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푸틴의 위상 축소를 시사하는 BRICS 노쇼(no-show)...ICC 체포영장 등 전쟁 후폭풍
[월드 프리즘] 푸틴의 위상 축소를 시사하는 BRICS 노쇼(no-show)...ICC 체포영장 등 전쟁 후폭풍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8.22 05:33
  • 수정 2023.08.22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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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5개국 정상이 모여 있다. 왼쪽부터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브라질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2019년 11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5개국 정상이 모여 있다. 왼쪽부터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브라질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남아공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푸틴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과 및 그에게 발부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등과 관련해 그의 위상 축소가 얼마나 심한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CNN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에는 분명 여기저기에서 눈에 많이 띄고, 만나봐야 하는 인물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하기 몇 주 전, 세계 지도자들은 번갈아 가며 모스크바를 방문해 크렘린 지도자에게 벼랑 끝 전술을 포기하고 침공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앙 수준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이제 함부로 여행조차 다닐 수 없게 된 처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듯하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여행에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이 시간대가 11개나 걸쳐져 뻗어있는 러시아라는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는 인물에게는 사소한 문제로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푸틴은 베이징은 자유롭게 드나들고, 중앙아시아의 친 크렘린 정권과 이란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그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발판을 제공한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셴코도 푸틴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이번 주에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중요한 글로벌 포럼인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 불참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즉, 푸틴의 노쇼(no-show)는 러시아의 고립과 푸틴 개인의 위상 축소를 짐작케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이다.

푸틴을 뺀 나머지 브릭스 경제권의 다른 지도자들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루이즈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등은 모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해서 지난 달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사무실은 푸틴이 “상호 합의에 따라(by mutual agreement)”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하고, 대통령은 동영상 참석으로 대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푸틴이 이 국제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는 것은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우선, 그는 국제 행사에 참석해 스스로 중요한 플레이어임을 과시할 기회를 놓친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는 정상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의미 이상의 무엇이 내포되어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와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 균형추로서 브릭스와 같은 ‘다극적 세계 질서’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지도자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서방의 광범위한 비난을 뒤로하고, 특히 남반구(global south, 저개발 및 개발도상국들)에서 국제적 영향력 확대와 지지를 받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21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왼쪽 건물)에 배치된 경찰 특수차량과 경찰들 모습.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21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왼쪽 건물)에 배치된 경찰 특수차량과 경찰들 모습. 

이를 위해 푸틴은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저조한 참석률에 실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에 참석한 국가 원수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만이 지난달 열린 이 행사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래도 러시아는 여전히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에 외교와 정치적 지지를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푸틴이 자신의 비전을 홍보할 또 다른 기회를 놓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체포영장 발급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앞선 지난 3월 ICC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로 추방한 혐의에 대해 푸틴과 다른 러시아 관리들을 대상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이 ICC 영장으로 인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곤경에 처하게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헤이그 국제 형사 법원을 관할하는 조약의 서명국으로서 ICC에 의해 기소된 인물을 체포할 의무가 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ATI]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ATI]

푸틴이 요하네스버그 활주로에서 체포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마법 같은 생각이다. 과거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은 다르푸르 대학살과 관련되어 전쟁 범죄 및 반인도주의 범죄로 ICC에 의해 기소되었다가 2015년 남아공을 방문하는 동안 그의 체포를 고려한 남아공 법원의 판단에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물론 크렘린은 푸틴이 ICC의 체포영장 때문에 브릭스 정상회담 참석을 꺼린다는 주장에 발끈하고 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기밀 진술서를 통해 남아공에서 푸틴이 체포될 경우 러시아는 이를 “전쟁 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대해 부인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지난 7월 29일 기자들에게 자신이 브릭스에 참석하는 것이 “현재 러시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 푸틴의 브릭스 정상회담 불참은 러시아에 유리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자신들이 보다 정의롭고 공평한 세계 질서를 지향하는 반제국주의 강국이라는 홍보 활동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핵심 의제들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미국과 그 속국들이 추진하는 서구 중심의 지배 원리가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해가 된다는 점에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서방 소수 세력들의 군사적, 정치적, 재정적, 경제적 노력에 맞서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수시로 변합니다. 그들은 세계화, 그 다음 서구화, 미국화, 보편화, 자유화 등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들은 독자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규칙에 따라 플레이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국제 관계의 자연스러운 진화와 다극 체제로의 흐름을 늦추거나 심지어 그 과정을 되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세계를 꾸미기 위해 무력 사용이나 일방적 제재, 정보 및 심리전 등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방법을 거리낌 없이 동원합니다.”

그런데 라브로프 장관의 말에는 아이러니가 넘쳐난다. 결국 러시아는 푸틴이 완전히 제국주의적 용어로 정당화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틴의 관점에서 단극 체제의 종말은 러시아가 해방이라는 거짓 기치 아래 국제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유혈 사업을 완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친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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