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베이징의 겁박에 기를 못 펴는 홍콩 대학들...국가보안법 발효 이후 짓밟힌 '상아탑의 자유'
[월드 투데이] 베이징의 겁박에 기를 못 펴는 홍콩 대학들...국가보안법 발효 이후 짓밟힌 '상아탑의 자유'
  • 유진 기자
  • 승인 2023.12.17 06:44
  • 수정 2023.12.17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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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민주화를 외치는 대자보로 가득 찼던 홍콩중문대학의 ‘민주화의 벽’ [사진 = BBC]
한때 민주화를 외치는 대자보로 가득 찼던 홍콩중문대학의 ‘민주화의 벽’ [사진 = BBC]

중국 당국의 홍콩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학문과 자유의 전당인 상아탑마저 숨을 죽이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BBC가 보도했다.

“홍콩에 대한 압박은 이제 넘지 못할 선이 없게 되었습니다.”

홍콩의 한 30대 인문학 교수는 이렇게 한탄했다.

“그들이 당신을 노린다면 어떤 구실도 가능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자신에게는 악몽이지만, 관영 언론들이 옹호하는 홍콩의 현실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와 나아가 자유까지 구속당할까 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언급한 그 두려움이 한때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모았던 홍콩의 대학과 학계를 휩쓸고 있다. 홍콩은 물리적으로는 중국 본토와 가깝지만, 학문의 자유가 넘치는 상아탑의 분위기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수들과 학생들은 BBC 인터뷰에도 후환이 두려워 대부분 익명으로 응했다. 2021-22학년도에 360명 이상의 학자들이 홍콩의 8개 공립대학을 떠났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학계의 이직률은 7.4%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가장 높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 등록도 2019년 이후 13%가 감소했다.

홍콩 메트로폴리탄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스테판 오트만은 “기존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안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동료들이 떠났고 남은 사람들도 몸 조심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교수들이 수업에서 홍콩과 중국 관련 자료를 모두 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자기 검열이 2020년 ‘국가보안법(NSL)’이 발효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홍콩을 한 번에 침묵으로 몰아넣은 이 법은 분리주의자 또는 체제 전복자로 의심되는 모든 행동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민주 운동가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저촉될 수 있다.

베이징은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마련된 이 법이 홍콩을 “혼란에서 안정적 지배로” 이끌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이 법은 한때 활기찼던 이 도시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주범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홍콩에서 거의 주말마다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정부에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공공 도서관에서는 이른바 “서방의 사악한 이데올로기”가 담긴 책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영화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검열되고 있다. 또, 주말에 치러진, ‘애국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지방선거에서 민주화 운동가들은 아예 입후보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 최악의 상황은 일부 민주 인사들이 감옥에 있거나 망명 중이라는 사실이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언덕이 많은 곳에 자리 잡은 홍콩중문대학교(CUHK) 캠퍼스 입구에는 7명의 경비원이 경비 초소를 지키면서 오가는 교수나 학생, 방문자들의 신원을 검문한다.

보안 검색은 2021년에 도입되었다. 그 해에 두 개의 영향력 있는 민주주의 언론 매체인 ‘Apple Daily’와 ‘Stand News’를 포함해 수십 곳의 인권단체 및 노동조합도 폐쇄되었다.

기자가 중문대학을 찾은 날 캠퍼스를 방문했던 한 졸업생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들려주었다.

홍콩준문대학은 2019년 저항 운동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검은 옷의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화염병, 벽돌, 최루탄, 고무탄을 주고받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체제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한 때 대자보로 가득 차 있던 ‘민주화의 벽’은 흔적이 지워진 채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또, 1989년 베이징 천안문 사태 당시 희생된 수천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던 ‘민주 여신상’도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해 사라졌다.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학생은 “학생들은 확실히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저는 사회 운동을 하고 싶어 사회학을 선택했지만, 그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 정치나 역사와 같이 민감한 과목은 되도록 피하려 한다. 그는 나아가 대학측이 학생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쓴 연구 논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의 불안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홍콩에는 이제 일반 주민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개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는 홍콩의 미래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입학한 지 1년 만에 대학을 그만두고, 영국의 특별비자를 받아 영국에 정착한 14만 명의 다른 홍콩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곧 떠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홍콩은 서구 세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학문의 전당으로 자리 잡아가던 중이었습니다.”

2020년 이후 홍콩을 떠난 한 중국 전문가는 이렇게 주장했다. 

“20년 간의 학문적 발전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가로막힌 사실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2011년에 홍콩에 정착한 오트만 박사는 홍콩이 중국학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은 것에 대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중문대학은 수많은 학문적 자료들에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학자들에 인기가 있었는데, 그런 자료들이 사라져 버린 이제는 분명히 그런 매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중국 전문가라 할지라도 감시를 받기는 마찬가지라며 “중국 학자인 제 동료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입국하면서 약 4시간 동안 검문소에 대기해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원래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2019년 이후부터는 대놓고 우리들에게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2년 전 동료 교수들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홍콩을 떠난 한 인문학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홍콩의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생 중 박사 과정에 등록하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박사 과정을 끝까지 마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9년 12월 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 현장 [사진 = 연합뉴스]
2019년 12월 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 현장 [사진 = 연합뉴스]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역사가 로웨나 히는 홍콩 시위 초기인 2019년 7월에 홍콩에서 대학교수를 시작했다. 그녀는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기회를 잡았다.

광저우에서 태어나고 자란 로웨나는 1989년 천안문 광장 시위를 등불로 여기면서 성장했다. 그녀는 홍콩 드라마를 보며 자랐고,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보도하는 홍콩 언론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또한 그해 광저우에서 열린 천안문 운동에도 참여했었다.

올해 10월, 그녀는 1년이나 기다린 끝에 홍콩 비자 갱신 신청이 거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며칠 뒤 홍콩중문대학에서 해고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홍콩 행정장관인 존 리는 로웨나 히 교수가 “보안 심사에서 부적격자로 드러나” 비자가 거부되었다고 밝혔다.

“홍콩 사람들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경우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홍콩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라거나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녀는 1989년 학생들이 주도한 천안문 시위와 유혈 진압에 대한 토론이 금지된 상황에서 교수 일을 한다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홍콩에서는 인터넷에서조차도 천안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그녀에게 홍콩과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켰을 뿐이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년 6월 4일이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빅토리아 공원’으로 몰릴 것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그들은 함께 촛불을 들고 우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릴 겁니다.”

1989년 6월 4일의 학살을 추모하며 해마다 열리던 대규모 촛불집회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금지되고 있다.

로웨나 히 교수는 중문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가능한 당국을 자극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수업 내용을 자기 검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거나 ‘민감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가치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녀는 매주 학생들과 식사하며 홍콩의 현실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믿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지난 2월에 홍콩 및 베이징의 지원을 받는 매체인 ‘Wen Wei Po’가 로웨나 히 교수가 서방의 대리인이라고 비난하기까지 이르렀다.

정치 망명 분야 전문가로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익숙하다. 

“나는 그들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옷 가방 하나만 들고 에어비앤비를 옮겨다닐 때가 되어서야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국내외 홍콩인들의 따뜻함과 지지가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한동안 암흑의 시기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스스로 포기할 때에만 진정으로 죽는 겁니다. 우리는 홍콩의 민주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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