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도 어김없이 파업에 나서고 있다. 올해로 7년 연속 파업이다. 이는 지긋지긋한 파업의 고리를 끊고 좋은 차 만들기에 매진해 줄 것을 염원하는 업계와 소비자들의 기대를 외면하는 처사다.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는 예선전에서 2패를 당하고도 세계 최강인 독일 축구를 격침시키는 대이변을 만들어냈다. 우리 축구가 얼마든지 강해줄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마음에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우리 축구팬들은 대표팀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세계 축구계 역시 대단한 이변으로 여겨 찬사를 쏟아낸 바 있다. 독일 축구는 그만큼 우리는 물론 다른 많은 국가들에 공포의 대상이었고 넘지 못할 장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똘똘 뭉쳐 땀을 흘린 대가로 그 장벽을 넘어섰다. 함께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 장면에서 우리 자동차 업계가 잠시 오버랩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독일 자동차는 부자들의 차, 신분 세탁을 위한 고급차로 여겨질 만큼 우리 자동차 업계가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겨왔다. 그런 탓일까. 이 장벽을 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펼치기보다는 현대차 노사는 매년 적은 돈을 벌어 그 돈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에 대한 갈등으로 밤을 새우는 형국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외국산 자동차는 독일차를 필두로 매년 판매가 증가일로에 있다. 최근에는 점유율이 10%를 훨씬 넘어 20% 돌파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는 수입차 합계 매출액이 기아차 전체 매출액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메르세데스 벤츠는 한 해 매출액이 4조원을 돌파해 국내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GM, 쌍용차, 르노삼성의 매출액을 두 배 이상 앞서가고 있다.
또한 수입차 전체 매출액은 이들 세 개 회사 매출액을 다 합쳐도 모자라는 형국이다. 이 중에서도 독일차는 수입차 매출의 60%를 넘어설 정도여서, '수입차=독일차'로 인식되며 무서운 기세로 내달리고 있다.
만일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현대차와 기아차가 독일차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동차와 연관된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는 더 이상 자동차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조는 매년 파업을 되풀이하고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다.
수입차가 범람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에 문을 걸어잠그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이미 유럽연합(EU), 미국 등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태라서 수입규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자동차를 싸게 만들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다행히도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관세 부과 등 여건이 예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2일 논평에서 "관세 폭탄이 투하될 경우 현대차는 33만대의 미국 수출이 감소하면서 5000~6000명의 정규직 일자리, 2만~3만명의 부품사 노동자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한국과 미국 양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동시에 줄어드는 나쁜 풍선효과를 깊이 우려한다"며 "한국과 미국의 경제와 자동차산업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한국 자동차 및 부품에 관세 25% 적용 예외를 적극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평에서 노조는 편지 형식을 통해 전투적 표현 대신 간곡한 어조로 호소한 점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조합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 상황을 엄중히 인식시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측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전투적 방식의 투쟁 대신 합리적인 협상으로 전환하는 게 옳다.
노조 집행부는 언제나 쟁의와 집회로서만 협상을 이끌 게 아니다. 때로는 엄중한 상황을 설파하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데 힘을 모을 수도 있다.
이처럼 노사가 위기국면에서 힘을 모아갈 때 우리 축구가 독일 축구를 격침시켰듯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순간 침체일로에 빠졌던 우리 자동차 업계도 회복의 기운이 싹틀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동차 노사가 분쟁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제 땀의 결실을 통해 기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에 온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키리크스한국=김완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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