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기록적 폭염에도 미국이 공공 수영장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
[월드 프리즘] 기록적 폭염에도 미국이 공공 수영장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8.05 07:03
  • 수정 2023.08.0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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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루이빌시의 알곤퀸 공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수영객들. 이 수영장은 금년에는 폐쇄되었다. [사진 = CNN]
지난해 여름 루이빌시의 알곤퀸 공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수영객들. 이 수영장은 금년에는 폐쇄되었다. [사진 = CNN]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자란 제롬 수턴(66)은 여름이면 주말에 알곤퀸 공원(Algonquin Park) 수영장에서 수영할 생각으로 꿈에 부풀어 보내곤 했다.

“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았습니다.”

현재는 지역에서 목사로 재직 중인 수턴은 이렇게 회상했다.

“일주일 중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루이빌의 공원들은 수턴이 태어나기 1년 전인 1955년에 흑백 분리 정책을 철폐했고, 그 안에는 서쪽에 새롭게 지어진 알곤퀸 야외 공공 수영장도 포함되었다.

당시 알곤퀸 수영장 입장료는 35센트였다고 수턴을 말했다. 그래서 여덟 형제가 동시에 수영장을 갈 형편이 못 되었던 그의 가족은 주말을 번갈아가며 수영장에 다녔다고 한다.

“우리는 공공 수영장에 다녔고, 그 행위 자체가 흑백 분리 철폐의 상징처럼 작용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흑인 아이들이 활동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CNN방송은 4일(현지 시각) 지난 세기 동안 미국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공공 수영장의 건설이, 기후변화와 극심한 폭염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절심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 기상청에 따르면 그 어떤 날씨 관련 재난보다 폭염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 수영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 때에 공공 수영장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집에 개인 수영장이 없거나 컨트리클럽 회원권이 없거나 지역 YMCA에 출입할 여유가 없는 미국인들이 수영장을 이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흑백 분리 정책의 유산과 개인 수영장 건설 붐 및 공공 여가 예산 절벽으로 인해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공공장소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공공 수영장이 문을 닫는다면 우리는 수영할 곳이 없습니다.”

수턴은 이렇게 주장했다.

정신건강에 유익한 수영

2000년대 초반 약 55만 명이 거주하는 루이빌에는 10개의 공공 수영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구가 64만 명으로 늘어난 이 도시에는 공공 수영장이 5개로 줄면서 공공 수영장 확보 순위가 미국 100대 도시 중 89위를 차지했다고, 공원 및 대중 활동 공간 확보 옹호 단체인 ‘공공 토지에 대한 신뢰(Trust for Public Land)’는 밝히고 있다.

알곤퀸 수영장은 서루이빌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공공 수영장이며, 주민들은 시 당국이 공공 수영장의 유지 관리에 소홀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여름, 루이빌의 기온이 섭씨 32.2도까지 오르는데도 알곤퀸 수영장이 수리를 위해 문을 닫자 약 6만 명의 주민들(대부분이 흑인 및 중산층 가구)이 수영장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이처럼 공공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수영을 즐기고, 수영을 배우고, 인명구조요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회가 막히고 있다. 또, 어린이들과 십대들은 여름방학 동안 중요한 놀이 공간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고, 노년층은 여름 동안 알곤퀸 수영장에서 개최하던 아쿠아 줌바(Aqua Zumba) 피트니스 수업에 참여해 건강을 가꿀 수 없게 되었다.

“수영은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치료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움직여야 합니다. 수영의 중요성은 수영장 자체보다 훨씬 큽니다.”

루이빌 시의회 의원 타미 호킨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올 여름 더위에 지친 야생곰이 미국의 한 가정집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사진 =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 경찰 제공, 연합뉴스]
올 여름 더위에 지친 야생곰이 미국의 한 가정집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사진 =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 경찰 제공, 연합뉴스]

수영장 접근의 양극화

수영장에 대한 접근권은 오랫동안 미국을 뜨겁게 달군 논란거리 중 하나이다.

20세기 초반에는 거대한 시립 수영장들이 건립되었고, 공공 수영장 출입의 흑백 분리 정책 철폐는 민권 운동의 핵심 목표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많은 지방 정부가 공공 수영장 건립을 소홀히 했다.

