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예산 삭감으로 공적 법률 구제에서 소외되고 있는 영국 사람들
[월드 프리즘] 예산 삭감으로 공적 법률 구제에서 소외되고 있는 영국 사람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2.07 06:38
  • 수정 2024.02.0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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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TI]
[사진 = ATI]

공공 예산 삭감으로 특히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공공이 지원하는 법률 지원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 법정에서 변호사 없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6일(현지 시각) <유로뉴스>가 보도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변호인의 도움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부가 보조하는 법률 지원 예산이 삭감되면서 법률적 어려움에 처한 저소득 층의 다수가 법적 구제의 사각지대에 노이게 된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특히 가정법률 분야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예비 심문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에 저는 법정에서 제 자신을 스스로 변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손자의 양육권을 위해 싸워야 했던 할머니 루이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루이자는 2년 동안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 사회복지기관에서 그녀가 양육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가정법원에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법률구조 위기

루이자는 자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다는 것 말고도 정부가 지원하는 법률 지원을 받기 위한 기준을 충족했다고 해서 그녀의 변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변호 서비스를 받으려면 ‘법률 구조공단(Legal Aid Agency)’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2012 LASPO 법(2012 LASPO Act)’은 정부의 법적 지원을 대폭 삭감했으며, 특히 가정법률 분야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공적인 법률 지원을 받으려면 개인의 월 소득이 2,657파운드(한화 약 443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는 너무 인색한 기준은 아닐지 모르지만, 정부 지원 소송에 지원하는 가정법률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수천 또는 수십만 파운드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가정법률 전문 로펌인 ‘Beck & Fitzgerald’의 공동 창립자인 제니 벡은 “변호사들은 정부 지원 법률 사건에 전념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도 변호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공공 지원 변호에 임하는 변호사에게 지급되는 법률구조 비용은 정부가 시간당 액수로 일방적으로 정하며 불변이다. 이 수임료는 인플레이션을 무시한 채 1996년 이후 인상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2011년에는 10%가 인하되기도 했다.

“많은 로펌들이 정부 지원 사건을 거부합니다. 특히 고객에게 통역사가 필요하거나 정신 건강 문제가 있거나 복잡한 법률 분야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니 벡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법률구조의 장벽

루이자는 5개 로펌과 접촉했지만, 정부 지원 자금으로 이뤄지는 자신의 사건을 맡겠다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체 수임료를 충당하려면 3,000파운드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돈이 없는 그녀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 추가 비용이 500파운드로 조정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이만큼의 돈도 없었다.

“수임료에 비하면 신청 과정에 소요된 수개월의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2023년 5월, 정부는 아동 양육권 소송에서 법률 지원을 확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가정법률 지원 단체인 ‘Kinship Carers’는 <유로뉴스>에 “이 법안은 충분하지 않으며 많은 조부모가 법률 지원을 받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본소득을 입증해야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무일푼인 사람들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변호사들이 지나가고, 고소인들이 화를 내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 간신히 소송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서퍽 법률센터(Suffolk Law Centre) 덕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루이자는 예비 심문일 당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진 = 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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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담센터

‘서퍽 법률센터’의 가족법 담당 사회복지사인 샤론 오도넬은 “고소인은 청문회 중에 감정에 휩싸여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적어달라고 요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의 관리자인 수 워델은 “법률 지원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원고, 피고 모두 법률 대리인 없이 당사자끼리 법정에서 맞붙은 사건이 2012년에 비해 30%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법률 상담 센터들은 ‘국가 법률구조공단’의 자금 지원을 받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센터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Law Society’에 따르면 2021년에는 2009년보다 법률 지원 센터 수가 59%가 줄어들었다.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는 이러한 법률 지원 센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법률 구조 사각지대(advice deserts)’이 생겨나고 있다.

‘서퍽 법률센터’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풀가동’ 중이었으며, 2024년 1월까지 새로운 사건을 접수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가 거부한 사건

그러나 일부 변호사에 따르면 법률 상담 센터들도 불충분한 서비스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에는 미숙련 변호사들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식 작성 등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반대로 화를 키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그들은 소송보다는 중재를 장려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가정법률 전문 로펌 ‘Beck & Fitzgerald’의 공동 창립자인 제니 벡은 이렇게 설명했다.

최종 순간에 만난 도움

지난해 7월, 어린 세 자녀의 엄마인 매리언은 전남편의 변호사로부터 자녀 양육권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전남편은 주로 감정적으로 학대하면서 때로 폭력도 행사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지만, 우리가 헤어진 후 그가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했고, 경찰이 개입했습니다.”

매리언은 법률 상담 센터가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전직 변호사였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 소송을 진행했다. 그녀는 “상대방 변호사에게 답장을 보낸 사람은 나였고, 나를 보호해 줄 중재자는 없었다.”며 험난했던 과정을 회상했다. 

나중에 매리언 사건에 대한 정부 법률 지원에 응한 로펌은 단 한 곳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녀는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리언은 예비 심리 당일 자신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 ‘Central England Law Center’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무료 현장 법률 서비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상대방 변호사가 막판에 ‘진실조사’를 요구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를 지원하는 법률보조원이 이에 응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법정에서 계속 ‘울지 말고, 떨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지경이어서 모든 절차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매리언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녀는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를 선임할 것인지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

영국 법무부 대변인은 유로뉴스에 “가정 학대 피해자가 자신의 주장을 더 쉽게 입증할 수 있도록 공공 법률구조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작년에만 법률 서비스 소외자들을 돕기 위해 20억 파운드를 지출했으며, 최근에는 더 많은 가정 폭력 및 가족 사건 피해자를 돕기 위해 법률 지원 범위를 확대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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