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규범을 무시한 '모험 사업계의 이단아'와 잠수정 사업의 파국
[월드 프리즘] 규범을 무시한 '모험 사업계의 이단아'와 잠수정 사업의 파국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6.27 05:38
  • 수정 2023.06.27 0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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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잠수정 운용 기업 ‘오션게이트’의 CEO이면서 이번 사고 잠수정인 ‘타이탄’에 함께 타 바닷속에서 사망한 스톡턴 러시 [사진 = ATI]
심해 잠수정 운용 기업 ‘오션게이트’의 CEO이면서 이번 사고 잠수정인 ‘타이탄’에 함께 타 바닷속에서 사망한 스톡턴 러시 [사진 = ATI]

미국의 잠수정 운영사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이 대서양 심해에 침몰한 타이타닉호 관광을 위해 운용한 심해 잠수정이 폭발 사고를 일으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26일(현지 시각) BBC는 ‘오션게이트’의 CEO 스톡턴 러시의 풍운아 같은 삶을 돌아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스톡턴 러시는 혁신가를 자처하고 그렇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에게 수단은 목표만큼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고서도 머리가 좋고 의욕이 넘쳤던 러시의 꿈은 화성에 최초로 발을 내딛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자기 평생에는 그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달은 그는 바다로 관심을 돌렸다.

“저는 커크 선장(스타트렉 우주선의 선장)처럼 되고 싶습니다. 우리 생애의 마지막 개척지는 바다입니다.” 

그는 2017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러시는, 바다는 모험과 아드레날린, 그리고 신비를 선물하는 공간이면서 사업적 성공도 보장하는 곳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탐험하는 잠수정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오션게이트(OceanGate)’를 설립했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단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회사 직원, 승객 및 투자자 들로부터 찬사도 받았다.

“그는 놀라운 열정의 소유자였고, 나는 그 점을 높이 샀습니다.”

러시의 잠수정 ‘타이탄(Titan)’을 타본 뒤 ‘오션게이트’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투자자 아론 뉴먼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러시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야심은 투자자들을 매료시키기도 했지만, 그가 ‘안전보다 혁신을 앞세우기 때문에 큰 사고를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업계 전문가들의 경고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러시에게는 가당치도 않았다.

결국, 러시의 야심은 지난주 잠수정에 함께 탑승했던 네 명의 승객들과 함께 폭발하면서 물거품처럼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신은 당신이 깨뜨린 규범으로 기억됩니다.(You're remembered for the rules you break)” 

러시는 한 때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주장한 바가 있다.

“나는 몇 가지 규칙을 어겼습니다.”

그는 잠수정 ‘타이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엔지니어링으로 규범에 도전했습니다.”

스톡턴 러시 3세는 1962년 캘리포니아에서 석유와 해운업으로 큰 재산을 모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뉴햄프셔에 있는 명문 기숙학교인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1984년 프린스턴대학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했다.

러시는 19세에 비행기 조종사 중 최상급 단계인 ‘제트 비행 등급’을 획득한 세계 최연소 조종사가 되었다. 그는 F-15와 위성 요격 미사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미국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해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붉은 행성’으로의 여행이 점점 더 비현실적인 일로 귀결되면서 그의 야망은 빛을 잃게 되었다.

“화성에 가야 할 뚜렷한 상업적, 군사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러쉬는 잡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화성은 그냥 꿈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선을 보다 실현 가능한 목표로 돌리고, 2009년 난파선 타이타닉호 관광을 포함해 심해 여행을 위주로 하는 기업 ‘오션게이트(OceanGate)’를 설립했다. 그런데 러시는 실제로는 회사 명칭으로 ‘모험가들(adventurers)’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워싱턴주 에버렛에 본사를 둔 ‘오션게이트’는 규모는 작았지만 직원들끼리의 유대감은 뛰어난 회사였다. 러시는 본사에서 전 직원과 회의를 갖곤 했으며, 대학 동창이기도 한 그의 아내 웬디는 홍보 책임을 맡았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오션게이트’에서 일반직으로 근무했던,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 직원은 회사 분위기는 내집처럼 편안했고, 인간적이었으며, 배선과 장비가 곳곳에 널려있었다고 회상했다.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오션게이트’의 정점에는 러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정말 열정적이었고, 직원 모두에게 그 열정을 전달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직원은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는 회의석상에 가상현실 고글을 들고 나타나 직원들이 간접적으로라도 수중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중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세상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인 뉴먼은 러시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뒤에서 입으로만 독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몸소 실천에 옮기는 리더였다”고 말했다. 그는 2021년 여름 난파선 타이타닉호를 둘러보기 위해 러시와 함께 잠수정 ‘타이탄호’를 탔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러시는 몇 시간에 걸쳐 해저 탐험 사업의 잠재력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러시는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었던” 사람이었다고, 뉴먼은 주장했다.

