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전쟁을 피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러시아 사람들의 사정
[우크라 줌인] 전쟁을 피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러시아 사람들의 사정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4.19 06:29
  • 수정 2022.04.19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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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평온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평온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영국의 일간 미디어인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고국을 떠났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귀국길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의 사정을 전했다.

비디오 생산 분야에서 일을 하던 올가 글라디체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고국 러시아를 탈출한 수천 명의 대열에 합류했었다.

“전쟁 직후 저는 패닉에 빠져 이스탄불행을 결행했습니다. 저는 국경이 봉쇄될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떠나는데 저 혼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저는 러시아가 북한처럼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터키에서 그녀의 카드가 정지되었고, 그 바람에 모스크바에 남은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송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틸 수가 있었다.

올가는 현재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로 돌아와 있다.

“지난주에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돈 문제 때문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모스크바에 집세를 내야 하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저는 해외에서도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손쉽게 내릴 결정은 아니었고, 모스크바에서의 수입이 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터키에서의 삶은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탈출구가 보이지 않은 채 석 달째 접어들면서 러시아를 떠나겠다고 성급한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이 해외에서 힘겨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특히 국경이 봉쇄되고 금융 기관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를 영원히 떠나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반면에 일부는 병든 부모와 가족 부양을 위해, 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귀국을 선택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진짜 가족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아르메니아에서 돌아온, IT 회사의 공동창업자 로만은 이렇게 말했다.

“가능한 러시아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더 이상 아무 데도 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을 내려야 했습니다. 아내 없이 홀로 생활하느냐, 아니면 아내와 함께 러시아로 귀국하느냐,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아내와 귀국하는 길을 선택하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쟁에 자극받은 러시아인들의 탈출 물결을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강제징집될 수 있다는 소문에 주로 고학력 노동자들이 보다 작은 나라들을 향해 탈출을 선택했던 것이다. 

IT 스타트업 ‘힌트에드(HintEd)’를 창업한 아르템 타가노프는 지난 3월 초 러시아 IT 종사자들의 엑소더스 물결에 합류에 아르메니아로 떠났었다. 당시 그의 파트너와 투자자들은 강제징집될 수 있으니 가능한 빨리 러시아를 떠나라고 충고했었다고 한다. 그는 아르메니아에서 회사를 새로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5주를 보낸 뒤 사업과 가족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다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메니아에서 새롭게 사업을 꾸릴 생각이었지만, 돈 문제 때문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저의 아내와 애완견이 여전히 모스크바에 있습니다. 아내는 일 때문에 당장 러시아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르템의 아내는 영국 예술 대학과 협력을 맺은 기관에서 일을 하는데, 그 협약이 금년에 종료될 것이라고 한다.

“떠나자고 아내를 설득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 여기 회사에 할 일이 남아 있기는 합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옆으로 초대형 ‘Z’ 글자가 보인다. Z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뜻으로 쓰인다. [사진=AP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옆으로 초대형 ‘Z’ 글자가 보인다. Z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뜻으로 쓰인다. [사진=AP연합뉴스]

아르템에게는 쉽지 않은 귀국길이었다. 다른 도시에 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그의 부모는 러시아를 떠나는 것을 비난한다. 그는 부모와 통화하는 것이 불편하고, 전쟁으로 인한 갈등이 끝날 때까지는 부모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여긴다.

“다시 귀국을 선택했을 때 러시아의 자동차들에 전쟁을 지지하는 ‘Z’나 ‘V’ 사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단 한 대만 목격했을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곳 분위기는 정말 무겁습니다. 모든 언론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보도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시야를 내 주위로 좁혀보면 이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이 ‘특수한 작전(special operation)’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최대 IT 기업 중 한 곳의 한 고위 임원은 예레반이나 이스탄불, 또는 트빌리시로 떠났던 젊은 직원들이 급여 문제 때문에 다시 귀국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패닉에 몰려 떠났던 사람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현실에 부닥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현상황이 불만스럽고, 동의할 수 없으며,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돌아오고 싶지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다시 귀국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크렘린이 ‘특수한 작전(special operation)’이라고 말하는, 이 전쟁 개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떠났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러시아의 일부 IT 종사자들은 해외에서 가능성을 펼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들은 외국에서는 자신들의 기술과 지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술 컨설턴트인 드미트리는 전쟁이 시작되자 충격에 빠졌고, 강제징집 소문 때문에 러시아를 탈출하기로 결심했었다고 들려주었다.

“저는 비자 없이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강제징집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3월 말 다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유럽은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유럽이 러시아 사람들을 기다려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러시아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영어도 거의 할 줄 모릅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해외 이주를 돕는 기관을 운영하는 이라 로바노브스카야는 “패닉 물결에 휩쓸려 많은 사람들이 잠시 탈 러시아를 선택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현상을 목격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다시 떠날 계획을 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건들을 챙기고, 서류를 꾸미는 등 해외 안착을 위해 일시적으로 돌아온 것뿐이라는 말이지요.”

만하임에 소재한 유럽 경제 연구센터(Center for European Economic Research)의 연구원인 카트린 좀머펠트는, 러시아인의 경우 난민 이민을 목표로 해외 이주를 선택하는 데 많은 걸림돌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독일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국가들의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밖으로는 1000달러 이상을 들고 나갈 수 없으며, 은행계좌에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돈을 벌기가 더 어렵고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물건 값이 너무 비쌉니다. 그래서 해외 이주가 녹녹지 않아, 재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가 날아가 버리고, 해외에서 먹혀들지 않는데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귀국한 사람들 중 일부는 러시아 내에서 전쟁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크게 받습니다.”

앞서 인터뷰에 응했던 IT 기업의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나쁘고, 푸틴도 사악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곳 러시아의 상황은 그냥 그런대로 굴러갑니다. 사람들의 환상일지 모르지만 환율도 큰 문제가 아닌 것 같고, 상점에서 물품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가 염려했던 만큼은 아닙니다. 물가도 오르고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마음 한 곳이 무너지는 것처럼 정말 우울합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사람들 반 이상이 전쟁의 추이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며 전쟁을 지지하는 놀라운 모습도 목격했지만, 사람들의 삶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가 글라디체바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저녁이면 술집과 식당들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마치 사람들이 전쟁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 자체가 공포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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