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leaks 정전70주년] 제2의 6.25였던 ’DMZ War(1966~99)‘ 잊지 말아야
[Wikileaks 정전70주년] 제2의 6.25였던 ’DMZ War(1966~99)‘ 잊지 말아야
  • 허찬영 기자
  • 승인 2023.07.28 19:22
  • 수정 2023.07.30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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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5일부터 69년 12월 3일까지 1128일간 북한과의 치열한 전투
미국, 공식명칭으로 제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 War), DMZ War 호칭
한국이 월남을 파병한 시기, 1.21 청와대 습격, 울진삼척 무장공비 등 일련의 사건
3년 동안 미군 75명, 한국군 299명 전사, 북한군 397명 사망, 공비 2462명이 체포
“DMZ War는 국가 보상적 관점에서만 볼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
“6.25 전쟁은 이승만이 막고, DMZ War 박정희가 막아 오늘의 한국을 만든 전쟁”
CIA 내에 특수연구부 스페셜팀이 2008년 11월 26일 만든 극비문서인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 모험주의’이라는 보고서 [출처=CIA 보고서]
미 CIA 내에 특수연구부 스페셜팀이 2008년 11월 26일 만든 극비문서인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 모험주의’이라는 보고서 [출처=CIA]

20237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부산에 있는 유엔군 위령탑을 참배하고,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도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CIA 극비문서와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베트남 전쟁과 미 합참: 1960~1968’이란 문서에서 1966~69년을 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 War)’이라고 규정한 것을 조명하려 한다. 일명 콰이어트 워 (Quiet War), DMZ War라고 불리는 등 이 3년간의 전쟁은, 1.21 청와대 습격,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기간이다. 우리나라가 월남전을 파병한 시기에 북한이 대한민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벌인 이 전쟁에서 미군 75, 한국군 299명이 전사했다. 또 북한군은 무장공비 397명이 사망, 33명이 귀순했으며, 북한 정규군 12명과 무장공비 2462명이 체포됐다. [편집자 주]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특수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시킨때 체포된 북한 특수요원 김신조 [출처=위키백과]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특수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시킨때 체포된 북한 특수요원 김신조 [출처=위키백과]

휴전은 했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

1950년 발생한 3년간의 6.25전쟁은 한국군(경찰포함) 62만 여명과 유엔군 15만 여명 등 77만 여명이 전사·부상·실종되었고, 민간인은 사상자만 99만명, 이재민은 1000만 여명이 넘는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휴전은 전면적인 포격을 잠시 멈춘 것이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고강도의 포격은 멈췄으나, 저강도 국지전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한국입장에선 미수복 지역을 점령한 괴뢰집단 수괴 김일성이가 남한의 적화통일을 위해 다양한 공격을 해오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은 월남전으로 파병 나가 있었고, 경제발전이 막 일어나던 시기였다.

북한입장에선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군사무기에서 재래식 무기로는 더 이상 손쓸 겨를 없이 모든 게 추월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음이 급해진 김일성은 한국이 월남에 파병나간 사이 추가 파병을 막고, 남한 내에 빨치산 전투를 통해 거점 확보를 하고,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나면, 적화통일의 마지막 기회가 생길수 있다고 봤다. 

또한 김일성은 한국사회 전체를 흔들어도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이 한반도에 더 이상 확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과 한국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베트남 반전여론과 한미 간에 틈을 만들어 갈라지게 할수 있다는 것을 노렸다.

CIA 극비문서인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 모험주의’이라는 보고서 31쪽을 나와있는 66년 10월 5일 제2차 노동자 대표회의에 관한 기록, 당시의 모든 DMZ 전쟁은 여기서 출발했다고 되어있다. [출처=CIA]
미 CIA 극비문서인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 모험주의’이라는 보고서 31쪽에 나와있는 66년 10월 5일 제2차 노동자 대표회의에 관한 기록. CIA는 당시의 모든 DMZ 전쟁은 여기서 출발 했다고 보고있다. [출처=CIA]

2차 한국전쟁 (1966~69), DMZ War

CIA 내에 특수연구부 스페셜팀이 20081126일 만든 극비문서인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 모험주의이라는 보고서 31쪽을 보면 김일성은 66105일 제2차 노동당 대표자회의 때부터 제 2한국전쟁을 준비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김일성은 조선혁명의 전국적 승리는 남조선(한국)에서의 혁명 력량(역량)의 강화 여하에 크게 달려 있다. 남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투쟁 형태와 방법을 옳게 배합하여 혁명운동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 김일성의 66105일 발언 이후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부대를 포함해 무장공비들이 DMZ와 동서해를 통해, 동시 다발적인 게릴라 침투가 향후 3년간 지속하게 벌어졌다.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있다 나포된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출처=위키백과]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있다 나포된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출처=위키미디어]

