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후원과 자원봉사로만 운영
“18년 전에 큰딸이 시골에서 강아지 6마리를 데려왔어요. 근데 모두 파보(전염성 개 장염)에 걸려 있었어요. 동물병원이 뭔지도 몰랐을 때라 무작정 중앙가축병원에 데려갔어요. 아침저녁으로 주사 맞히니까 살데요. 걔네랑 5년을 살았어요. 그 6마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 ‘주안쉼터’의 김영란(62) 소장은 홀로 개 65마리와 고양이 8마리를 돌본다. 그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주안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쉼터는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꾸려가고 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12시간씩 통닭집에서 일했어요. 그 돈으로 사료를 샀어요. 당장 먹을 게 부족해서 병원은 거의 못 보냈어요. 그래서 그때 아파 죽은 개가 많아요. 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김 소장은 32년 전 남편과 함께 인천에서 현수막 공장을 운영하면서 개 3마리를 키웠다. 유기동물과의 인연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누가 담장 넘어 버리고 가고, 딸들이 불쌍하다며 주워오고. 결국, 13마리까지 식구가 늘었다. 2001년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공장을 정리하며 본격적으로 유기동물을 돌보기 시작했다.
“공장 문은 닫는데 개들은 어디로 가요. 그땐 중성화 개념도 없어서 자기들끼리 애 낳고 수가 더 늘었어요. 그래서 단독주택을 하나 빌려 거기서 키웠죠. 근데 그게 소문이 났는지 편지 써서 대문 앞에 개를 버리고 가요. 그럴 땐 사람이 정말 밉죠”
주안쉼터는 대부분 후원으로 운영된다. 사료‧간식‧배변패드 등 소모품은 대부분 후원에 의존한다. 개인 생활비는 장성한 자녀들이 부쳐준다. 다만 400만 원 정도 빚이 있는데 아픈 동물들을 위한 병원비다.
“집주인도 고마운 후원자예요. 10년째 월세도 안 받고 개들이랑 살라고 내버려 두거든요. 근데 여기가 원도심이다 보니 재개발이 걱정이에요. 이 많은 개가 어딜 가겠어요. 내 소원은 입양 갈 수 있는 애들은 다 가고 내가 데려갈 수밖에 없는 애들만 남는 거 에요. 그때까지 더는 쉼터에 오는 애들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데 대해서는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펫샵’이 원인이라고도 지적했다.
“펫샵의 동물들은 번식장에서 와요. 번식장의 동물은 평생 새끼를 배고 낳기를 반복하죠. 사람들은 이걸 쉽게 사고 조금만 크면 버려요. 잃어버려도 찾지 않고. 아프면 절대 책임지려고 안 해요. 그렇게 유기동물이 생기는 거에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이어갔다.
“시에서 보호소를 잘 만들어 놨으면 나한테 오는 일 없었을 거 에요. 구조해서 나한테 주는 사람들 죄다 ‘위탁 보호소는 안락사시켜서 싫어요. 소장님이 맡아주세요’ 하고 데려다 놔요. 내가 뭐 볼 게 있다고 나한테 주고 가겠어요? 안락사 안 시키는 거, 끝까지 책임지는 거 그거지. 안락사만 안 시켜도 시 보호소로 데려가는 사람 많을 거 에요”
동물보호 관리 시스템은 유기동물 구조 후 10일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호하며 동물보호 관리시스템(www.animal.go.kr)에 공고해 주인을 찾는다. 10일 이후는 유기동물 소유권이 각 지자체로 넘어간다. 위탁소 사정에 따라 안락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는 위탁소를 선정해 유기동물을 맡기고, 지자체는 유기동물 마리당 12만 원을 위탁소에 지급한다.
김 소장은 최근 개 3마리를 입양 보냈다. 그는 벌써부터 파양돼 돌아올까 걱정이다.
“난 못 키우겠으면 꼭 다시 데려오라고 해요. 여기 쉼터에 친구들 다 있으니까 개들도 편할 거라고. 그리고 내 마음도 그게 편해요. 잃어버려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것보다 그냥 내가 품고 가는 게 편해요. 다시 돌아오면 그건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더 좋은 사람 만나려고 돌아온 거야. 이렇게 생각해요”
그는 끝으로 “나도 (쉼터를)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었죠. 내가 나이가 들고 몸이 자꾸 아프니까. 그때 얘들 위탁 보호소에 보내면 누굴 보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하나도 없더라고. 얘들한테 내가 필요한데, 나도 얘들 필요하더라고요”
[위키리크스한국=조냇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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