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75) 아키노의 정치적 살해… 망명 김대중을 자극시키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75) 아키노의 정치적 살해… 망명 김대중을 자극시키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0-08-02 07:36:33
  • 최종수정 2020.08.0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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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새롭게 창당한 신한민주당은 정치권에서 반 전두환 투쟁을 이끌어나갈 모체가 됐다. 특히 학생-재야-노동세력의 투쟁을 이끄는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신한민주당의 주축인 김영삼-김대중은 박정희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민주화투쟁을 펼쳐나가야 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에게 가장 위험한 정적으로 꼽히던 김대중은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망명을 종용받은 김대중 선생은 가족과 상의 끝에 미국행을 받아들이고, 망망대해와 같은 미지의 세상으로 향해야 했다.

김대중이 미국에 도착한 것은 1982년 12월 23일 밤 10시경.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내린김대중은 300여명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랜드마크 아파트 16층에 위치한 새 보금자리는 경비체계도 잘 잡혀 있었다.

김대중은 미국에서 정치 활동을 벌이며 늘 두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미국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적 지원을 해야 할 것과 두 번째는 안정과 안보라는 구실 아래 독재를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애들란타 에모리 대학에서 ‘한국기독교와 인권’이라는 강연을 시작으로 2년 3개월 동안 150회의 강연 및 연설을 진행했다. 강연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과도 환담하는 등 미국 정치권 안팎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1983년 6월 민주화 운동의 동지인 이영작, 이근팔, 김경재 등과 함께 ‘재미한국인권연구소’를 설립하고, 기관지 ‘행동하는 양심’을 발행하며 인권연구소가 재미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결집을 유도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견인했다. 

베니그노 아키노의 암살사건은 김대중의 귀국 결심을 굳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AP=연합뉴스]
베니그노 아키노의 암살사건은 김대중의 귀국 결심을 굳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AP=연합뉴스]

김대중이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삶의 변곡점이 된 것은 필리핀의 민주화인사 베그니노 아키노와의 만남이었다.

김대중과 아키노는 ‘아시아 민주 전선’같은 운동을 펼치고자 약속한 든든한 동지였다. 아키노는 고국의 민주화 여정을 위해 급히 귀국 일정을 잡았고 이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의 귀국을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아키노는 귀국을 강행했고 1983년 8월 그는 공항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하고 말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들이 오히려 김대중을 위축시키기는 커녕, 귀국 심리를 더욱 자극시켰다는 것이다.

김대중의 한 측근은 “아키노의 행보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고국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의로운 행위로 비춰졌으며, 당시 김대중 선생은 한국의 민주화 여정에 자신이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그런 위협조차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서울의 상황은 김대중의 결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김대중이 미국에서 김영삼 단식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대중 기념관]
김대중이 미국에서 김영삼 단식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대중 기념관]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구속된 학생, 종교인, 지식인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김대중 선생은 이에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단식투쟁의 뜻을 지지했지만 글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관제야당들의 견제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 민주정의당을 견제할 수 있는 길은 선명성 있는 야당을 건설하는 길 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투쟁하고 있는 김영삼을 비롯한 정치인, 재야세력들이 하나의 틀로 뭉칠 필요가 있었고, 김대중이 참여한다면 결과는 폭발적일 것이라는 것은 공통된 생각이었다. 김대중이 아키노처럼 자신을 던지더라도 귀국해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1984년 5월 18일 발족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는 김대중 귀국의 정신적 명분을 제공했다. 동교동-상도동계가 정확히 임원진을 5대5로 양분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상현 전 의원이 공동의장으로 취임했는데, 김상현은 김대중 선생의 대행 자격으로 취임했던 것이다. 

귀국할 결심을 굳힌 김대중은 조지 슐츠 국무장관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전두환에게 귀국할 것을 통보했다. 귀국의 명분으로는 신병치료가 끝났고, 민주화동지들에게 느끼는 부채감과 정치상황의 심각성, 남북통일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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