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색채가 강했던 노무현정부였지만 그때를 '기업할 만한 시절'로 기억하는 기업인들이 의외로 많다. 기업 경영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고, 투자 확대를 위해 각종 규제 완화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처음부터 기업들에 나긋나긋했던 것은 아니다. 재벌 경영투명성 강화, 종업원 지주제 도입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정부였다. 경제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예고됐다.
하지만 대내외 여건은 엄혹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전 2003년 1월 신용카드 평균 연체율이 11.2%(전업계)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이 치솟으며 '카드 대란' 전조를 보였다. 당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가신용등급도 하락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선회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3월 4일 참여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는 관련 부처가 완화 대상 규제를 선정해 다음 국무회의부터 하나씩 살펴보고 바로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2003년 초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시에 100억달러(당시 12조원) 규모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수도권 규제에 묶여 건립이 불투명해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 LCD공장이 이듬해 4월 첫 삽을 떴다.
참여정부는 이어 수도권 개발 규제로 공장을 증축할 수 없었던 삼성전자와 쌍용자동차에도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관련법·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쌍용차가 각각 기흥·화성공장과 평택공장에 10조원 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참여정부는 2005년에 법인세율을 낮추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기 세계 경제 성장률을 밑돌던 한국 경제는 법인세를 인하한 다음해인 2006년과 2007년 각각 5.2%, 5.5% 성장하며 세계 경제 성장률(각각 4.9%)을 앞섰다. 그로부터 14년여가 흐른 지금, 문재인정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대기업에는 잔뜩 부담을 지우고, 노조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정책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며 '오버슈팅(overshooting)'한 후 제자리로 돌아갈 줄 모르고 있다. 최저임금·법인세율 인상,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양대지침 폐지 등 브레이크 없는 일방통행을 계속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같은 정책기조에 대해 최근 매경이코노미스트클럽 강연에서 "정권 초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오버슈팅으로 봐달라"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위기 가능성과 북한 리스크 등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출범한 참여정부가 대선 100일 만에 정책 오버슈팅에서 벗어나 균형점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과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뿐 아니라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 초반에는 넘치는 개혁 의지 탓에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있어왔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쪽으로 '균형'을 되찾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뻔히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교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업 투자유도 정책의 부재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4개월 만에 혁신성장을 내세우며 그 대상을 신산업·중소기업·벤처로만 제한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탈원전에 '올인'하면서 산업 정책은 전무한 상태다.
한국을 뺀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며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부동산개발업자 출신답게 39%에 달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15%까지 뚝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규제의 대명사였던 프랑스마저 노동 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눈에 띄면 타깃이 된다는 생각에 바짝 엎드려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조선 등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쫓기고 있는데, 기업들이 숨죽이고 있으면 결국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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