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61)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궤변 “이기적인 정치인들 때문에 전두환이 억지로 대통령 떠맡았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61)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궤변 “이기적인 정치인들 때문에 전두환이 억지로 대통령 떠맡았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19-10-17 07:44:10
  • 최종수정 2019.10.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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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40년 정치비사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국무부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급히 보냈다.

“우리가 최근 제기한 요구사항이 사태를 개선시켰는지, 아니면 악화시켰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법처리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전두환에 대해 더 이상의 압력을 행사할 경우 우리의 입지를 급격히 약화시킬 것으로 확신한다…”

대사는 “나 자신이나 워싱턴, 혹은 어느 특사에 의한 더 이상의 압력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려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전두환이 고려해 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고서와 함께 이전에 보냈던 성명서 초안보다 한결 내용이 완화된 성명서 문안을 동봉했다. 이후 워싱턴은 대사의 제안에 동감을 표시했다.

선고공판 후인 1980년 9월 17일. 국무부와 글라이스틴 대사의 초안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다음과 같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김대중의 군법회의 재판을 깊은 관심과 우려 속에 주시해 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견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극형이 내려진 데 대해 우리가 크게 실망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건이 사법적 판단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우리는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평할 것이 없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보안사령관. 둘은 친구이자 평생의 러닝 메이트로 대통령 바통까지 이어받았만 말년에 갈라서고 말았다. [드라마 제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보안사령관. 둘은 친구이자 평생의 러닝 메이트로 대통령 바통까지 이어받았만 말년에 갈라서고 말았다. [드라마 제5공화국]

그로부터 일주일 후 글라이스틴 대사와 존 몬조 부대사, 보브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은 노태우 보안사령관과 오찬을 겸한 회의를 가졌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노태우는 한 · 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요인들을 철학적으로 개관하면서 자신의 친구인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이어온 일련의 사태를 옹호했다. 이기적인 정치인들의 야심 때문에 군부가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궤변이었다.

화제가 김대중에 이르러 글라이스틴 대사가 미국의 입장을 재차 강조하자 노태우는 1971년 김대중이 박정희에 대항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와, 지난 봄 학생들 사이에서 했던 역할을 들어 그를 ‘공산주의 성향’의 사악한 정치인으로 매도했다.

노태우는 그러나 박정희가 독재자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한국인들은 생명을 존귀하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것을 촉구했다.

9월 17일 국무부의 성명서에 나타난 것처럼 미국 정부는 자제력을 발휘해 카터 행정부 잔여기간 중 김대중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논평을 삼갔다. 미국 외교라인은 상당 기간 동안 전대통령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 행사를 자제했다.

미국측은 그러나 한국 정부의 다른 관리들과 조심스럽게 접촉하면서 김대중 구명 노력을 계속했다.

1996년 12월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와 5·18 사건 항소심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 노태우(왼쪽) 두 전직 대통령. [연합뉴스]
역사의 심판대에선 2인. 1996년 12월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와 5·18 사건 항소심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 노태우(왼쪽) 두 전직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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