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어산지와 아논 밀천을 통해 보는 미 사법 시스템의 모순
[WIKI 프리즘] 어산지와 아논 밀천을 통해 보는 미 사법 시스템의 모순
  • 최정미 기자
  • 승인 2023.07.01 06:46
  • 수정 2023.07.0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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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노든, 어산지, 매닝의 동상. [사진=가디언]
왼쪽부터 스노든, 어산지, 매닝의 동상. [사진=가디언]

지난 주말 영국에서는 미국의 편파적인 사법 시스템을 비판한다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영국 최악의 교도소 런던 벨마시의 독방에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수감된지 5년에 접어들었다.

그의 방에 있는 것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와 철제 침대, 철제 변기가 전부이다. 어산지는 이 안에서 4년 넘게 지내면서 미국으로의 송환에 맞서 법적 투쟁을 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서의 미국 정부의 범죄를 폭로한 그를 미국은 방첩법 하에 기소했고 영국에 송환 요청을 한 것이다.

지난 토요일 어산지의 석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런던 의회 광장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어산지의 아내 스텔라 어산지는 집회 연설에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줄리안이 송환되기까지 몇 주밖에 안 남았을 수 있다.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라고 말했다.

집회 장소에는 실물 크기의 어산지 동상이 미국 정부의 범죄를 내부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과 첼시 매닝의 동상과 나란히 서있었다. 동상들은 각각 의자 위에 올려져 있었고, 앞에는 ”줄리안 어산지를 석방하라. 저널리즘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동상 바로 옆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어 일반인이 동상 옆 빈 의자에 함께 올라서 지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놨다.

같은 날 어산지와 정반대의 운명을 맞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매체 더 네이션이 실었다.

어산지 석방 집회가 열린 같은 주말, 영국 해안 휴양도시 브라이턴에서 남쪽으로 8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고급 호텔 올드쉽에 아논 밀천이 등장했다.

그는 미국에서 수 년 동안 스파이 모집 및 첩보 활동을 했으며, 핵폭탄 기폭장치인 크라이트론을 밀반출한 것을 인정하다 못해 자랑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기소되거나 FBI의 조사를 받지도 않았다. 

억만장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부유한 해안도시 말리부에 살고 있던 밀천은 어산지와 달리 많은 고위급 권력자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

그는 영국 고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오랜 친구들 중 한 명인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됐다.

검찰에 따르면, 미국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네타냐후에게 수십만 달러 상당의 선물들을 제공했다는 밀천의 증언은 현직 총리인 네타냐후를 수 년의 실형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밀천은 20대에 핵 정보를 빼는 스파이 요원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밀천의 임무는 이스라엘의 가까운 동맹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은밀하게 무기를 거래하는 것이었다. 수 년 동안 밀천이 제공한 많은 무기들은 당시 백인우월주의에 지독한 인종차별을 자행한 남아공 정부가 흑인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데 사용됐다.

남아공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중요한 원료인 삼중수소를 전달하는 일에도 밀천이 참여했다.

후에 밀천은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세계에 선전하려는 남아공 정부의 은밀한 노력을 위한 핵심 활동원이 됐다.

이 때문에 그는 할리우드 제작자가 됐고, 미국 연예 산업을 통해 친 아파르트헤이트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려고 했다. 그의 초창기 작품 중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피 톰비(Ipi Tombi)’는 공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고 시위를 촉발시켰다. 이들은 ‘남아공의 흑인 착취’와 ‘현 남아공 정부에 대한 미국의 협력과 지원’을 비판했다. 당시 제작사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밀천은 재빠르게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로 입지를 세웠다. 이는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의 핵심 핵 스파이가 되기 위한 완벽한 위장이었다.

밀천은 초특급 할리우드 스타들을 기용한 걸작들을 제작하는 한편, 은밀하게 ‘밀코(Milco)’라는 회사를 세워 함께 스파이 공모자인 미국인 리처드 켈리 스미스가 운영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이 회사를 군사 및 핵무기 관련 제품들을 이스라엘로 전달하는 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들은 핵 기폭장치 크라이트론 무려 천 개를 이스라엘로 빼돌리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작전은 FBI에 발각되고 스미스는 체포됐다. 105년의 실형을 받게 된 그는 미국을 탈출에 스페인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당시 주미 이스라엘 대사 대행이었던 네타냐후의 고위급 연줄과 이를 이용한 레이건 행정부와의 거래로 밀천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16년 뒤인 2001년, 도피 생활을 하던 스미스는 결국 체포됐고 미국으로 송환됐다. 그는 FBI에 밀천의 역할 등 모든 것을 자백했다. 게다가 FBI가 처음 이들의 회사를 수색해서 압수한 유죄 입증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밀천은 체포되지 않았다. 친 이스라엘 로비 집단의 분노를 사고 이것이 대통령 선거에 타격을 주는 정치적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밀천은 그의 파트너 스미스가 감옥에서 생을 보내는 동안 10년 비자 갱신을 하며 호화로운 말리부 생활과 함께 영화 제작을 이어갔다.

