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미군 내 성소수자 역사와 ‘청색 제대(blue discharge)’의 흔적
[WIKI 히스토리] 미군 내 성소수자 역사와 ‘청색 제대(blue discharge)’의 흔적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7.02 06:22
  • 수정 2022.07.0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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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세요!" : 지난 2010년 12월, 미군 아랍어 통역관이었던 이언 핀켄바인더가 15일 백악관 담장에서 군인들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미군 규정의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혐의로 체포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010년 12월, 미군 아랍어 통역관이었던 이언 핀켄바인더가 15일 백악관 담장에서 군인들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미군 규정의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혐의로 체포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히스토리 채널’ 웹사이트가 최근 미군이 성소수자 장병들을 취급한 역사와 명예제대나 불명예제대가 아닌 ‘청색 제대(blue discharge)’라는 애매모호한 제도가 시행되었던 과정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5월, 미 육군 중위 레무엘 브라운은 군 당국으로부터 청색 종이 한 장을 받았다. 그 종이에는 그의 제대를 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브라운 중위는 이후 법적인 구제를 위해 흑인 인권단체인 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에 보낸 서한을 통해 군은 자신이 바람직하지 않은(Undesirable) 동성애적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른바 ‘청색 제대(blue discharge)’ 딱지에 항거하고자 했던 것이다.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제대를 당한 사실은 그의 인생에 오점이 되고 자신의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미국 전쟁부(War Department)는, 브라운 중위처럼 ‘청색 제대’ 딱지를 받고 군에서 쫓겨난 군인들의 숫자가 거의 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청색 제대’ 딱지는 거의 아무런 공식 절차나 청문 과정 없이 게이(남성 동성애자)나 흑인, 정신 질환자, 알코올 같은 약물 중독자, 오줌싸개 등 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류한 장병들을 군에서 퇴출시키는 데 활용되었다. 그중에서도 이 청색 통지서 상단 한쪽 구석에 ‘HS’라고 적혀있다면 해당 장병을 동성애자(homosexual)로 간주한다는 의미였다.

명예(honorable)와 불명예(dishonorable)의 중간에 위치했던 ‘청색 제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2차 세계대전에서 퇴역한 미군 동성애자들의 삶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HS’ 딱지가 붙은 제대병들은 남색(男色)이 미국 여러 주에서 여전히 중범죄로 취급되던 시기에 공동체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고 고향으로 귀향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가 ‘청색 제대’ 딱지는 해당자들이 ‘제대군인 원호법(G.I. Bill)’에 의한 연금 수령도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제대군인 원호법’은 대학 등록금이나 주택 및 사업 자금을 지원하고, 실업 수당을 제공하는 등 제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사회안전망의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금융 지원 제도였다.

‘청색 제대’의 증가

미군은, 초창기 역사 100년 동안, 두 갈래의 제대 제도를 운영했다. 군을 떠나는 군인은 명예 또는 불명예 제대 둘 중 하나에 해당했다. 하지만 불명예 제대는 군사 재판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극히 희박했다.

19세기 말이 되지 미군은 제대의 선택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군에는 1893년 ‘비명예(Without Honor)’, 그리고 1913년에는 ‘등급외 제대(Unclassified discharge)’가 도입되게 되었다. ‘비명예 제대’와 ‘등급외 제대’는 군사재판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으며, 모두 청색 종이로 명령서가 인쇄되었기 때문에 ‘청색 제대(blue discharge)’로 불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규모 인적 동원이 가능해진 결과 군 당국은 군 내 동성애자들을 취급함에 있어 장시간의 군사재판을 거쳐 감옥에 보내야 하는 거추장스런 절차 대신 해당자들을 단순히 정신적 부적응자로 판별해 제대시키는 쪽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청색 제대’는 ‘부적절한 성격적 기질(undesirable traits of character)’로 판명난 군인이면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부적절한 성격적 기질’은 궁극적으로는 게이 장병들에게 폭넓게 적용되게 되었다.

지난 2010년 2월, 게이츠 미국방장관 (왼쪽), 멀린 합참의장(오른쪽),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마이크 멀린 미군 합참의장이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 규정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010년 2월, 게이츠 미국방장관 (왼쪽), 멀린 합참의장(오른쪽),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마이크 멀린 미군 합참의장이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 규정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흑인 병사들에게 과도하게 적용된 ‘청색 제대’

미시간 대학의 역사학자 제니퍼 도미니크 존스는 ‘청색 제대’ 제도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기는 했지만 특히 흑인들에게는 더욱 무겁게 적용되었다고, 히스토리채널에 밝혔다. 존스 교수는 2016년 발표한 「‘청색 제대’가 흑인 동성애자 장병들에게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특히 흑인 병사들이 철저한 조사와 인종 차별 및 상대적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 논문에서 모든 ‘청색 제대’ 장병들 중 22%가 흑인 동성애자 장병들이었는데, 이는 당시 군 내의 평균 ‘청색 제대’ 사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고 주장했다.

존스 교수에 따르면, 레무엘 브라운 중위처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제대 당한 흑인들을 위해 흑인 인권단체 NAACP가 나서서 ‘제대 재심 위원회(Discharge Review Board)’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취업과 주택 구입 문제 등에서 이미 가혹한 인종차별에 직면하고 있던 이들 제대 군인들에게 ‘청색 제대’자라는 오명은 미래의 안정적 생활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낙인과 같았다.

