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승리를 거두고 있는 프랑스 극우 진영
[월드 투데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승리를 거두고 있는 프랑스 극우 진영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4.22 05:52
  • 수정 2022.04.2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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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집계 결과가 스크린에 표시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0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집계 결과가 스크린에 표시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N 방송은 21일(현지 시각) 며칠 남지 않은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의 분위기를 전하는 평론가 림-사라 알루앙의 칼럼을 소개했다. 칼럼의 필자는 현재 우파적 분위기가 우세한 상황에서 극우의 대안으로 선택되었던 마크롱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우선회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필자인 림-사라 알루앙은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평론가이다. 그녀는 툴루즈 캐피톨 대학(University Toulouse-Capitole)에서 비교법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그녀의 연구는 프랑스, ​​유럽 및 북미의 종교 자유, 시민의 자유, 헌법 및 인권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처음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향후 5년 동안 자신은 프랑스 유권자들이 더 이상 ‘극우세력에 표를 주는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가 있다.

하지만 프랑스 유권자들에게는 애석하게도, 마크롱은 극우세력의 발호를 차단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2017년 대권을 거머쥔 이후 프랑스의 정치 지형은 극적으로 변해, 마린 르 펜의 극우 ‘국민연합(National Rally party)’이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현재, 다가오는 일요일 결선투표를 며칠 앞두고 마크롱 정부는 르 펜의 부상(浮上)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우파 이념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 즉, 그는 이슬람과 국가안보, 그리고 이민자 문제에서 우파 진영의 주장과 보조를 맞추게 된 것이다. 솔직히 프랑스의 전체 정치 지형은 백인으로 프랑스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크롱이 권좌를 내주든 아니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프랑스 정치권에서 르 펜 후보가 부상한 정서를 은밀히 수용하려는 욕망은 깊고도 깊다.

특히 프랑스 무슬림에 집중된 관심은 지난 30년간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공포 마케팅의 꾸준한 증가로 점철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연속된 테러 행위 물결이 1980년대 이후 국민 여론을 자극하면서 당국은 ‘프랑스 이슬람(French Islam)’을 육성한다는 기치 아래 무슬림의 종교 관행과 무슬림 조직을 감시하는 프레임을 형성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에 대한 위협의 개념은 무슬림을 존재론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공공안전에서 ‘전통적 프랑스(traditional France)’라 일컫는 문화적 정체성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라는 파고에 올라탈 기회를 엿보던 정치인들은 한때는 자유주의자들의 이념이었던 ‘라이시테(laïcité/secularism : 세속주의 또는 정교분리주의)’를 활용하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안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덮개와 부르키니(여성의 복식인 브루카와 비키니를 조합한 신조어로, 신체 전부를 가리는, 무슬림 여성이 입는 수영복)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국민들은 마크롱을 극우의 대안으로 여기는 반면 그는 양극단을 왔다리갔다리 하고 있다. 외국을 상대로 하는 대외적 입장에서는 자유주의자의 얼굴을 내세우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극우세력이 옹호하는 정책들을 조용히 껴안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반영하듯 마크롱은 제랄드 다르마넹을 내무부장관에 임명했다. 프랑스에서 내무부장관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 중 하나이다. 다르마넹은 프랑스 경찰을 강력히 지지하면서 유권자들을 양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그는 이 정책으로 좌파로부터는 배척을 당하고 있지만, 반대로 입김이 센 프랑스 경찰노조로부터는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비판자들은 다르마넹 장관이 자극적인 수사(修辭)와 행동으로 반무슬림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마크롱 정부의 우선회를 명확히 시사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지난해 2021년 8월에 제정된 ‘공화국원칙 존중 강화법(반분리주의법)’에 대한 토론장에 나와 르 펜이 ‘이슬람교도에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한 바가 있다.

‘반분리주의법’은 2022년 대선을 앞둔 마크롱 대통령이 극우 열풍의 바람을 빼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반분리주의법’에 따르면 비영리 단체들은 ‘공화국에 헌신’한다는 조항에 서명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유와 평등, 형제애, 인간 존엄성, 그리고 공공질서를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또, 이 법에 따라 당국은 언급된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단체들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지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이 법률이 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불법 이민자 지원 단체나 인권운동 단체 같은 일부 비영리 기구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공공안전에 위반한다는 조항에 저촉돼 지원이 끊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분석가들은, 좌파 진영의 분열에 직면한 마크롱이 일부 극우 이슈들을 받아들여 르 펜에 기울어진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선심을 사려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다르마넹 장관은 2022년 2월 극우 유권자들이 마크롱을 지지해주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르 펜은, 한편으로는 지난 30년 동안 자신의 지지기반이던 근본이념의 전환은 거부하면서도, 극우적 요소들을 줄이는 중도편향 행보를 시전하고 있다.

이민 확대, 가족 재결합 확대, 망명 확대 정책이 프랑스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해온 르 펜은 헌법개정 등을 포함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 그녀의 공약은 취업과 연금 혜택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법률적으로 명확한 구분을 짓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르 펜은 나아가 1905년에 제정된 정교분리법과 ‘라이시테’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 착용 금지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라이시테’는 20세기 내내 국가와 공무원들에게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진 반면 민간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준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라이시테’를 해석하는 방식이 진화하면서 종교적 표현의 자유, 특히 무슬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눈에 띄는 종교 복장의 착용을 금지하는 입법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일부 무슬림 여성들의 얼굴 전면 스카프 착용 제한으로 표면화하였다.

마크롱도 부지불식간에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는 얼굴 전면 스카프를 착용한 한 젊은 무슬림 여성에게 그 스카프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by choice)’인지 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by force)’인지를 묻고 선택에 의해 착용했다는 대답을 듣자 그녀를 칭찬한 적이 있다.

마크롱이 똑같은 질문을 베일을 쓴 가톨릭 수녀나 야물커(유대인 남자들이 머리 정수리 부분에 쓰는, 작고 동글납작한 모자)를 쓴 유대인이나 터번을 착용한 시크교도에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 같은 워딩은 그의 행정부의 원칙에서 후퇴하고, ‘반분리주의법’ 같은 조치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한 번, 무슬림들, 특히 무슬림 여성들이 선거에 이용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프랑스 우파는 이미 승리를 쟁취했다. 그들은 프랑스 정치 토론에서 아젠다를 선점하고 있다. 이번에는 르 펜이 패배하더라도 다음에는 그녀나 그녀와 비슷한 누군가가 승리할 것이다.

프랑스 무슬림들은 이러한 정치놀음에 저당잡힌 신세에 진저리를 친다. 프랑스 인구의 8.8%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의 문제는 거의 모든 정치 및 언론의 담론을 차지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논의 밖으로 밀려나 있다.

프랑스에서 무슬림과 이민자 문제는 극우 진영이 아젠다로 내세우는 단골메뉴이며, 불행하게도 마크롱과 앞선 정치 지도자들은 이 함정에 빠져들었다. 만일 마크롱이 승리한다면 그가 영향을 미친 정책들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그의 정부는 프랑스 무슬림들을 길들여야 하는 사람들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무슬림과 소통하고, 차별에 맞서 싸우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라이시테’를 정치적 정체성의 도구로 무기화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일부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위협으로 치부하는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다.

프랑스는 무슬림이 자신의 조건에 따라 완전한 프랑스 시민이 되도록 허용해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표현할수 있도록 해야 하며,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분명한 프랑스인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번 주말 마크롱이 이기든 르 펜이 이기든 프랑스 유권자들의 발 아래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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