“우리는 많은 여름 여가 할동들이 안전하지 않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대학의 역사학자이자 『그곳은 원래 우리 땅이었다 : 남부 흑인 해변이 백인들의 차지가 된 역사(The Land Was Ours : How Black Beaches Became White Wealth in the Coastal South)』의 저자인 앤드류 칼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공공 방정식이 이런 식으로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해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전미 여가활동 및 공원 연맹’에 따르면 2015년에는 미국인 3만4,000명당 1개이던 공공 수영장이 현재는 3만8,000명당 1개로 줄었다고 한다.

정부의 공공 수영장 확보 정책 후퇴와 수영장 및 여가활동 시설의 민영화 붐은 빈곤층과 소수 계층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고, 역사가들과 공공 레크리에이션 전문가들은 말한다.

몬태나 대학의 역사학자 제프 윌츠 교수는 『수영장 투쟁 : 미국 수영장의 사회적 역사(Contested Waters: A Social History of Swimming Pools in America)』라는 책을 내고 “가난한 노동계급 미국인들이 수영장의 민영화로 가장 직접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가구소득이 5만 달러 미만인 가정의 어린이 중 79%가 수영 능력이 없거나 낮다. 흑인 어린이의 64%, 히스패닉 어린이의 45%, 백인 어린이의 40%가 수영 능력이 없거나 낮은 것으로 연구에서 드러났다.

미국이 수영장을 한창 건립하던 시절

오늘날은 미국에서 공공 수영장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20세기만 해도 미국 정부는 큰 규모의 공공 수영장을 많이 건립했다.

뉴딜정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공 수영장 건립 붐으로 이어졌다. 연방 정부는 1933년에서 1938년 사이에 거의 750개의 수영장을 짓고, 수백 개를 추가로 리모델링했다.

뉴욕의 공원 건립 국장이었던 로버트 모우지스는 연방 ‘공공사업 진흥국(Work Project Administration)’의 자금 지원을 받아 11개의 수영장을 건립했고,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최대 규모인 플리쉬해커(Fleishhacker) 수영장을 열었다.

미국인의 여가활동에 대한 1933년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만큼이나 자주 수영장을 찾았다.

제프 윌츠 교수는 “수영장은 여가와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상징이 되었다.”라고 썼다.

인종 폭력과 공공 수영장

19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북부 지역의 수영장들은 남녀를 분리해서 받아들였지만,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남녀 구별이 없어지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뉴욕주립대 버펄로캠퍼스의 역사학자이자 『인종, 분규, 그리고 롤러코스터 : 미국 레크레이션에서의 흑백 차별 철폐 투쟁(Race, Riots, and Roller Coasters: The Struggle over Segregated Recreation in America)』의 저자인 빅토리아 월콧 교수에 따르면, 위생과 안전에 대한 인종적 편견은 물론 수영복을 입은 백인 여성과 접촉하는 흑인 남성에 대한 극심한 공포 때문에 미국에서 공공 수영장은 가장 흑백 차별이 심한 공공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1940년대 후반에는 세인트루이스와 볼티모어, 워싱턴 DC,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공 수영장에서 흑인과 백인을 함께 수용하는 문제를 놓고 백인들이 분규를 일으켰다고, 월콧 교수는 말했다. 또, 신시내티에서는 백인들이 수영장에 못과 유리를 집어 던졌고, 플로리다주 세인트 어거스틴의 수영장에서는 흑인 입장객들을 방해하기 위해 수영장 물에 염산을 붓는 일까지 벌어졌다.

1960년대 도시 무질서의 근본적인 원인을 연구하는 임무를 맡았던 ‘커너 위원회(Kerner Commission)’는 1967년 작성된 역사적인 보고서에서 수영장을 포함한 레크리에이션 시설의 부족이 흑인들 사이에 뿌리 깊은 불만의 원인이 되어 한여름 도시 불안을 부채질한다고 주장했다.

보스턴의 한 야외 공공 수영장의 모습 [사진 = ATI]
보스턴의 한 야외 공공 수영장의 모습 [사진 = ATI]

공공 수영장 정책의 포기

레크리에이션을 기본적인 인권의 한 요소로 간주한 시민단체들은 수영장 입장을 인권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1963년 버밍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펀타운(Funtown) 수영장이 유색인 어린이의 입장을 거부한다는 말을 듣고 내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고 묘사했다.

