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제 발등 제가 찍은 알렉스 머독의 법정 진술...동영상이 '스모킹건' 역할
[월드 프리즘] 제 발등 제가 찍은 알렉스 머독의 법정 진술...동영상이 '스모킹건' 역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3.07 05:42
  • 수정 2023.03.07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미국 언론이 우크라이나 전쟁 다음으로 대서특필하는 뉴스는 명문 법률가 집안 후손인 알렉스 머독(54)의 엽기적 살인사건이다.

전직 변호사 알렉스 머독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햄프턴 카운티에서 100년 동안 법조 가문으로 이름을 떨치며 이 지역의 공권력을 쥐락펴락해온 명문가의 후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 법정에는 그의 증조부의 사진이 걸려있을 정도로 알렉스 머독의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는 100년 동안 지역의 최고 검사로 선출돼 활동해 온 이력을 지니고 있다.

머독 집안의 가장이자 지역 3개 카운티를 오가며 가문의 로펌을 운영하던 알렉스 머독은 2021년 6월 7일 오후 10시 7분 911에 전화를 해 콜튼 카운티 시골 사냥터에 있는 가족의 개집 근처에서 아내인 마가렛(52세)과 아들 폴(22세)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신고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머독은 그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및 간병인과 함께 있었고, 집에서 아내를 본 지 오래됐다고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아내와 아들의 시신은 총에 맞아 머리가 날아갔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한순간에 잃고 슬픔에 잠겨있던 알렉스 머독이 주요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석 달 뒤였다. 9월 4일, 알렉스 머독은 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픽업트럭이 지나가자 차를 세워 도움을 요청하려는 순간 안에 있는 사람이 총을 쏘아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머독이 자신의 집안에 마약을 공급해 온 커티스 스미스(61)와 짜고 자신을 살해하려는 것처럼 총을 쏴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머독이 청부 살인 자작극을 벌였다고 증언했다. 이유는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고, 자신에 대한 동정여론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아들 이름으로 들어있는 200억원 가량 거액의 생명보험금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은 더욱 막장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결정한다. 또, 유력 재판의 경우엔 공개재판으로 진행돼 TV 생중계가 진행된다.

머독의 재판은 실시간으로 케이블TV와 온라인에서 중계되었다. 수많은 증인과 증거들이 제시되고, 피고의 얼굴 표정과 검사의 추궁, 재판관의 말투까지 백일하에 대중에게 공개된다.

바로 이 알렉스 머독이 1심 최후 진술(법정 증언)에서 알리바이를 주장했다가 오히려 배심원들의 불신을 키워 가석방 없는 종신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6일(현지 시각) 알렉스 머독이 배심원단을 설득하지 못해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전직 변호사 알렉스 머독이 1심 재판정에서 최후진술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에서 출발한 법률가 가문의 이력을 고려했을 때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머독의 전략이 이 지역에서 연속 3대에 걸친 검사 집안 후손으로서는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기 스스로 노련한 법률가였기 때문에 배심원들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변호사이자 법무 평론가인 아레바 마틴은 이렇게 지적했다.

머독이 배심원단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증인석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난 일주일 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최후진술 증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거짓말이 너무 많이 들어났거든요.”

CNN 법률 분석가 조이 잭슨은 이렇게 분석했다.

“분명히 배심원단은 머독이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느꼈을 겁니다.”

머독의 가장 큰 거짓말은 2021년 6월 7일 가족의 아일랜드턴 소유지에서 아내 매기와 아들 폴이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자신이 그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을 1년 반 동안 숨긴 사실일 것이다.

머독은 증언석에서 자신이 그들을 살해하지 않았고, 그날 밤 아픈 어머니를 잠시 방문하고 돌아와서 그들의 시신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핵심 증거가 아들 폴 머독이 총에 맞아 사망하기 직전에 촬영된 동영상에서 나왔다. 머독 가족의 애완견 개집 근처에서 개를 촬영한 이 동영상에서 알렉스 머독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스모킹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머독 자신은 존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이 동영상으로 인해 그의 알리바이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머독이 증언한 법원 벽에는 재판 전에는 그의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변호사로 오랜 경력을 자랑하던 머독은 자신이 왜 당일의 행방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책임을 추궁당한 적 없이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습니다.”