뉴먼의 기억에 남아있는 ‘오션게이트’는 서로를 배려하는 팀이었다.

그리고 러시의 아내 웬디는 “남편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혹시 서두르지나 않는지 체크하는 역할을 했다”고 뉴먼은 회상했다.

미국의 잠수정 운영사 '오션게이트 익스페이션'의 심해 잠수정 '타이탄'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의 잠수정 운영사 '오션게이트 익스페이션'의 심해 잠수정 '타이탄' [사진 = 연합뉴스]

이렇게 러시에 끌린 뉴먼은 마침내 ‘오션게이트’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알다시피, 수익이 나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었습니다. 내게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의 핵심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실험정신이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혁신시키는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오션게이트’였습니다.”

뉴먼은 자신은 소액 투자자라고 설명했다. 민간 기업인 ‘오션게이트’는 모든 재무 기록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2020년 1월 미국 재무 기록에 따르면 러시와 동료 이사들은 1,800만 달러 상당의 회사 지분을 매각해 ‘타이탄’ 개발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기차고 편안한” 수중 여행을 위해 ‘오션게이트’의 잠수정에 오르기 위해서는 25만 달러를 내야했다.

러시의 고객들은 일생에 한 번뿐인 모험을 위해 적지 않은 액수를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사업가 제이 블룸은 러시에게 아들과 함께 잠수정에 타겠다고 신청서를 보냈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이를 취소했다. 안 그랬다면 그들 부자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블룸은 난파선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일생의 ‘버킷리스트’로 여겼었다. 그는 아무도 못 한 일을 경험했다는 자랑거리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션게이트’의 장비들은 마치 집에서 만든 것처럼 조잡한 느낌을 주었다.

이와 관련 ‘오션게이트’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BBC에, 별도의 맞춤형 전기·전자 설비를 사용하는 다른 잠수정 회사들과는 다르게 ‘타이탄’에 기성품 기판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또, 러시와 함께 2021년 타이타닉 난파선 여행 경험을 한 바가 있는 <CBS 뉴스> 기자 데이비드 포그는 CEO 러시가 게임 컨트롤러로 잠수정을 조정하고 “건설 현장에서 나온 녹슨 납 파이프를 안정기(ballast)로 사용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러시는 정말 중요한 것은 심해 선박용으로 흔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재료인 티타늄 탄소섬유로 제작된 선체라고 포그 기자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트와 항공 분야에서 탄소섬유가 성공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러시는 탄소섬유야말로 업계의 표준인 강철보다 그의 잠수정을 더 저렴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첩경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게 규칙이지만, 난 그렇게 할 겁니다.”

2021년 러쉬는 이렇게 주장했다.

타이탄의 튜브 모양 또한 일반적이지 않았다. 심해용 잠수정의 선체는 일반적으로 구형이므로 모든 지점에서 동일한 양의 압력을 받지만, ‘타이탄’은 실린더 모양의 선실을 채택했다. 

승객이 내다보는 관망 유리 기준도 타이타닉 난파선이 위치한 해저 깊이에 훨씬 못 미치는 1,300m까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러시는 “안전 기준을 내세워 혁신을 방해하려는 업계 전문가들에게 넌덜머리가 난다”고 반응하곤 했다.

“안전은 서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바른 디자인, 광범위한 테스트, 내용을 숙지한 참가자의 동의”가 필요한 건 맞지만, 종이 한 장으로 잠수정의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이와 함께 ‘타이탄’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망 유리 기준을 포함해 일부 규정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하면서도 ‘타이탄’의 안전 시스템이 다른 어떤 잠수정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오션게이트’와 관련된 인사 중 ‘타이탄’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자문역을 맡은 맥칼럼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몇 달 전, 전 ‘오션게이트’의 직원인 데이비드 로취리지는 검사 보고서를 통해 선체 테스트 방법 등 “안전과 관련된 수많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또한 2018년에 ‘해양기술 학회(Marine Technology Society)’는 ‘오션게이트’가 산업안전 표준을 초과하는 설계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내면서 ‘오션게이트’의 “실험적” 접근 방식이 “부정적인 결과(사소한 것부터 치명적인 것까지)”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러시는 2019년 블로그를 통해 대부분의 해양 사고가 잠수정 자체보다는 조종자의 오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함께 ‘오션게이트’는 안전 요구 사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환경을 도외시하고 모든 수정 사항을 외부 기관에 알리는 것은 “신속한 혁신에 대한 저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투자자인 뉴먼은 BBC에 잠수정이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히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러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제품을 내놓은 건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러시는 지난해 CBS 기자 포그에게 “안전을 원한다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는 “차도 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 언젠가는 위험을 감수하게 될 텐데, 이건 정말 위험 돌파에 대한 보상 문제야. 나는 규정을 위반하고도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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