 또는 이란이든 우리는 전혀 새로운 존재들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협정이나 문서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고, 강한 힘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부딪힌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현재 1994년 조인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를 위반하고 있다.

혹시 푸틴이 이 양해각서를 거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없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라브로프도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증오는 되레 그에게 힘이라는 후광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푸틴의 목표는 러시아의 번영과 평화가 아니라 러시아 수장으로서의 권력 유지일 뿐이다.

그리고 라브로프는 러시아 엘리트의 음험한 세계에서 자신의 부(富)와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익’과 그들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외교관들과 대화를 할 때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그리고 개인적 부(富)에 해가 가는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러시아가 서방에서 자행하는 돈세탁이나 러시아가 서방에 미치는 정치적·재정적 영향력을 적당히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내는 문제에 대해 아무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독일이 러시아 산 천연가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거나, 프랑스가 러시아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정당들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거나,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의 소수 지배 세력들이 런던이나 마이애미에서 부동산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 시스템을 파고드는 푸틴의 정보 전쟁에 대한 마땅한 대응은 푸틴 자신에 대한 정보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제 재앙적 충돌의 위기가 엄습해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미국, 영국, 유럽 대사관들은 철수를 서두르고 있으며, 시민들에게는 대피 경고가 내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한 순간은 외교의 실패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상상력 부재를 반영할 뿐이다.

외교, 정치, 언론, 그리고 지식인 계층에 수세기 동안 누적되어 온, 러시아가 어떤 나라로 변화되고 있으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지 않았던 무관심의 결과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러시아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의 실체를 바로 보기를 거부해왔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방식으로 그들과 접촉하기를 꺼려왔다.

그 결과를 헤아리기에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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