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수첩] 가습기살균제 참사..."가해 기업엔 '패스트 트랙', 피해자엔 '절차 강화' 정부"
[WIKI 수첩] 가습기살균제 참사..."가해 기업엔 '패스트 트랙', 피해자엔 '절차 강화' 정부"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07.23 20:28
  • 수정 2019.07.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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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책임 통감한다면 포괄적 구제를"
[일러스트=연합뉴스]
[일러스트=연합뉴스]

SK케미칼(당시 유공)은 1994년 세계 최초로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초유의 살생물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것인데 환경부는 별도 안전성 검증 절차 없이 인체 직접 흡입하는 제품으로 승인해줬다. 이후 잇따른 제품 출시 과정에서 카페트살균제 용도변경도 묵인해줬다.  

국민 안전의 시작점이자 최후 보루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정부는 날을 세우지 않았다. 국내 기업에 무조건이나 다를 바 없는 신뢰를 보인 것이다. 

이후 SK케미칼은 CMIT·MIT계열 원료를 사용해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2001년까지 8년간 직접 제조·판매했다. 이어 이를 2002년부터 2011년 판매 중단까지 10년간 SK케미칼이 제조원으로 공급하고 애경이 판매했다. 

2011년 중단 시점까지 17년간 시중엔 SK케미칼 '가습기메이트'만이 아니라 애경 '가습기메이트'(2002년~) 옥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1998년~), 롯데 자체 브랜드(PB)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200년~), 홈플러스 PB '가습기청정제'(2003년~), 이마트 PB '가습기살균제'(2006년~), LG 119 '가습기세균제거' 등 43개 제품 998만개가 판매됐다. 2002년 이후엔 2011년까지 20여종 제품이 연간 60만개씩 팔려나갔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제품 사용자는 350만~400만명 가량, 최대 56만명이 건강피해 경험자로 추산된다. 중증 피해자는 4만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제품 제조로부터 26년째인 2019년 현재 피해인정 신청자는 6476명에 그치고 있다. 

SK케미칼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첫 사망자는 1995년 8월에 나왔다. 54세 11개월 성인과 3개월 영아였다. 이같은 피해는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실제적인 피해 구제는 2016년에서야 검찰 수사가 이뤄지면서 옥시 등 기업 차원 배상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정부를 향해 "피해 인정 단계를 폐지하고 포괄적으로 수용하라, 노출이 확인된 모든 사망자, 피해자를 배상하라"고 직접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3월 발족, 1년간의 참사 진상규명활동을 알리고 공과를 되짚으며 피해자와 소통에 나선 특조위 설명회 자리에서였다. 왜 피해자들의 원성은 정부와 특조위를 향했을까. 

가해기업에 이어 정부, 특조위마저 피해구제과정에서 이들 피해자에게는 또 다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이같은 상황을 성토했던 것이다. 

피해인정 신청자들은 피해인정, 불인정 결과에 대해 정부 기관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어떤 설명이나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피해자들을 위한 조사 조직인 특조위마저 피해자들이 각종 활동 정보를 요청했을 때 제공하지 않거나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다. 

복잡하고 더딘 피해구제절차를 보면 1994년 당시 인체가 직접 흡입하는 살생물제는 방조하다시피 승인해주며 기업엔 관대했던 정부가 피해자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거짓 피해를 알리고 지원금을 받지나 않을까 까다로운 절차에 확대경을 들이밀며 피해인정자를 가려내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피해인정 신청조차 만만치 않다. 판정에 필요한 모든 증거 서류 제출은 피해자 몫이다. 신청자들은 자녀가 심각한 질환을 앓거나 이미 가족을 잃었거나 자신의 건강이 심각하게 나쁘거나 신청상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다. 이같은 의지를 지닌 신청자조차 피해구제과정에서 지쳐가고 있다.

피해인정 신청자는 신청 후엔 환경노출조사, 의학적조사, 건강피해 종합판정, 최종 심의의결까지 4개 절차의 건강피해 조사, 판정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각각 절차 진행은 너무 더디다. 판정까지 60일이내 심의, 30일 연장 규정이 있지만 실제 1차 신청 당시 판정까지 283일이 걸렸고 4차는 561일까지 소요되고 있다. 정부 기관이 이같은 판정 기간을 넘겨도 처벌조항이 없다.  

신청자들은 수개월을 기다린 끝에 피해 인정 또는 불인정 두가지 중 한 가지 판정을 받게 된다. 불인정은 폐질환 3, 4단계인 경우다. 

이때 피해인정 기준은 폐질환(4단계 중 1, 2단계), 천식질환, 태아피해 3가지로 한정된다. 3가지에 해당될 때만 가해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피해구제는 피해가 인정돼 정부 지원을 받는 구제급여와 이외 특별구제계정 2가지로 이원화돼 있다. 피해자들은 실질적인 구제를 위해 이또한 통합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당초 판정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빈번하게 본말 전도, 주객 전도 상황에 놓이는 경우는 다시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피해구제이고 특조위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피해자들 입장이다. 2016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공식 사과에 나섰던 가해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자를 놔두고 도대체 누구에게 사과하는 거냐"며 질타해야 했던 상황을 또 다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종합하면 정부 우선 순위는 국민보다 기업이라는 것, 특조위가 의식하는 것은 피해자나 국민이 아니고 기업과 정부라는 것이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피해자들은 절차에 매달리지 말고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피해구제인지 본질을 생각해달라고 호소한다. 이같은 더딘 절차를 두고 특조위 설명회장에서 "마치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외치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4개 판정 절차 중 의학적조사만 봐도 피해자들은 "엄밀한 의학적 인과관계에 집착하지 말아달라", "최소한 독성학적, 역학적으로 관련성이 확인된 질환은 모두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로 봐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학문적인 엄밀성이나 단계 강화에 집착한 연구는 본질을 벗어난 것이고 이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사태 방조자인 정부는 초유의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가습기살균제 노출만 확인 된다면, 그리고 시간적 선후 상 노출 후 질병이 발생했다면 피해인정 신청자를 이유 불문 건강피해자로 인정, 구제해야 한다. 그게 이미 사망한 1421명에 대해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적어도 그나마 집계된 사망자에 대해선 말이다. 

[위키리크스한국=이호영 기자] 
 

eeso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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