그런가 하면 수영장에서의 흑백 통합 운동의 성공은 개인 수영장과 민간 수영 클럽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수백만 명의 중산층 백인 가족이 도시를 떠나 교외에 정착하고 새집의 뒷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었다. 교외에 새롭게 이주한 백인 주민들은 대중 수영장을 짓기보다는 유료 컨트리클럽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 결과 1950년부터 1962년까지 2만2,000개의 개인 수영 클럽이 문을 열었는데, 대부분이 백인 거주 교외 지역에 위치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외의 커뮤니티와 ‘주택 소유자 협회’의 증가도 레크리에이션 시설의 민영화를 부채질했다. 각 마을들은 스스로 세금을 거둬 자체 서비스와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

“공공 수영장의 감소는 레크리에이션 시설의 민영화와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월콧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남부의 일부 지역은 수영장을 도로로 메워버리거나 물을 빼버림으로써 수영장의 흑백 통합에 반발했다. 그 결과 미시시피에서는 1972년이 되면 1961년에 개장한 공공 수영장 중 거의 절반이 문을 닫게 된다.

한편, 공공 수영장과 공원 건립에서 백인들이 빠지면서 수영장 건립에 필요한 세금과 자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시의 레크리에이션 예산이 80%나 삭감되기도 했다.

앤드류 칼 교수는, 1970년대 후반의 세금 파동 이후 공공 레크리에이션 시설에 대한 투자 철회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1978년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지역 재산세율을 인하하고, 주 정부가 공공 레크리에이션 시설 건립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드는 ‘발의안 13(Proposition 13)’을 통과시켰다.

도시가 수영장들의 문을 닫고 기존 수영장도 제대로 유지를 하지 않자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 수영 클럽이 그 빈자리를 파고들었고, 각 가정의 뒤뜰에 수영장이 급증했다.

수영장 산업 시장 조사 업체인 ‘PK Data’에 따르면 1972년에는 가정 수영장이 110만 개였는데 20년 후에는 380만 개로 늘었다.

예산 절벽

인명 구조요원의 부족과 공공 레크리에이션 부서에 할당된 자금 부족은 지역의 공공 수영장 건립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국립 휴양 및 공원 협회(National Recreation and Park Association)’의 연구·평가 및 기술 담당 부총재인 케빈 로스는 공원과 레크리에이션 담당 기관들은 예산이 빠듯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돈줄이 돌 때는 제일 늦게 혜택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예산 문제가 제일 심각합니다. 이는 새로운 문제도 아니고 금방 사라질 문제도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공 수영장은 시 당국이 유지 관리하는 데 돈이 많아 들어가는 시설이다.

시는 또한 수영장에 인명구조원을 배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인명구조요원으로 필요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는 여름이면 더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들이 많아져서, 그들이 공공 수영장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로스 총재는 주장했다.

공공 수영장의 축소는 사설 수영장이나 비영리 단체에 의해 완벽하게 대체될 수는 없다.

올 여름 서루이빌 주민들에게 수영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시 당국은 YMCA 및 놀이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여름 이용권에 1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 입장권은 제한된 수의 주민들에게만 제공되며, 많은 주민들은 YMCA나 놀이공원에 갈 교통편조차 없는 형편이다.

루이빌 시 당국은 알곤퀸과 다른 수영장들을 개조하기 위해 600만 달러를 할당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 주민들과 지도자들은 알곤퀸 수영장을 개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민들이 수영장에 쉽게 접근하고, 수영을 배워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시내의 화이트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아쿠아틱 센터(aquatics center)’와 같은 실내 수영장을 일년 내내 개방하기를 원한다.

서루이빌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알곤퀸 수영장을 다녔던 라샨드라 로건(35)은 “수상 안전 수업이 연중 내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그녀는 지역 비영리 단체인 ‘중앙 성인 수영학교’에서 수영을 배웠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의 87%가 흑인이고 85%가 여성이다.

“나는 물이 제일 무서웠는데, 수영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수영만 할 줄 알면 겁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인명구조원 교육 과정을 듣고 있으며, 지역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현재 루이빌에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수영을 배우고자 하는 성인 대기자가 2,500명이나 있다.

“인생을 바꾸는 경험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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