수석 검사 크레이튼 워터스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 사건에서 스스로 증언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술을 한 번 더 해서 배심원단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다른 범죄 혐의들은 몰라도 확실히 이 문제에서만큼은 그런 식으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을 겁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추락한 법조 명문가 출신 변호사 알렉스 머독 [사진 = 연합뉴스]
추락한 법조 명문가 출신 변호사 알렉스 머독 [사진 = 연합뉴스]

“훌륭한 거짓말이었지만 2% 부족했다.”

증언 직후 머독은 시신들이 발견된 개집 근처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임을 인정했다. 그는 당일 초저녁에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수사관들에게 부인한 이유는 마약 중독으로 인한 “편집증(paranoid thinking)” 때문이었다고 둘러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증인들이 해당 동영상 배경에서 들리는 소리는 머독의 목소리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머독은 “나는 아내나 아들에게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목요일 머독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크레이크 모이어 배심원은 <ABC 뉴스>와 인터뷰에서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영상이 스모킹건 역할을 했다.

“그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이어 배심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른 배심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이어 배심원은 머독이 “훌륭한 거짓말쟁이”였지만 “2%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모이어 배심원은 나아가 머독에게서 “진정한 참회나 연민의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증언대에 선 머독이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콧물을 훔쳤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수석 검사 크레이튼 워터스는 반대심문을 통해 머독의 진술을 이끌어내고 싶었는데, 바로 그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머독이 노련한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워터스 검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시급 보조 변호사(part-time assistant solicitor)였으며 그의 가문은 100년의 검사 경력을 자랑합니다. …… 나는 그가 진정으로 배심원단을 설득할 수 있을 거로 자신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진술하도록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는 결국 거짓말을 할 것이고 배심원들은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술(증언)에 굶주렸던 머독

변호인인 딕 하푸틀리안은 머독이 증언하도록 한 전략을 옹호하며, 머독 진술의 신빙성이 그의 또 다른 재무 범죄로 인해 의심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단은 10일 이내에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직 정식으로 재판에는 회부되지 않은 별도의 사건에서 머독은 자신의 고객, 로펌 및 정부로부터 돈을 편취한 행위를 포함해 99가지의 금융 범죄 혐의까지 받고 있다.

“머독이 타인의 돈을 편취한 거거짓말쟁이라고 한 번 낙인 찍은 배심원단은 그를 신뢰할 수 없는 비열한 인간으로 결론 내린 겁니다.”

하푸틀리안 변호사는 선고가 내려진 후, 형사재판에 채택된 금융 범죄 이력을 비판하며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CNN에 “머독이 자신의 아들과 아내를 그런 식으로 살해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봐도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머독의 또 다른 변호인인 짐 그리핀은 머독이 배심원단에게 “매기와 폴에 대한 매우 생생하고 실제적인 감정”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던 머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전문가들은 머독을 증언대에 세운 것은 올바른 전략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증언은 근거가 박약했습니다. 한마디로 최악이었지요.” 

배심원 선발 고문(jury consultant) 알라 투어크하이머는 CNN에 이렇게 설명했다.

“배심원들은 증인이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머독은 계속해서 주제를 벗어났습니다.”

투어크하이머는 머독이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꿰맞추려고 애를 썼으며, 뭔가를 감추는 듯했고, 많이 얼버무렸다. 그의 증언은 자기중심적이어서 배심원들은 그것을 싫어했다. 그는 반대심문을 받았을 때 예 또는 아니오로 빠르게 답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투어크하이머는 또 머독이 살해된 아내와 아들의 이름을 자주 언급한 것도 효과 있는 전략이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심이 담겨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보세요, 변호사들이 증언(진술)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머독은 일단 증언대에 오른 다음부터는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머독의 증언 태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머독이 배심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런 용어를 사용했지만 배심원들은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과 수십 명의 증인이 동원된 뒤 배심원단은 머독에게 2021년 6월 벌어진 2건의 살인사건과 이 범죄 수행 중 자행된 2건 무기소지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선고 다음 날 머독은 갈색 죄수복에 수갑을 차고 한 때 그의 가문의 특권의 상징이기도 했던 법원을 나서 호송되었다.

“한두 명의 배심원에게 머독은 도둑이나 거짓말쟁이로 비칠 수는 있었겠지만 그는 살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언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머독의 또 다른 변호인 미스티 매리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증언이 그를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