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내가 크리스티나 유나 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CNN 여성 앵커의 절규
[월드 프리즘] “내가 크리스티나 유나 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CNN 여성 앵커의 절규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3.06 06:13
  • 수정 2022.03.06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려움없이 걸어다니고 싶다" :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한인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 피살 관련 집회에서 "두려움 없이 걸어 다니고 싶다"는 팻말을 든 시위자. [뉴욕=연합뉴스]
"두려움없이 걸어다니고 싶다" :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한인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 피살 관련 집회에서 "두려움 없이 걸어 다니고 싶다"는 팻말을 든 시위자. [뉴욕=연합뉴스]

지난달 13일 한국계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35)가 맨해튼 인근 그녀의 아파트까지 따라온 노숙자에게 살해당했다. 묻지마범죄였다.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발발 이후 아시아계를 백안시하던 미국 사회에 또 한 번 경종을 울렸다.

이와 관련 CNN은 4일(현지 시각) 웹사이트에 자사의 통신원이자 앵커인 아마라 워커의 칼럼을 실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내가 그녀였을 수도 있었다. 우리 모두 그녀였을 수도 있다.

나와 나의 아시아계 여자친구, 동료 들은 아시아계 여성이 또 다시 묻지마범죄에 희생됐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하고 끓어오르는 분노와 역겨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난해 한 남성이 애틀랜타 일원의 스파(spa) 3군데에서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희생자들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범인 로버트 아론 롱은 희생자 6명 중 4명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아직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추가 살인과 증오범죄와 관련해 재판을 더 받아야 하며, 사형을 언도받을 수도 있다.

이번에 살해된 크리스티나 유나 리는 2월 13일 이른 아침 자신의 아파트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접수된 고소장에 따르면 한 남성이 그녀가 문을 닫는 순간 뒤를 덮친 것으로 되어있다. 검사들은 아사매드 내쉬(25)라는 남성이 그녀를 아파트까지 뒤따라가 수십 차례 찔렀다고 말한다. 그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나는 유나 리를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그녀가 당한 일, 자기 집에서 야만적으로 살해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는 밝게 웃고 있는 그녀 생전의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있다.

유나 리가 다니던 직장의 매니저라고 밝힌 다니 디시아치오가 추모의 의미로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녀의 사진 속 눈망울은 쾌활하고 호기심 많고 창의적이며 자신감 넘치던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디시아치오는 이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그녀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남을 칭찬하기를 좋아하던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도 기록을 남겼다.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한 유나 리 부모님의 슬픔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지하철역 바로 옆에 살았으면서도 우버택시를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그날도 우버를 이용했으면 그런 참혹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보도에 의하면 유나 리 살해 혐의자는 노숙자이며,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살해가 아직까지는 증오범죄로 의심받고 있지 않지만 나는 이것이 증오범죄이든 아니든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들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반아시아계 폭력 사건의 집계가 늘어날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힌다. 최근 발표된 뉴욕경찰국(NYPD)의 범죄 데이터는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361%가 증가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장은 같은 기간 567%가 늘어났다고 밝힌 바가 있다.

나는 증오범죄의 65%가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에 의해 신고된 사건이라고,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섬 주민들에 대한 증오 중단(Stop AAPI Hate)’이 밝혔을 때 놀라면서도 별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은 일상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뭉쳐서 함께 다니거나 자주 뒤를 돌아보거나 대중교통을 회피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아시아계의 미국이민이 시작된 1800년대부터 내려온 비열한 고정관념(stereotype)의 손쉬운 목표물로 전락해버린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중 상당수는 반아시아계 증오 사건의 파고가 몰아치는 지금 우리의 처지가 더 취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니게 되었다.

