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보트 안에서 꼼짝 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로힝야 난민의 해상 표류기
[월드 프리즘] “보트 안에서 꼼짝 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로힝야 난민의 해상 표류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1.07 07:01
  • 수정 2023.01.07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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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해상에서 표류하던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탄 보트가 구사일생으로 한 달 만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얀마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가장 박해받는 집단에 속한다.

2017년 이후 9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버마군의 집단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뒤에도, 많은 로힝야족은 여전히 방글라데시 남부의 난민촌 탈출을 위해 위험한 항해를 무릅쓴다.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이 이처럼 위험한 항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몬순이 지나간 이맘때면 그 빈도는 더 늘어난다.

지난 두 달 동안에는 최소 5척의 배가 떠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엔난민기구(UNHCR)는 또 다른 배에 타고 있던 180명의 난민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CNN방송은 6일(현지 시각)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보트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모녀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하테몬 네사는 인도네시아 최북단 아체 주 보호소에서 5살 난 딸 움메 살리마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식량과 식수가 거의 바닥난 상태로 수 주일 동안을 바다에서 표류한 뒤 이곳에 도착한 모녀의 얼굴은 수척하고, 눈길에는 그늘이 서려 있었다.

“내 피부가 썩고 뼈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네사는 이렇게 말했다. 

“배 안에서 꼭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네사의 눈물에는 방글라데시에 남겨두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7살 난 딸 움메 하비바에 대한 안타까움도 들어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막내를 말레이시아로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불법 수송업자들이 요구한 1,000달러 이상을 낼 돈이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딸 하비바를 데려올 수 없던 것이다.

“하비바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네사와 딸 움메 살리마는 콕스 바자르(Cox's Bazar)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약 200명의 로힝야족 중 하나였다. 모녀는 지난해 11월 말 미얀마군의 대량 학살 위협을 피해 탈출해서 약 백만 명의 난민들로 붐비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시의 난민 수용소에 자리를 잡았었다. 이후 네사는 배를 타고라도 보다 좋은 여건을 찾아 콕스 바자르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피소를 벗어난 직후에 보트의 엔진이 꺼지면서 애초에 기대했던 7일간의 여정이 한 달간의 해상에서의 시련으로 바뀌어버렸다. 약 200명의 난민들은 지붕 없는 목선에서 대기에 그대로 노출된 채 단 3일분의 식량과 빗물만으로 버텨야 했다.

네사는 굶주린 남자들이 필사적으로 식량을 찾아 배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결코 돌아오지 못했다고 들려주었다. 그녀는 또 짠 바닷물을 마신 아기가 죽는 것도 목격했다고 한다.

절망적 상황이 몇 주가 지나면서 난민들의 가족과 구호기관들이 여러 국가 정부에 이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무시되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어부와 아체 지방 당국이 이 보트를 구조했다. 배에 탔던 200여 명 중 174명만이 살아남았다. 약 26명이 배에서 사망했거나 바다에서 실종되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난민기구의 아시아 대변인 바바르 발로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잠잠했던 탈출 난민의 숫자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콕스 바자르를 탈출하기 위해 약 2,500명이 위태로운 배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를 결행했고, 그 중 400명이 사망함으로써 로힝야족에게 2022년은 10년 만에 최악의 해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식의 탈출은 한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이 목숨을 잃게 되는, 말 그대로 죽음의 덫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우리는 굶주리며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네사 모녀의 여정은 지난해 11월 25일 콕스 바자르의 붐비는 난민캠프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그곳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네사는 이번 여정을 위해 약 2kg의 쌀을 준비했는데, 보트가 항구를 떠난 직후 엔진이 꺼지고 표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먹을 것도 없이 굶주린 우리는 근처에 어선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을 훔쳤다.

“우리는 수영으로 그 배 가까이 가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12월 한 달 내내 보트는 벵골만에서 정처 없이 표류했고, 유엔난민기구는 이 보트가 인도와 스리랑카 근처에서 목격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표류 난민을 도와달라는 간청을 “계속해서 무시” 했다고, 이 기구는 말했다.

CNN은 이 문제와 관련한 논평을 듣기 위해 인도와 스리랑카 해군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지난달 스리랑카 해군은 성명을 통해 방글라데시를 탈출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104명의 로힝야족이 탄 다른 배를 구조하기 위해 선원들이 “힘든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12월 18일, 콕스 바자르에 남아 있는 네사의 오빠 무함마드 레주완 칸은 네사가 탄 보트에 있던 난민 중 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클립을 CNN에 제공했다.

오디오 속의 남자는 위성전화를 통해 “우리는 여기서 죽어가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8일에서 1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네사는 보트의 선장과 다른 승무원이 음식을 찾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물고기 밥이 된 것 같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또, 다른 12명의 남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배에 딸린 긴 밧줄을 잡고 물에 들어갔지만,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다시 잡아당기려고 하자 밧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들은 배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모든 국가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해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를 지고 있지만, 언제나 신속한 조치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유엔난민기구의 발로치에 따르면 특히 로힝야 난민이 관련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수백 명은 물론이고 곤경에 처한 단 한 생명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책무가 있다는 데에 동의할 것입니다.”

발로치는 이렇게 역설했다.

“인접 국가들은 절박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이 지역의 모든 국가가 공동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목선을 타고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에 온 로힝야족 [사진 = 연합뉴스]
목선을 타고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에 온 로힝야족 [사진 = 연합뉴스]

불확실한 미래

네사 모녀는 지난 12월 말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발을 내디뎠다. 모녀는 기력을 상실한 174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동영상에 등장한다.

그래도 그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유엔난민기구는 또 다른 배에 탔던 180명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들이 지난 12월 초 배에 올랐다가 표류 중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 뒤 모두 실종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네사가 탄 보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 몇 주, 몇 달 내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유엔난민협약(UN Refugee Convention)의 당사국이 아니며 국가 차원에서 난민 보호 체계가 구비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유엔난민기구는 난민으로 확인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제3국으로의 재정착 또는 자발적 본국 귀환을 포함한 다양한 해결책 중 하나를 모색중이다.

이는 자신들의 고국에서 수십년간 자행된 조직적 차별과 광범위한 야만 행위 및 성폭행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뒤 과밀하고 비위생적이며 안전하지 않은 난민 캠프에서 수년을 보냈던 이번 탈주 난민들에게 새로운 장이 열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국적도 없이 박해받고 있는 이들 로힝야 난민들은 거의 평화가 뭔지를 알지 못합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아시아 대변인 발로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상상할 불허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사는 언젠가는 방글라데시에 남겨진 다른 딸과 재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알라께서 나에게 새 삶을 주었어요. …… 우리 아이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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