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전직 CIA 고위 기밀정보 전문가가 보는 푸틴의 속셈과 현 상황은?
[우크라 침공] 전직 CIA 고위 기밀정보 전문가가 보는 푸틴의 속셈과 현 상황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3.06 06:15
  • 수정 2022.03.0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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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국가안보회의 전화회의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있다. [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국가안보회의 전화회의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있다. [AFP 연합뉴스]

"푸틴은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했는가."

CNN은 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침공 명령을 내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속셈과 현재 상황에 대한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의 필자 더글라스 런던(Douglas London)은 『신병 모집인 : 스파이 활동과 미국 정보 활동의 잃어버린 예술(The Recruiter: Spying and the Lost Art of American Intelligence)』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고, 조지타운 대학 대외업무 스쿨에서 정보 분야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더글라스 런던은 CIA의 기밀업무국(Clandestine Service)에서 34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중동과 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면서 기지 책임자로 중책을 맡기도 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제정신을 잃어버렸나? 그렇지 않다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정당하지도 않고 이길 수도 없는 전쟁을 벌임으로써, 어떻게 이다지도 무모하게 세계를 상상할 수도 없는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설령 러시아가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후 정권을 교체하고, 꼭두각시 정권을 앞세운다고 할지라도 크렘린은 유혈 반란과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푸틴은 아직 자신을 축출할 수도 있는 자국 내 풀뿌리 저항 세력의 어마어마한 공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저항 운동은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든 세력들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러시아를 지켜 보아온 정보전문가로서 필자는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가 현실과 괴리된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환기한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기가 어렵다’는 경구(警句)는 푸틴에게는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푸틴은 그릇된 과거 인식만큼이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의 굴욕적 역사에 대한 자각이 그에게 역사를 다시 쓰게 몰아가고 있다면 그 동기는 그의 자아(自我)보다는 그가 느끼는 존재론적 위협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존재론적 위협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이 파멸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푸틴의 속셈

푸틴은 러시아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된다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도 보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2008년 대통령 자리를 사실상 권력 관리인이자 허울 뿐인 통치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잠시 맡기기 전에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바가 있다.

2005년 푸틴은 의회에서 열린 연두교서를 통해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가 ‘세기의 지정학적 재앙의 최대 원인’이며 ‘러시아까지 침투되는’ 분리주의 운동을 조장하는 ‘전염병’의 온상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역사적 붕괴를 두고 그가 2021년 12월 언급한 말은 기자들 앞에서 자신은 소비에트공화국의 붕괴를 되돌려놓을 것이라고 역설한 2018년 언사의 후속타였다.

전직 KGB 요원 푸틴은 훈련된 정보장교 출신이다. 그는 통제를 즐긴다. 정보전문가는 타인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 힘을 행사하려 한다. 그들이 통제에 사용하는 힘은 이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된다.

이러한 활동에는 푸틴의 열정적 연설과 정력적인 개인 이미지, 그리고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절대복종과 러시아의 압도적 군사력에 대한 소문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극적 요소가 필요하다.

핵부대에 최고 경계태세 명령을 하달한 푸틴의 작위적 연극은 국내 관객용이다. 그는 상호 반응을 자극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 연극을 연출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공동 군사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출처=연합]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공동 군사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출처=연합]

푸틴은 러시아가 침략자들의 공격 목표로 전락했기 때문에 선제공격과 최강의 무력이 선제력과 자위권 확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 같은 의도가 있을 수 있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한 반응이라면 공격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러시아군이 그러한 경보를 발령한다면 미국 정보기관은 즉시 징후를 감지할 것이다.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대항해 자체 핵 무력에 경계태세를 가동했을 때 닉슨의 백악관은 이를 대중에게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경계태세가 내려졌음을 군사 및 안보 라인에 교묘하게 흘림으로써 러시아가 이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도록 했다.

푸틴은 주도권을 잡아서 자신의 의도대로 적들이 움직이도록 강요하는 데 목표를 두는 행동주의 철학을 신봉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에는 정확한 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잠재적 결함과 취약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계획은 사상누각과 같다.

푸틴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전쟁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끝날지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푸틴의 전쟁이 애초에 그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무성한 것은 사실이다.

아무도 푸틴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좁은 프리즘이라도 그것을 통해서 바라보면 지도자가 싫어하는 뉴스를 전달하기 꺼리는 아첨꾼들로 채워진 충성의 궁정을 조성한 한 지도자의 초상을 볼 수 있다. 그는 러시아의 요직을 ‘실로빅(정보부나 군인 출신의 러시아 정치인)’들로 채웠다. 이 실로빅들은 주로 전직 KGB 요원 출신들로 구성된 러시아 정보 분야출신의 막강한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강도들에게 명예란 있을 수 없다. 특히 이번 경우에는 이 실로빅들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푸틴 자신의 확신 때문에 그는 특히 이들 전직 스파이들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이 실로빅들은 성실함보다는 충성을 대가로 확보한 인센티브로 국가의 자원을 약탈하고, 자신들의 지갑을 부풀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푸틴이 연출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는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푸틴의 정보, 안보, 국방 기관들로 구성된 러시아의 관료주의는 자기 지도자가 지시하는 데로 움직일 뿐이다.

