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봉숭아학당 같았던 美 공화당 첫 TV토론..."트럼프의 존재감만 과시" 평가
[월드 투데이] 봉숭아학당 같았던 美 공화당 첫 TV토론..."트럼프의 존재감만 과시" 평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8.27 07:02
  • 수정 2023.08.27 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 빠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들 [사진 = 연합뉴스]
트럼프 빠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들 [사진 = 연합뉴스]

'공화당 프라이머리(primary) 토론회, 트럼프 없이 대선주자 8명끼리만 입씨름을 벌였지만 트럼프의 존재감만 과시했다.' (가디언)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빠진 상태에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진행된 미국 공화당의 첫 대선 후보 토론회가 前 부통령부터 38세 기업가까지 8명의 다양한 배경의 후보들이 등장해 나름 치열한 토론을 벌였지만, 결코 트럼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고, 26일 (현지시간) 가디언이 풍자적으로 보도했다. 다음은 이 매체가 전하는 이 토론회의 총평이다.

폭스뉴스(Fox News) 주관 하에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 8명의 공화당 후보들은 이전투구를 연출하며 토론회의 승자가 자신들이 아니라 이날 토론회에는 참석하지도 않은 도널드 트럼프 前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임을 입증했다.

밀워키에서 무대에 오른 8명의 후보들은 각자의 존재감은 드러내지 못한 채 서로 물고 뜯기만 했다. 그들은 낙태, 교육, 이민, 기후위기 등의 이슈에서 공화당이 급격하게 우경화하면서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 마디로 <폭스뉴스>에 방송된 2시간짜리 민주당 선거 유세 광고 같았다.

공화당 후보들은 또한 여론조사에서 한참 앞서고 있는 트럼프가 前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의 사전 약속된 인터뷰 녹화 때문에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함으로써 그를 물고 늘어질 기회도 잡지 못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칼슨에게 “대선 출마의 깜냥도 안 되는 인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위해” 무대에 오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첫 번째 토론회의 모습은 그가 옳았음을 입증해주었다.

이번 토론회가 열리기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역시 집중포화의 대상이 될 것이고, 그가 자리를 비운다면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가 다른 후보들의 다음 표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이유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라는 사업가 출신 후보 때문이었다.

올해 38세로 정치 신예에 해당하는 라마스와미는 트럼프의 피뢰침 역할을 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흡수해버렸다. 디샌티스와 함께 무대 중앙을 차지한 그는 트럼프를 좋아하는, 거칠 것 없는 사업가이자 정치적 아웃사이더로서 말 폭탄을 구사하며 상대방 후보들을 괴롭히면서 토론이 격해질 때마다 중심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 후보가 트럼프를 짓밟기 위해 가미카제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뚜껑이 열리고 보니 그가 아니라 라마스와미가 트럼프의 수호천사로 가미카제가 될 수도 있음이 드러났다.

그는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채널을 돌려 MSNBC를 시청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마스와미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혐오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남성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리고 트럼프가 자신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겨서 자신이 죽을 뻔했다고 믿고 있는 크리스티는 “오늘 밤 이미 챗GPT(ChatGPT)처럼 어리숙하게 들리는 소리를 충분히 들었다”며 라마스와미를 버락 오바마와 “같은 유형의 아마추어”라고 깎아내렸다. 크리스티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AI 언어 모델인 챗GPT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바가 있다.

한편, 2021년 1월 6일 의회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과 마주쳐 봉변을 당한 뻔했던 마이크 펜스 前 부통령은 마침내 트럼프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내팽개치고 독설과 혐오감을 모두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화풀이 대상은 트럼프가 아니라 라마스와미였다.

미국 공화당의 첫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 [사진 =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첫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 [사진 = 연합뉴스]

펜스는 잠깐의 침묵이 그에게 엄숙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연설 도중 자주 말을 중단하면서 “조 바이든은 국내외에서 미국을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연수교육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신인이나 무경험자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라마스와미가 “우리는 국가 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자 펜스는 “비벡, 우리에게는 정체성 위기가 없어요. 지금은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찾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국민만큼 좋은 정부가 필요할 뿐입니다.”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라마스와미는 마치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에게 훈련을 받는 성급한 견습생처럼 반박했다. 