뉴욕 한인 여성 아파트 앞에 놓인 조화 : 14일(현지시간) 한인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가 살해당한 미국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한 아파트 앞에 놓인 꽃다발. [뉴욕=연합뉴스]
뉴욕 한인 여성 아파트 앞에 놓인 조화 : 14일(현지시간) 한인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가 살해당한 미국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한 아파트 앞에 놓인 꽃다발. [뉴욕=연합뉴스]

우리는 끔찍하게 공격당하고 살해된 아시아계 여성들의 삶을 타인화할 수 없다. 2020년 3월 발생한 애틀랜타 스파들의 총기난사 사건에서 시작돼 올 1월 지하철에서 살해된 미쉘 고, 그리고 2월에 발생한 크리스티나 유나 리의 사건까지, 모든 희생자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이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여성 혐오에서 기인된 범죄에 특별히 취약하다는 연대의식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처참히 희생된 소중한 목숨들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처럼, ‘당신을 오래도록 사랑해요(Me love you long time)’라거나 ‘너무 하고 싶어요(Me so horny)’ 같은 인종차별적인 성희롱 언사(catcall)를 익숙하게 듣고 자랐다. 이 언사들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87년 만든 베트남전쟁 영화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에 등장하는 베트남 매춘부가 사용해서 인기를 끌었다.

이런 모욕적인 언사는 미국 문화 내에서 아시아계 여성을 특이한 성적 대상으로 여기거나 성의 목적물로만 바라보도록 만들어 남성들은 후과(後果)를 생각하지도 않고 이런 말들을 함부로 내뱉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는 이러한 모욕적인 언사는 우리를 향한 공격 무기이며, 오늘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본능적으로 화가 치민다. 그렇다. 나는 오늘도 이런 소리를 듣는다.

사실, 나는 최근에 실내골프연습장에서 일단의 남성들에게 성적 제안을 받았다. 그들은 나에게 인종차별적이고 저속한 말들을 쏟아부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아시아 언어를 쓰는 듯한 흉내를 냈으며, 그의 친구는 서툰 영어를 사용해 나보고 밖으로 나가자는 말을 했다.

이런 무식하고 편협한 언사를 전혀 상관없는 남이나 심지어는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도 얼마나 많이 듣는지 필설로 다 이를 수가 없다. “아시아 여성은 처음이야.”, “중국 여자들은 음탕하지, 그렇지?”

나는 중국계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그 뿌리가 10여 개도 넘는 다양한 인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구분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뒤섞어 간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식은 그대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계 미국 여성이 비인간적인 성의 대상이라거나 온순하고 복종심이 강한 여성이라는 괴상한 판타지(fantasies)는 우리를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시킨다. 나는 10대 시절 아시아 여성이라는 존재는 어떤 이들에게는 다르게 취급해도 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자랐다. 

나는 언제나 경계심을 놓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증오적인 환경은 이런 태도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사건들이 정상이 아닐 정도로 아시아계 여성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벌어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정신질환, 약물남용, 노숙자 문제 등과 함께 성과 인종 관련 폭력에 대한 대처가 시급하다.

지난해 애틀랜타의 각기 다른 스파 3곳에서 8명(그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을 살해한 광란극은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경종이라 할 수 있었다. 툭하면 폭력으로 비화되는 우리의 젠더(gender)문제와 인종문제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말이다.

이 살인극은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저속한 고정관념이 이러한 범죄들을 취급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법집행 기관 종사자들이 살인범의 죄를 그의 불운한 과거 탓으로 돌리거나 성중독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동정을 베푸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1월 15일 타임스퀘어 역에서 한 남성이 M&A 관련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던 미쉘 알리사 고(40)를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밀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나 리의 경우처럼 알리사 고를 밀어버린 범죄 혐의자도 노숙자였다. 알리사 고의 사건은 증오범죄로 취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이러한 범죄들은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우리도 누군가의 딸이며, 자매이며, 아내이고, 어머니이다. 우리는 그대들의 이웃이고 직장상사이며, 당신 회사의 직원이며, 당신의 의사이며, 당신의 환자이고, 당신의 운전사이고 승객이다.

불행하게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확진자 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공격 파고가 잦아들 거라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통계와 희생자들의 사진에만 머무르지 말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더 많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선조들의 고난과 미국에 대한 공헌이 미국 역사책에 더 많이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편견을 조장해온 할리우드 영화 속의 초상에서 벗어나 좀 더 정당한 모습으로 미디어에 조명되어야 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미지는, 비록 아주 천천히 개선되고는 있지만, 너무나도 치욕적으로 비천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바꾸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떨쳐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줄 친구가 필요하다.

크리스티나 유나 리, 미쉘 알리사 고, 그리고 애틀랜타 스파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처럼 우리도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상처받고 있다.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 우리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 달라. 우리도 우리나라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