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구소련 몰락을 현장에서 직접 겪은 푸틴... '제국의 부활' 위험한 몽상을 하기까지
[우크라 줌인] 구소련 몰락을 현장에서 직접 겪은 푸틴... '제국의 부활' 위험한 몽상을 하기까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5.09 06:04
  • 수정 2022.05.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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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동베를린에서 KGB 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구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충격과 굴욕에 빠졌다. ‘히스토리 채널’은 8일(현지 시각) 이 같은 굴욕을 직접 목도한 푸틴이 러시아를 다시 패권 국가로 올려놓으려 한다고 평가했다. 물론 그의 '몽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위험한 시도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냉전을 거치면서 구소련은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두 축 중의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해체를 겪으며 구소련은 강대국 지위가 무너져내림을 깨달아야 했다.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런 격변의 시기에 KGB 요원으로 일했으며, 당시 그가 체험한 경험들은 그의 집권 초기 정책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구소련이 유지하던 강대국 지위와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어한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푸틴의 개인적 트라우마

구소련 체제 해체 후 러시아의 정치 변화는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에게는 잔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푸틴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구소련 붕괴 후 정치권의 주요 인물로 급부상하기는 했지만, 붕괴 과정에서 겪은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구동독 드레스덴 지역의 KGB 중령으로 복무하던 37세의 푸틴은 1989년 12월 베를린 장벽 붕괴 몇 주 뒤 분노한 독일 민중이 구동독 비밀경찰(Stasi) 본부로 밀려드는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동독 군중들은 비밀경찰 사무실을 습격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은밀한 공간인 KGB 본부에까지 접근하려 시도했다.

푸틴은 KGB 요원들과 기밀문서들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요청했지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대답은 “모스크바가 응답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그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자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향해, 안에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오면 발포하려고 대기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푸틴의 거짓말은 먹혀들었고, 군중들은 해산했으며, KGB의 기밀문서들을 지켜질 수 있었다.

푸틴은 역사상 가장 크고 강력한 제국 중 하나가 가장 굴욕적이고 서글픈 모습으로 무너져내리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0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국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인명 손상이나 물질적 상실보다는 강대국이 내부적으로 몰락한 데에 대한 국가적 굴욕을 더 슬퍼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나중에 유럽에서 소비에트 권력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한동안 느끼기는 했다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대신 들어서기를 바랐지만 그 무엇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구체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린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를 1등국가 반열에 다시 올려놓겠다" 역사를 소환한 푸틴

KGB 주변부의 중간간부급에 있던 푸틴은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에 오르고, 1996년에는 옐친 대통령 휘하에서 일하도록 크렘린의 부름을 받았다.

푸틴은 크렘린 궁에서 일하며 새로운 러시아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1998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세르비아를 폭격하겠다고 하자 옐친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격노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폭격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푸틴은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통치 스타일이 옐친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측근으로 러시아를 담당했던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이 1990년대 말 푸틴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푸틴의 스타일이 옐친이나 다른 러시아 관리들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직감하게 되었다.

탤벗은 자기 절제에 강하고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고 표현은 부드러운 푸틴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미래의 러시아 대통령은 대화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의도 하에 KGB 경력을 드러내며, 탤벗이 대학에서 배웠던 시인들의 이름을 열거했다고 한다. 그건 탤봇의 개인 파일에 대한 검토가 끝났음을 암시하기 위한 행위였다.

“위합적 수단을 동원에 무력화한 스파이로부터 정보를 빼내는 KGB 간부의 모습을 떠올리 수 있었다.”

탤봇은 회고록을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

1999년 말 대통령 취임을 며칠 앞 둔 푸틴은 러시아 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Nezavisimaya Gazeta)’에 자신의 임무와 관련된 글 하나를 게재했다.

“지난 200-300년 역사상 최초로 러시아는 2류 또는 3류 국가로 전락하게 될 진정한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가 ‘1등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러시아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푸틴은 역사를 동원했다. 러시아의 근세사는 모순과 고통과 유혈로 점철되었지만 푸틴은 러시아 국민은 자신들의 역사에 긍지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국민에게 지금도 가장 위대한 애국전쟁으로 남아있는, 2차 세계대전이 새로운 러시아의 국가적 신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러분을 통해서 러시아는 승리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푸틴은 2000년 취임 이틀 뒤 대통령이 되어 처음 맞는 승전일에 퇴역 군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그 뒤로도 전쟁 승리 수사(修辭)는 해마다 듣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쟁 기간 동안 2백만의 시민들이 강제 이주 당했다거나 스탈린 시대의 공포 통치와 같은 구소련의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금기시되게 되었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에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터프가이' 이미지에 광을 낸 푸틴

푸틴의 개인적 이미지는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의 수사에 어울리도록 진화했다. 그는 조용하고 진지하면서도 강한 화법을 구사하며, 러시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크렘린의 홍보담당자들은 푸틴의 남자다운 마초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어색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푸틴의 사진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경주용 자동차나 제트기를 직접 몰기도 하고, 웃통을 벗어제낀 채 말을 타고, 경비행기를 타고 학과 함께 하늘을 날기도 하는 푸틴의 사진이 배포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푸틴이 지구 궤도를 돌기 위해 직접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것만은 너무 위험해서 크렘린의 보안 담당관들이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이처럼 푸틴의 만들어진 이미지가 수퍼히어로에 접근하자 그의 통치 스타일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싼 의사결정권자들이 위축되면서 보안 관련 근무 경력이 있는 인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푸틴은 충성심을 가장 높이 샀으며, 그의 주변은 과거 KGB 시절부터 잘 알던 사람들이나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친했던 인사들로 들끓게 되었다.

새롭게 구축된 푸틴의 측근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히 꺼려서, 크렘린의 내부와 관련해 믿을만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가 없도록 했다. 여기에다 푸틴 자신은 은둔형 지도자로 인터넷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크렘린 측근들이 직접 손으로 건네주는 붉은 파일 속에 든 정보만을 읽는다.

푸틴은 개인적으로 인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가꾸어나가면서 ‘진짜 러시아 국민’과는 접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짜여진 각본 하에서의 만남 정도일 뿐이다.

심지어 푸틴의 전처(前妻)인 루드밀라조차 2005년 드물게 성사된 러시아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편의 과묵하고 권위적인 가부장적 이미지를 얼핏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는 푸틴이 일을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온 날이면 일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질문도 허락하지 않았고, 취침 전에 커피어(우유를 발효시킨 음료)를 마시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루드밀라는 또 남편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칭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요리를 포기했다는 말도 했다.

“그는 함께 사는 내내 나를 시험했습니다. 나는 늘 그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부는 2013년 이혼했다.

20년 이상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푸틴은 자신과 새로운 국가 러시아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2차 세계대전을 활용하던 푸틴의 수사는 또 다른 역사적 승리를 상징하는 인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는 10세기 키예프공국(Kievan Rus)의 설립자 프린스 블라디미르(Prince Vladimir)로 시작해서 현재 크렘린궁의 권좌에 앉아있는 블라디미르로 끝나는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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