이 기간에 1968년 김신조 공비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격인 121 사태와 미군 푸에블로호 납치,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1969년 미군 정찰기 EC-121 격추사건 등 그 외 셀 수 없을 정도의 도발이 DMZ를 두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특히 1968121일 북한의 무장공비(124부대) 31명이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한 사건과 19681030일부터 11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역에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한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더구나 1.21 사건 때 붙잡힌 김신조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침투 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말해 온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또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때는 무장공비들이 대검 등으로 아무 죄없는 일반 주민 16(이승복 어린이 포함)을 잔인하게 살해한 만행이 들어나자 전국적인 반공 분위기가 극에 이르렀다.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역에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한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진은 사살된 무장공비들 [출처=위키백과]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역에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한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진은 사살된 무장공비들 [출처=위키백과]

미군도 19681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있던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되어, 당시 승무원 83명 가운데 1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82명은 11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됐다. 1969415, 미국 해군 소속 정찰기인 EC-121M 워닝스타가 동해에서 북한의 미그기에 격추 당해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외에도 1968919일 새벽 경기도 연천시 일대 임진강 갈대밭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5명을 격퇴한 사건 등 DMZ를 두고 3년간 끊임없는 전투가 계속 일어났다. 3년간의 DMZ 전쟁 기간 미군 75, 한국군 299명이 전사했고, 북한군 무장공비 397명이 사망했다. 또 무장공비 33명이 귀순했고, 북한 정규군 12명과 무장공비 2462명이 체포됐다.

결국 3년간의 DMZ 전쟁은 196910월 휴전선 근처에서 북한지역으로 불시착한 미군 헬기 탑승자 3명이 2달 이후인 123일 석방되면서, 자연스럽게 70년대로 넘어와 키신저의 중국 방문 등 미중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끝이 나게 됐다.

1969년 4월 15일, 미국 해군 소속 정찰기인 EC-121M 워닝스타가 동해에서 북한의 미그기에 격추당해 승무원 31명 전원 사망했다. 사진은 격추된 EC-121M [출처=위키백과]
1969년 4월 15일, 미국 해군 소속 정찰기인 EC-121M 워닝스타가 동해에서 북한의 미그기에 격추당해 승무원 31명 전원 사망했다. 사진은 격추된 EC-121M [출처=위키미디어]

2차 한국전쟁(DMZ War)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 때

3년간의 DMZ전쟁의 경우, 미국에서는 이미 제2차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미 국방부 산하 합동참모본부의 베트남 전쟁과 미 합참: 1960~1968’이란 보고서에서 1966~69년을 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 War)라고 지칭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서부전선 방어를 맡았던 미 제2보병사단(2사단) 정보장교 출신으로 당시 전투에도 직접 참가한 볼거 다니엘(Bolger, Daniel. 현재 로스캐롤라이나 대학 역사학 교수) 소령은 당시 유엔사와 안보리에 수시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또 그는 19911119일 펜실베니아 지휘참모대학에서 이 당시 상황을 담은 논문을 내면서 제2의 한국전쟁이라는 표현하며 전투의 처절함을 강조했다.

볼거 다니엘 로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가 1991년 11월 19일 펜실베니아 지휘참모대학에서 이 당시 상황을 담은 논문 [출처=위키미디어]
볼거 다니엘 로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가 1991년 11월 19일 펜실베니아 지휘참모대학 재학시 출간한 DMZ War 당시 상황을 담은 논문 [출처=위키미디어]

현재 한국의 정부나 국방부에서는 이 구간에 전쟁(War)을 붙이는 것에 좀 유보적이다. 왜냐하면 이건 보훈 문제가 연관 되어 있고, 막대한 전쟁 보상금 등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술적인 표현과 법률적인 표현을 구분하면 제2의 한국전쟁 내지 DMZ War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DMZ전쟁기간 북한의 무장공비에 맞서 싸웠던 주한미군 소속 카투사정예부대 '임진스카웃' 활약상을 책으로 낸 '임진스카웃' 저자 문관현 박사(연합뉴스 K컬처기획단 부단장)당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의 평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국가 보상적 관점에서만 볼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튜브 이정훈TV' 채널을 운영하는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기자)는 “6.25 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이 막았고, 26.25DMZ War는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척점에서 싸워 이긴 전쟁이다고 강조하고 박 대통령은 이 3년간에 북한과의 치열한 게릴라 전쟁을 막음으로써 지금의 경제발전과 방위산업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위키리크스한국=허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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