“미국에는 아직 아침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순간에 살고 있습니다.(로널드 레이건 前 대통령이 남긴 명언)”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 문제로 다시 격렬하게 충돌했고, 라마스와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계속 돈을 대느니 차라리 미국 남부 국경을 더욱 굳건히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펜스는 “우리는 둘 다 할 수 있습니다, 비벡”이라고 응수했다. 이에 대해 라마스와미는 “잠시만이요, 이제 구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며 펜스의 말을 끊었고, 펜스는, 낡은 공화당 외교 정책의 불씨를 살리려는 듯, “우리는 힘을 통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이미지 위에 백, 적, 청색으로 꾸며진 배경을 뒤로하고 무대에서 토론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토론회를 주관한 “Fox News Democracy 24”라는 유명 프로그램의 토론회 진행 방식은 지난 美 대선에서 선거 장비에 의한 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하다가 ‘Dominion Voting Systems’사에 7억 8,7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물어주기까지 한 우익 네트워크 ‘폭스뉴스’의 성향을 고려하면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한편, 토론회 중에 공동 사회자인 브렛 바이어는 “우리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 방에 없는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트럼프 前 대통령이 2020년 선거 불복 시도에 따른 공갈 및 음모 혐의로 목요일 조지아 당국에 자진 출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어는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여전히 그를 지지할지를 후보자들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라마스와미, 팀 스콧(Tim Scott), 니키 헤일리(Nikki Haley) 및 더그 버검(Doug Burgum)은 바로 손을 들었지만, 디샌티스와 펜스는 잠시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 뒤를 따랐고, 크리스 크리스티는 이상한 몸짓으로 답을 하더니 나중에 그냥 손가락을 흔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에이사 허친슨(Asa Hutchinson)은 손을 아래로 내려 굳게 잡았다.

이런 식의 정치 풍자극 같은 장면들은 트럼프를 앞에 둔 공화당의 혼란한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한 한편의 은유와 같았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그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트럼프의 지지 기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철옹성 같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라마스와미는 직설적인 얼굴로 트럼프를 21세기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예상대로 크리스티는 전직 대통령의 행위는 미국 대통령 직위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해서 야유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야유를 퍼붓는다고 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대응했다.

미국의 한 시청자가 23일(현지시간) 폭스뉴스의 공화당 후보 토론회 생중계를 시청하면서 비슷한 시간 옛 트위터인 X에 올라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담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의 한 시청자가 23일(현지시간) 폭스뉴스의 공화당 후보 토론회 생중계를 시청하면서 비슷한 시간 옛 트위터인 X에 올라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담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는 트럼프의 압력에 저항한 반대자 중 한 명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마이크 펜스는 헌법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의 칭찬을 들은 펜스 前 부통령은 1980년대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대통령처럼 턱을 다물고 눈썹을 고상하게 치켜 올렸다.

트럼프에 저항한 펜스의 행위가 옳았는지 묻는 질문에 디샌티스는 몸을 사리고 피하다가 마침내 인정했다.

“마이크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의 행위는 트집을 잡을 구석이 없었습니다.”

디샌티스는 토론 내내 악취에라도 시달리는 듯이 콧구멍을 신랄하게 움직이다가, 이를 늦게 깨달았는지 이후 얼굴 전체에 일그러진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가 주지사로서 플로리다에서 쌓은 업적을 계속 늘어놓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때문에 왜소해 보였다. 크리스티와 스콧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반면 펜스는 누구보다 연설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의 가장 큰 성취는 역설적이게도 백악관에서 맛봤을 수도 있는데, 공화당은 역시 ‘마가(Maga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당’에 불과하다는 백악관의 주장에 다시 한 번 힘이 실리게 되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헤일리 후보는 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했고, 디샌티스는 연방 차원에서 제약을 가하는 데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지만, 후보 모두 낙태에 대한 국민 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강경 노선을 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후보자들에게 인간이 기후 변화의 주범이라고 믿는다면 손을 들어 달라는 요청하자 디샌티스는 “우리는 학생이 아닙니다. 토론을 해봅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라마스와미는 “어떤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화당원으로 떳떳하게 밝히자면 기후 변화 주장은 사기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트럼프식 어법을 그대로 구사한 것이다. 다른 후보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토론회의 전반적인 느낌은 공화당이 트럼프 시대의 유산에서 풀려난 대신 경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념적 공백을 문화 전쟁과 우경화 경쟁으로 채우는 당이라는 인상이었다. 토론회가 이런 식으로 무참하게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전지전능한 분과 대적하지 말고, 고만고만한 상대방과 겨루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