동성애자를 식별하려는 과학적 시도

미군은 동성애자를 식별하는 과정에서 암초를 만났다. 「역경 속의 커밍 아웃 : 제2차 세계대전 중 게이 남성과 여성(Coming Out Under Fire : Gay Men and Women During World War II)」 의 저자 엘런 베루베에 따르면, 군 당국은 ‘신체상 여성적 특징’이나 ‘여성 복장이나 태도를 선호함’과 같은 주관적 징표 외에는 동성애자를 식별할 결정적 기준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군 당국은 2차 세계대전 참전 가능 장병 1800만 명 중 4~5000명 만을 동성애자로 보고 있었는데, 이는 엄청난 과소평가였다고 베루베는 주장한다.

그러자 군대 내 과학자들이 나서 군인들의 성적 취향을 판별하고자 애매한 검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베루베에 따르면, 1944년 한 군의관은 동성애자를 부르는 코드 용어(code terms)인 ‘성적 사이코패스(sexual psychopath)’를 판별하기 위해 설압자(tongue depressor)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군내 과학자들은 과거 구강 섹스를 행한 바가 있는 동성애자의 89%에게서는 ‘구개반사(gag reflex)’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이 군의관은 설압자 검사를 실시하면 군 내뿐만 아니라 다른 연방정부 기관들에서도 동성애자들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의사들도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나 호르몬 검사를 통해 동성애를 진단할 수 있는지 연구에 나섰다. 군 내의 한 심리학자는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게 나타나며,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근거 없는 이론임이 드러났다.

부분적으로는 동성애자의 과학적 판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1944년 1월 미국 전쟁부는 ‘잠재적 동성애자(latent homosexuality)’라는 이유를 내세워 해당자들을 제대시키는 길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군 당국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해당자들이 게이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청색 제대’ 딱지를 붙여 동성애자들을 축출하게 되었다.

성적 취향이 그리 문제되나요? : 지난 2009년 10월, 뉴욕 시라큐스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뉴욕주 방위군 소속 대니얼 최 중위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미 국방부의 정책을 어겼다는 이유로 받은 군행정위원회의 퇴역 권고에 맞서 싸울 것을 공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적 취향이 그리 문제되나요? : 지난 2009년 10월, 뉴욕 시라큐스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뉴욕주 방위군 소속 대니얼 최 중위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미 국방부의 정책을 어겼다는 이유로 받은 군행정위원회의 퇴역 권고에 맞서 싸울 것을 공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짧은 개혁과 뒤 이은 ‘라벤더 공포(Lavender Scare)’

1945년 10월, 굴지의 흑인 언론 ‘피츠버그 쿠리어(Pittsburgh Courier)’는 미군 당국이 인종적 편견을 근거로 ‘청색 제대’ 딱지를 붙였다는 비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로 인해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7명의 의원을 배정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벌이게 되었다. 그 결과 1946년 1월 이 위원회는 ‘청색 제대’ 제도가 권한을 남용하고 희생자들에게 장기적 차별을 야기했다고, 보고서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제대 군인들이 입사 서류에 ‘청색 제대’ 증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해당 기업들은 지원자에게 ‘뭔가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거나, ‘말로 표현하거나 서류로 설명할 수 없는 수상한 과거’가 있다고 가정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청색 제대’ 딱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제대 군인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구실을 했다는 말이었다.

또, 이 보고서는 국가보훈처가 제대 동성애자들이 ‘제대 군인 원호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고도 밝혔다. 이와 관련 이 보고서는 국가보훈처는 “어떤 군인의 이력에도 도덕적 잣대들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한동안 하원 군사위원회의 이 보고서는 진정한 개혁을 약속하는 듯이 보였다. 1945년부터 1947년 사이 동성애를 이유로 제대를 당한 군인들에게는 명예회복이 주어졌고 ‘제대 군인 원호법’의 혜택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책은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았다. 이는 이미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청색’ 딱지를 받고 제대한 수천 명의 군인들은 여전히 원호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1947년 말이 되자 군은 다시 애매모호한 명예 제도를 근거로 동성애자들을 축출하기 시작했다. 군은 이번에는 해당자들에게 ‘청색 제대’ 대신 ‘명예 제대 외(other than honorable discharges)’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다가 냉전이 찾아왔고, 이러한 개혁 조치를 되돌리는 새로운 게이 공포(gay panic)가 번지기 시작했다. 1950년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 내 침투한 공산주의자 공포를 확산시키면서 우려 대상 인물들로 동성애자들을 지목했다. 그는 동성애자들은 은밀한 사생활 때문에 외적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결국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행정명령 10450’에 서명하고 연방정부에서 동성애자들을 쫓아내는 길을 터놓았다. 그 이후 일어난 상황은 ‘라벤더 공포(lavender scare)’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미국 정부 내 수천 명의 동성애자 공무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반감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청색 제대’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개혁의 희망을 접어야 했고 그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2011년 사이 군 관련 ‘묻지도 말고 거론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법이 폐지되면서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군인이 동성애 때문에 축출되었다. 그들 중에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하비 밀크가 있었는데, 그는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를 커밍아웃한 정치인으로 남아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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