겉으로는 자신의 안위에 집착하는 듯이 보이지만, 푸틴의 자기 고립과 변덕이 외부 세계의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관료들에게 일종의 자기검열을 조장했고, 자기 마음에 드는 정보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러시아 군대의 전투력과 병참 능력에 대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나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이 올바른 보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언론에 보도된 수준만 가지고도 러시아의 손실은 20년 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에서 입은 피해의 몇 배가 될 것이다.

러시아 총정보국(GRU) 최고책임자 이고르 코스튜코프로부터 러시아의 피해와 관련해 아직까지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푸틴의 이상을 공유하는 강경론자이자 그의 직속기관(특히 29155부대)이 암살과 사보타주(파괴 행위), 그리고 해외 반란 사주와 관련이 있는 코스튜코프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헛된 기대일지도 모른다.

침공이 개시되면 동조하지는 않을지라도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의 묵인하에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휩쓸어버릴 것이라는 코스튜코프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세르게이 나리시킨 국장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국장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푸틴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들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와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 가능성을 경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각종 차량과 장비들이 파괴된 채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각종 차량과 장비들이 파괴된 채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푸틴을 지켜보며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푸틴은 초강대국 사이의 경쟁과 관련된 공식을 깨뜨리고 있다. 예컨대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는 한때 믿었던 책임 있는 가드레일 구실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상호확증파괴’란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이나 도달한 후 남아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전략을 말한다.

푸틴은 러시아의 주요 정부·군사 인프라들이 공격을 받을 경우 원자력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러시아의 핵 억제 전략의 수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벨라루스는 핵무기 배치를 승인하는 입법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다. 이 법은 이동 가능한 중거리 핵미사일을 나토 국경 가까이 배치하려는 푸틴의 야욕을 쏘아 올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CIA의 기밀업무국(Clandestine Service)에서 34년 넘게 근무하며 러시아의 목표물을 추적해온 필자가 지닌 고위 정보요원의 치우친 시각을 감안하더라도 푸틴의 야망과 의도, 그리고 그가 의지하는 정보를 더 잘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랑하는 테크놀로지보다는 사람이 더욱 중요하다.

고해상도 스파이위성은 러시아 병력의 규모를 파악하고 행렬을 추적하고 무기 수준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도청 시설들은 통신과 나아가 그 내용까지 탐지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의 의도는? 그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생각인가? 그리고 대중이 거짓정보를 구분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동맹이 크렘린의 의도를 파악하던 능력이 푸틴과 접촉하던 한 CIA 요원이 5년 전의 폭로로 위험에 처해 졌을 때 상실되었다고 한다. 타협과 양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는데, 그는 2017년 5월 백악관 집무실 회의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및 당시 주미 러시아 대사 세르게이 키슬야크와 기밀정보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이 같은 정보당국의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은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주역할을 대테러 업무에서 전략적 상대방들에 대한 전통적인 정보수집으로 재정립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말하는 전략적 상대방들의 우선순위에는 중국, 테크놀로지, 러시아, 그리고 CIA의 인력 강화가 포함된다.

CIA는 전통적인 해외 스파이 활동에 있어 지난 20년 동안 과소평가 받으며 제임스 본드보다 더 가혹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유능한 요원들의 양성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적 기질에도 불구하고 CIA가 대(對) 러시아 활동을 실제로 중단한 적은 없다고 믿고 있다.

러시아가 초기에 비교적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수도 점령 후 예상된 반군 진압 및 정부 교체에서 피하고 싶어 한 복잡한 문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제를 강화하고 군사적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 그가 더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러시아 측의 엄청난 피해가 국내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푸틴이 우려한다는 점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도시 중심부를 초토화시키고, 무차별적으로 열압 무기(thermobaric weapons)들을 사용하고, 집속탄을 터뜨린, 시리아 전쟁에서 동원한 잔인한 전술을 다시 구사할 수도 있다. 

푸틴과 그의 실로빅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정보가 선결되어야 하며, 러시아 지도자의 무모함을 암시하는 감정적 요소에 대한 저항 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지도자는 잔인하고 비논리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은 푸틴이 비이성적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해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상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셈법과 그가 결정을 내릴 때 의지한 내부자 그룹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했다.

푸틴은 무엇보다 자신이 러시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전쟁을 확대할 듯하다. 그가 전쟁 그 자체로 인해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의문으로 남는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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