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부메랑 가족이 증가하는 뉴질랜드...생활고 때문에 본가로 들어가는 젊은 성인들
[월드 프리즘] 부메랑 가족이 증가하는 뉴질랜드...생활고 때문에 본가로 들어가는 젊은 성인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9.04 05:18
  • 수정 2023.09.04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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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웰링턴 교외 주택가 모습 [사진 = 블룸버그]
뉴질랜드 웰링턴 교외 주택가 모습 [사진 = 블룸버그]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본가로 다시 들어가 사는 성인들의 문제는 다가오는 뉴질랜드 총선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높은 주거비용과 고물가 때문에 본가로 다시 들어가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3일(현지 시각) 가디언이 보도했다.

파트너와 헤어진 후 거의 3년 동안 6살 쌍둥이 딸들을 홀로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던 프레야 아담스(32)는 침실 2개짜리 아파트의 모기지(주택 담보대출) 상환액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식료품과 휘발유 가격 등 생활물가도 계속 치솟았다.

“더 이상 절약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담배도 못 피우며, 커피나 딸들의 옷도 살 수 없었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사회사업을 공부하면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담스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런 딸을 지켜보던 아담스의 부모님이 6개월 전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아담스와 딸들이 오클랜드의 본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사실에 서럽기도 했지만,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은 금전적인 문제나 육아 등에서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컸다.

아담스는 본가로 들어가거나 아예 부모님 슬하를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절약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young adults)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자녀가 성장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이전 세대의 규범을 벗어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뉴질랜드 생활비 상승, 특히 다가오는 10월 총선의 최대 쟁점인 주택 비용의 엄청난 증가에 기인한다.

“아이들이 재정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게 된 현실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주택을 마련할 때에도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클랜드 매시대학교 사회학자인 폴 스푼리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뉴질랜드 통계청(Stats NZ)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18~34세 젊은 세대 중 약 25%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10년 전보다 증가폭이 높지 않은 반면,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도 가족과 함께 사는 청년의 수는 급증하고 있다. 2013년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청년 중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 비율은 38.5%에 불과했었는데, 10년이 지난 뒤에는 거의 55%가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생활 패턴

클레어 햅스(54)는 몇 달 전 22세의 아들을 퀸스타운 근처의 본가로 들어와 살도록 했다. 그녀의 아들은 엔지니어로 보수가 좋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임대 주택에 살면서 매년 NZ6,000달러(한화 약 470만 원)의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독립하고 얻은 거라고는 춥고 낡은 집에 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10대 때부터 “열심히” 저축했지만, 주택 마련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뉴질랜드의 부동산 가치는 평균 가계 소득의 7배가 넘는 수준으로, 내집 마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평가된다.

미국의 부동산 컨설팅 업체 코어로직(CoreLogic)의 8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수치는 2022년 최고치인 8.8에서 감소했지만, 평균 가계 소득 대비 장기 평균치인 6.1배보다는 높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호주 등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호주의 경우 2022년 평균 주택 가격이 연간 평균 가계 소득의 8.5배였는데,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6.8배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인해 수천 가구가 정부 공공 주택을 기다리며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이나 호텔에 거주하는 일이 흔하다.

퀸스타운의 스키 타운에 사는 수십 명의 근로자들은 폭등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추운 밤을 차에서 자며 보내고 있다. 그리고 주택 소유자들도 가계 평균 소득의 절반에 해당하는 모기지 상환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은 ‘세대 간 삶(intergenerational living)’이라는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다.

테사 윅스(31)는 5년 이내에 웰링턴에서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인 제니 랄스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기간은 두 배로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어머니가 집 뒷마당에 지은 원룸 주택에 살고 있다. 밖에 나가서 그 정도 집에 살려면 임대료로 수백 달러는 지불해야 하는데 그녀 부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우리가 사는 주택 형태는 이른바 ‘세대 간 삶’이라는 방식입니다. 나를 키워준 보모와 같은 공간에 살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윅스가 사는 원룸을 지은, 뉴질랜드 웰링턴의 조립식 주택 건설 기업 ‘Te Whare-iti’의 건축가 리처드 라이트는 모듈식 주택에 대한 문의 중 약 10~15%는 자녀를 돕고 싶어하는 부모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라고 말했다. 

“이것은 주택 건설에서 완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모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클랜드 주택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오클랜드 주택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주택 정책을 놓고 분열된 정치권

랄스톤 가족의 주거 형태는 2021년 뉴질랜드의 두 주요 정당인 노동당과 국민당 사이의 역사적인 정책 합의로 탄생했다. 이 정책으로 도시와 지방 중심지에 3층짜리 연립 주택과 같은 중간 밀도 주택이 집중적으로 건설되게 되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보수정당인 국민당은 도시의 주택 밀집 현상을 심화시킨 이 정책의 합의안을 파기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국민당은 향후 30년간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교외나 도시 외곽에 주택을 지을 충분한 토지를 즉시 확보하겠다고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뉴질랜드 이니셔티브(New Zealand Initiative)’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에릭 크램튼은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고층 건설과 외곽으로의 확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애초의 합의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두 주요 정당이 주택 정책에서 더욱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민당이 노동당의 핵심 정책들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당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보수 성향의 ACT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 두 당은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로운 주택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 비용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집권 노동당은 향후 20년 동안 약 7만 채의 신규 주택을 짓기 위해 거의 40억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기금을 배정했지만, 국민당은 노동당이 굼뜬 행보를 보인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동당은 아직 선거를 앞두고 주택 정책 공약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제 아담스는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부모 슬하를 떠나 독립하는 뉴질랜드의 전통적 관행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담스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생활비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쌍둥이 딸을 키우는 데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지내는 다른 나라들의 관습을 지금은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훨씬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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