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51) 상승하는 민족주의… 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반미정서’에 기름 붓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151) 상승하는 민족주의… 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반미정서’에 기름 붓다
  • 유진 기자
  • 승인 2023.09.01 08:47
  • 수정 2023.09.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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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촛불집회. /연합뉴스
반미 촛불집회.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접어들면서 두드러진 현상은 미국, 일본 등 주변 강국에 대항해 ‘민족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민족주의는 1990년대 내내 논란이 됐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방조 의혹’이 도화선이 됐다. 

특히 노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02년 국제 스포츠경기에서 증폭됐다. 바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과 한일 월드컵 경기였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분명히 우승을 했는데도, 호주 심판이 불공정한 판정으로 일본 출신의 미국 선수 아폴로 안톤 오노가 승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인들의 분노에 찬 글들이 가득했고, 같은 시기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방한 기사는 거의 묻혀버렸다.

토마스 허바드 대사가 국방대학교에서 강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 방문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질문 시간이 되자 모든 질문은 온통 오노 사건에 집중됐다. 

허바드 대사는 “우승자를 결정한 사람은 미국인이 아니라, 호주 심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중의 격앙된 반응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날 기업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똑 같은 질문이 들어왔다. 허바드 대사는 “중요한 경기에서 억울하게 진 한국 선수와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실망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간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공감하는 표현에 청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오폴로 오노 사건은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한국은 동시에 16강에 진출했다. 한미전은 한국민들의 앙금을 그대로 드러낸 경기였다. 한국의 공격수가 동점골을 기록한 후 오노 선수 흉내를 냈을 때 한국 군중들로부터 엄청난 함성소리가 터졌다. 경기는 1대1 무승부로 끝났지만, 한국민들의 가슴 속에 미국에 대한 응어리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혔는지 확인해준 경기였다. 

2002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골인 지점을 앞두고 미국의 안톤 오노(오른쪽)가 김동성에 밀려 놀란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김동성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실격, 금메달을 빼앗겼다. /연합뉴스
2002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골인 지점을 앞두고 미국의 안톤 오노(오른쪽)가 김동성에 밀려 놀란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김동성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실격, 금메달을 빼앗겼다. /연합뉴스

월드컵이 6월 4일 개막된 이후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 있을 때, 6월 13일 서울 북쪽 의정부 근교의 미 훈련센터 부근에서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반미 감정은 ‘마른 들판에 들불 번지듯’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한국 민간인 사이에 있었던 사고 중 가증 큰 일이었다.

당시 부임 초기였던 리언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과 허바드 미 대사는 공개 사과하고, 장례식, 보상금 등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취했다.

월드컵 경기에 치중해 있던 터라,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축구 경기가 막을 내린 뒤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해 냉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미군이 한국 당국에 기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년 전에 개정했던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를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항의가 거세게 일었다. 또한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미국 정부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 국무부와 주한미대사관은 작전 중 우발적 사건이었던데다, 사건 발생 후 2주일 가량 국민적 분노가 폭발할 움직임도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묻힐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적인 대응을 취하기엔 늦은게 아닌가 하고 판단하는 동안, 분노는 더욱 확산되기만 했다.

러포트 사령관과 허바드 대사가 “최소한 워싱턴의 최고위급 관리들이 성명을 발표하는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한국의 현지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워싱턴에서는 대응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급기야 장갑차를 몰았던 두 명의 미군이 기소되기만 하고, 결국 군법회의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대통령의 사과도 소용이 없었다. 

국민들은 매일 밤 촛불 시위를 벌여 희생된 어린 소녀들을 애도하고, 이 비극적인 사건의 책임자를 단 한 명도 잡아들이지 못한 미국 사법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친미단체가 대항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당시 서울을 압도하고 있던 방미 분위기를 양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서울에 사는 미국인들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등 한-미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간 촛불시위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더욱 고조됐던 것이다. 

[X파일 취재팀= 최석진, 유 진 기자]

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yoojin@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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