남아공 무기 공급 및 인종주의 선전의 핵심 활동자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밀천은 할리우드에서의 지위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영화 중 두 개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는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노예: 12년’이다. 그 밖에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과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스파이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등 그는 수많은 흥행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누가 그의 스파이 활동 의혹에 대해 질문하면 어물쩡 넘어갔다.

2013년 그는 마침내 자신의 활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내세웠다. 이스라엘 지역 TV 방송에서였는데, 그가 이 방송이 이스라엘 밖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고 더 네이션은 말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묘사했다.

당시 방송 진행자 일라나 다얀은 미국과 이스라엘 및 밀천의 전용기에서 밀천을 인터뷰했던 모세 다얀의 친인척이었다. 일라나는 후에 밀천이 스파이였으며, 남아공에서 무기 거래 및 인종주의 선전의 활동가였다는 것, 미국에서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놀랐다며, “돌이켜보면,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 증거가 명확하다. 돌연 ‘내가 이스라엘을 위해 했다’라고 터져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라나는 밀천과 가까우면서 그의 여러 작품에도 출연한 배우 로버트 드 니로도 인터뷰했는데, 드 니로는, 수 년 전 밀천이 그의 첩보 활동과 크라이트론 밀반출에 대해 자신에게 말했지만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드 니로에게 밀천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며, 조국을 위해 이런 일들을 한 것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밀천의 이스라엘 지역 방송 인터뷰는 미 국무부의 주목을 받게 됐고, 그의 10년 비자는 최소됐다. FBI도 다시 그에게 눈을 돌렸다. 

당황해진 밀천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네타냐후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인 존 케리에게 전화를 최소 3번 걸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나타냐후의 특사 아이작 몰호는 미 국무부에 전화로 이스라엘 총리가 국무장관 케리와 급하게 이야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몇 시간 뒤 네타냐후와 케리가 연결됐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밀접하게 협의하고 있던 몰호의 긴급 통화 요청을 받은 케리는 네타냐후가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최우선 의제인 그 지역 평화 협상을 위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긴급 통화라는 것이 밀천의 비자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케리는 이런 문제로 신경 쓸 수 없었지만, 네타냐후는 거칠게 자신의 사적 중재를 요청했다.

밀천의 이스라엘 비서 하다스 클레인은 “어느 날 해외 전화를 받았는데, 존 케리가 내게 직접 전화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밀턴은 말리부에 있었지만, 곧 클레인이 두 사람을 전화로 연결시켰다. 케리가 밀천에게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고, 둘은 이내 가까워졌다고 한다. 케리가 비자 문제는 국토안보부의 소관이라고 했지만, 결국 밀천은 비자 연장을 받았다.

밀천은 미국에서 방첩법에 의한 기소 및 체포 영장이 아닌 미 국무장관과 개인 면담을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비자 연장과 함께 또 다른 권력가 친구 케리를 얻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도움의 대가가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밀천은 알고 있었고, 따라서 고가의 선물들로 보답했다.

그런데 FBI도 찾아가지 않은 밀천을 이스라엘 경찰이 잡았다. 밀천은 뇌물죄 기소를 피하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증언을 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이 때문에 그가 지난 주말 영국의 올드쉽 호텔에 간 것이다. 

FBI와 이스라엘 경찰 양쪽에서 체포될 위기에 처한 밀천은 말리부에서 영국의 서섹스로 이사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로 가기에는 몸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서섹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브라이턴의 올드쉽 호텔 컨퍼런스룸에서 그가 이스라엘 법정 앞에 실시간 화상 증언을 하도록 준비했다. 그의 증언 과정은 앞으로 2주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더 네이션은, 정의로운 세상이었다면 밀천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송환돼 어두운 미국의 감방에 들어가게 되고, 어산지는 영국 교도소에서 석방돼 브라이턴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우리는 억만장자 인종주의자 스파이가 막강한 권력자 친구들을 이용해 미 정부와 할리우드에서 권세를 누리고, 어산지 같은 용감한 공익고발자이자 언론인인 감옥에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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