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유명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살던 집을 구경 갔다가 하마터면 진짜 추리소설 주인공 신세가 될 뻔했다고, 18일(현지 시각) CNN방송이 보도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무수한 추리소설 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일단의 관광객들이 지난 15일 영국 남서부 시골 마을에 있는 작가의 옛집 ‘그린웨이(Greenway)’를 구경갔다가 폭풍으로 쓰러진 거목이 도로를 막는 바람에 몇 시간 동안이나 그 집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그린웨이’를 방문 중이던 관광객 캐롤라인 헤븐은 지역 뉴스 매체인 ‘데본 라이브(Devon Live)’에 약 100명의 관광객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전 별장에 갇혀 있다고 알렸다.
유적지를 관리하는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는 이 소식을 재빨리 웹사이트에 게재하고, ‘그린웨이’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에 큰 나무가 쓰러져 있다고 발표했다.
‘내셔널 트러스트’ 대변인은 “관광객과 여행사 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여전히 ‘그린웨이’를 떠날 수 없는 형편에 처했다”면서 발이 묶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시적으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관광객들은 작가의 옛집에서 차를 마시고 잔디밭에서 크로켓 놀이를 하며 나름 활기차게 보냈다고, 헤븐은 ‘데본 라이브’에 밝혔다.
헤븐은 관광객을 돌보는 여행사 직원들의 노고를 칭찬했다.
“그들은 훌륭히 대처하면서 우리에게 무료로 차 등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좀 우울하기는 합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따르면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린웨이’ 잔디밭에서 시계 골프(clock golf)나 크로켓을 하고, 손님들에게 그녀의 최신작 미스터리 소설의 일부를 읽어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또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죽은 자의 어리석음(Dead Man's Folly)』에서 범죄 현장으로 등장한 이 집의 정원 벽과 유명한 보트 하우스를 둘러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식이 알려지자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셜 미디어 상의 호사가들은 이 사건과 아가사 크리스티를 상징하는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의 유사성을 거론하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데본 해안가 외딴 저택에 특별한 이유 없이 초대된 10명의 낯선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일행이 하나둘씩 불가사의하게 살해되자 그들은 곧 그들 사이에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소셜 미디어 사용자는 크리스티 별장에 좌초된 100여 명을 암시하듯 트윗에 “99, 98, 97, 96, 94, 93.”이라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데본 라이브’의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갇힌 관광객들에게 “(불행을 피하기 위해) 지금 즉시 함께 행동할 짝을 지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 관광객들은 크리스티 소설 속 캐릭터들보다 덜 소름 끼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고, 지역 구조반이 도로를 다시 개통한 후 금요일 저녁에는 이 집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크리스티 소설 속의 미스터리한 살인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내셔널 트러스트’ 측이 ‘그린웨이’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상 악화 때문에 ‘그린웨이’가 한동안 폐쇄될 것이라고 공고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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